<170>"아빠 사랑해"를 막는 가부장적 감각 극복하기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너에 대한 사랑으로
서정홍, '아들에게1' 중
시집 '58년 개띠', 보리, 1995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기존의 관계망들이 툭툭, 끊어져 갔다. 얼굴을 맞대고 표정을 나누던 시간이 아득해질 무렵, 퇴근길에 전화가 왔다. 어머니였다. 밥과 잠의 안부를 나누고 전화를 끊어야 할 때쯤. "우리 아들 사랑해." 나는 화들짝했다. 사랑해,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 뼛속까지 경상도 사람인 어머니의 입에서 발음된 문장이어서 그런지 신선했다. '어… 그래요' 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화들짝한 마음으로, 차마 응답하지 못한 사. 랑. 해.라는 문장을 혼자 작게 발음해보았다. 낯설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 랑. 해.라는 말을 반복해 조물조물하며 발음해보았다. 입술을 다물지 않고도 발음할 수 있고, 단숨에 꺼내 쓸 수 있는 문장이었다. 마스크를 낀 채, 꽤 오랫동안 ‘사랑해’라는 문장을 발음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꺼내어 쓰지 않은 문장이 이토록 혀끝에 단단하게 굳어 있는 줄 몰랐다. 다시 발음될 수 있는 말로 살려볼 수 있을까? 생활 속에서 생동하는 말로 꺼내 쓸 수 있을까? 연습해보기로 했다. 집 현관문 손잡이를 쥐고 입술을 조물조물하며 연습했다. 딩동딩동. 문이 열리고, 발음해보았다. 사. 랑. 해. 화들짝한 표정이었다.
다정의 화학식
꽉 막혀 있던 사랑해,라는 말의 혈이 풀리고 나니 한결 이 말이 가볍게 느껴졌다. 무겁게 사용할 말이 아니었다.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는 어린이-반려자에게 손을 흔들며 사랑해!라고 말하고 나니 주변 풍경이 온통 환했다. 출근하는 여성-반려자를 눈길로 배웅하며 베란다에서 사랑해~ 잘 다녀와! 말하고 나면 골목 끝까지 향긋해졌다. 어머니 전화에도 거뜬히 '사랑해요, 어머니'라고 응답하고 나면 목구멍이 상쾌했다. 생활 속 곳곳에서 다정의 화학 작용이 일어났다. 생활 구석구석이 신선해졌다. 사랑해, 이 말을 쓰지 않고 살아온 시간이 통탄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아버지께 쓰려니 참 쉽지 않았다. 그게 문제라고 생각지도 못하던 것이 덜컥 문제가 되었다. 아버지께는 왜 쉽지 않은 걸까, 생각하게 되었을 때.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마음까지 먹고 몇 번씩 통화하면서도 끝내 발음하지 못했을 때. 그러니까, 그게 낯간지럽다고 느꼈을 때. 조금 징그럽다고, 남사스럽다고 느끼던 그때. 내 피부 아래 어딘가에 "남자들끼리는 그러는 거 아니야"라는 모종의 젠더 규범이 징그럽게도 오래 살아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징그러움의 공식
남자들끼리 사랑이 담긴 느낌을 표현하는 것.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왜 이래? 징그럽게…"를 떠올려야 했다. "감각적 인식은 피부로 감지하는 그 무엇이다."(사라 아메드) 사랑이 스며든 느낌을 남자들끼리 표현하는 것은 '징그러움'의 감각으로 나의 피부 아래에 배치돼 있었다. 남자끼리 손잡고 다니는 거 아니야, 남자끼리 브런치 먹으러 가는 거 아니야, 남자끼리 영화관 가는 거 아니야…. 가부장적 감각의 배치는 사랑이 담긴 느낌을 징그럽게 제어하고 있었다. 피부에 스며 있는 가부장적 감각-통치술은 남성 간 사랑이 담긴 느낌을 표현하면 "게이같이 굴지 마"라고 공격당하거나, "계집애들처럼 왜 이래"라고 조롱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학습시켰다. 그래서, 연습해야 했다. 사랑의 기술을 실천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부장 문화와 대결해야 했다.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기, 이것을 해내려면 피부 아래 스며 있는 가부장적 감각의 배치에 맞서야 했다.
아버지를 들춰보면
나의 아버지, 그러니까, 밥 먹고 나면 설거지는 꼭 자신이 하고, 일요일이면 이불을 내어다 먼지를 털어 널고, 집에 돌아온 밤이면 걸레를 쥐고 온 집 안 구석구석을 닦으며 일상적인 가사노동을 수행하던 아버지. 무릎에 앉혀 책을 읽어주고, 쉬는 날이면 늘 함께 산책하러 다니며 온갖 들꽃과 들풀 이름을 알려주고, 잠들기 전에 옛이야기를 들려주며 돌봄 노동을 수행하던 그런 아버지.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을 수행하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1996년 출간돼 지금까지도 절판되지 않은 책,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 노릇은 해야지요'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을 단 책을 쓰기도 한 사람이다. '일하는 아버지가 쓴 자녀교육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을 들춰보면 내 이야기가 그득그득 실려 있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장면들 속 한없이 다정하고, 끊임없이 곁을 내어주며, 대화하기를 놓치려 하지 않는 그런 아버지가 고스란히 책 속에 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세상 모든 아버지가 다 그런 줄 알았다. 내가 운이 좋구나,라고 깨달은 것은 한참 지난 뒤였다.
사회생활 하면서 아버지와 사이좋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알았다. 아버지처럼은 절대 살지 않겠다거나, 심지어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친구들의 고백을 들었을 때, 많이 놀랐다. "나가서 뼈 빠지게 돈 벌어서 먹여 살리고 있는 줄도 모른다"라는 가부장적 발성으로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이야기야"로 마무리되는 거룩한 '말씀'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만 나오는 줄 알았다. 나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말이었다. 이야기 속 아버지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관심한 아버지, 과묵하고 성실하기만 한 아저씨, 근엄한 폭군, 술만 먹으면 엉망이 되어버리고 마는 괴물의 이미지들로 넘쳐났다. 맞다. 나는, 징그럽게도 운이 좋은 것이었다.
사랑이라는 무기
가끔 아버지와 가까운 이모, 삼촌들에게 "너희 아버지는 좀 여성스럽지"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남성의 다정함과 다감함은 '여성스러움'으로 곧장 설명되었다. 이 여성스러움을 부정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아버지의 옆모습을 기억한다. "언제든 한 사람의 남성이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가부장적 경계를 용감하게 넘을 때 여성과 남성, 그리고 아이들의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근본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나는 살면서 알게 되었다."(벨 훅스)
이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해’라고 발음하고, 일상에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 속에서 힘을 얻는다. 이제 "여성스러우시네요"라는 말에 예쁘게 고개를 끄덕일 줄도 안다. 내가 믿고자 하는 것. "나는 심판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믿는다."(파블로 네루다) ‘사랑해’라는 문장이 거느리고 있는 정중하며 다정한 느낌을 실어 말하려고 애쓴다. 사랑이 담긴 그 느낌을 숨기지 않고 '오롯이' 드러내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부드럽고 때로는 장난기 넘치는 사랑의 느낌을 주고받는 이 기쁨을 쟁취하기까지 너무 돌아왔다.
사랑한다는 말
'사랑하는 아버지, 잘 지내셨어요?'라는 문장으로 전화를 시작하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말에는 신기한 힘이 있어서 말에 따라 마음이 움직이기도 한다. 대화는 더욱 편안해졌다. 통화가 끝날 무렵 '아버지, 사랑해요'를 발음하는 데 마침내 성공했다. 아버지에게도 요청했다. '나한테도 사랑한다고 말해봐요, 아버지.' 얼버무리던 아버지는 "어, 그래… 그래… 그래라… 끊자" 했다. 끝내 사랑한다, 응답받지 못했다. 어머니한테 ‘사랑해’ 말을 듣고 화들짝했던 나처럼, 아버지의 전화는 화들짝 끊겼다. 이후로도 종종 아버지와 전화를 할 때마다 사랑해, 발음 연습을 했다. 내 안의 가부장적 감각의 배치를 바꿀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라 여겼다.
그리고 얼마 전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최근에 출간한 아버지의 동시집 '골목길 붕어빵'으로 '제15회 권정생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경사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보다 더 화들짝한 순간이 있었다. 짧은 통화를 끝내며 “아들, 사랑해” 하고 전화를 끊으신 것이다. 칠순을 앞둔 아버지의 ‘사랑해’라는 말에 설렌다. 드디어, "사랑해"라는 말이 우리를 직류로 연결하는 문장이 되었다. 사랑이 본 적 없이 신선해지고 있다.
내 가난을 채운다
내 빈 가슴을 가득 채운다
서정홍, '아들에게1' 중
시집 '58년 개띠', 보리, 1995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와 서한영교 작가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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