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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가 어쩌다가"…칸의 탄식

입력
2024.06.01 12: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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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라제기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
지난달 25일 오후 제77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인도 영화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의 파얄 카파디아(오른쪽) 감독과 출연 배우들이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후 서로 포옹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칸=AFP 연합뉴스

지난달 25일 오후 제77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인도 영화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의 파얄 카파디아(오른쪽) 감독과 출연 배우들이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후 서로 포옹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칸=AFP 연합뉴스

제77회 칸국제영화제(지난달 14~25일)를 최근 다녀왔다. 2008년 처음 출장 간 후 11번째 방문이었다. 매번 갈 때마다 영화제 분위기는 비슷했으나 올해는 좀 낯설었다. 아시아 영화가 약진한 가운데 한국 영화의 약세가 유난히 느껴져서다.

일본 영화와 중국 영화가 우선 눈에 들어왔다. 영화제 포스터부터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8월의 광시곡’(1991)의 한 장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구로사와 감독의 대표작 ‘7인의 사무라이’(1954)는 개봉 70주년을 맞아 복원판이 칸클래식 부문에서 상영됐다.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 스튜디오 지브리는 공로상에 해당하는 명예황금종려상을 기관으로서는 최초로 수상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1991)와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2006)이 해변가에서 밤에 야외 상영됐다.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경쟁 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일본 배우 야쿠쇼 고지가 폐막식에서 시상자로 무대에 올랐다.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영화제 같았다.

중국 영화의 활약이 눈에 띄기도 했다. 21세기 중국 영화를 대표해 온 지아장커 감독의 ‘풍류일대’(경쟁 부문)와 로예 감독의 “완성되지 않은 영화’(특별 상영) 등 5편(홍콩 영화 2편 포함)이 초청됐다. 지난해 4편 상영에 이어 강세를 나타냈다. 구안후 감독의 ‘검은 개’는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2022년 1편도 초대장을 받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반전이다.

인도 영화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은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인도 영화로서는 1994년 이후 30년 만에 경쟁 부문에 올라 이룬 성과다. 또 다른 인도 영화 ‘파렴치’의 아나수야 센굽타는 주목할 만한 부문 여자배우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는 ‘베테랑2’가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 다큐멘터리 영화 ‘영화 청년, 동호’가 칸클래식 부문에서 각각 상영됐다.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은 완성도 높은 장르 영화를 심야에 상영한다. 이벤트 성격이 짙다. 칸클래식 부문은 고전영화 복원판이나 유명 영화인 관련 다큐멘터리를 선정한다. 칸영화제 외곽에 해당하는 부문들이다. 칸에서 한국 영화의 열기 대신 한기가 느껴진 이유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예산 문제를 이유로 매년 칸영화제 기간 열렸던 ‘한국 영화의 밤’을 올해 개최하지 않았다. ‘진흥’이란 군불 대신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영화제는 올림픽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올림픽은 참가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말처럼 공허하다. 칸 같은 대형 영화제는 순수하지 않다. 산업과 연결돼 있다. 20세기 초 영화가 새로운 매체로 각광받자 유럽 영화인들은 올림픽 같은 국제 영화 행사를 만들자며 머리를 맞댔다. 이탈리아가 1932년 세계 최초 영화제를 베니스에서 개최하면서 ‘영화 올림픽’을 대신하게 됐다. 칸영화제는 베니스국제영화제의 대항마로 시작됐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도 정치적, 산업적 계산이 스며 있다.

칸과 베니스, 베를린영화제는 여전히 세계, 특히 유럽 극장으로 나 있는 주요 관문들이다. 2012년 ‘피에타’ 이후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한국 영화는 없다.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은 2008년 이래 홍상수 감독 영화들만 초대하고 있다. 칸영화제마저 길이 막히면 한국 영화의 활로는 더 좁아진다. 칸에서 만난 한 영화인은 탄식 어린 말을 했다. “한국 영화가 어쩌다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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