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녹색혁명, 아프리카를 가다]
<상> 생명의 쌀띠, K라이스벨트
K라이스벨트 최전선, 센터 소장들
"농사지을 줄 몰라 하늘만 보는 땅
60년대 한국과 비슷...기술 전파 소명"
낯선 아프리카 땅에 오늘도 씨앗을 뿌리는 한국인이 있다. 그곳에서 '농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농촌진흥청 코피아(KOPIA·Korea Project on International Agriculture)센터 소장들이다. 한국이었다면 은퇴 후 노후를 편히 보내고 있을 시기, 이들이 K라이스(쌀)벨트 최전선에서 벼 종자를 생산하며 아프리카 땅을 일구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국도 원조로 성장... 아프리카도 할 수 있다"
조창연(62) 세네갈 코피아센터 소장은 '부채 의식'을 들었다. 배곯던 1960년대, 다른 나라 국기가 그려진 공적개발원조(ODA)표 곡물 덕분에 조 소장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일어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1950년대 세계 최빈국으로 꼽혔다. 6·25전쟁 이후 미국이 원조한 17억 달러는 당시 한국 정부 예산의 절반에 달했다. 선진국으로부터 받는 식료품과 기초생활용품, 비료 등이 없이는 연명하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1995년 일대 반전이 이뤄졌다. 한국은 '받는' 국가에서 '주는' 국가가 됐다. ODA 주요 대상국이었다가 공여국으로 거듭난 세계 첫 사례다. 조 소장은 늦게나마 그 '빚'을 갚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 밀가루 덕분에 형제들 모두 공부할 수 있었고 유학도 갈 수 있었어요. 그 도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저도 도움을 줘야죠. 우리도 해냈듯, 아프리카도 할 수 있습니다."
세네갈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한국(56.7㎏·2022년 기준)보다 2배 많은 115.29㎏이다. 주로 베트남과 인도 등 수입산, 그것도 대부분은 품질이 좋지 않은 싸라기(깨진 쌀)다. "2021년 기준 수입된 쌀 중 85.6%가 싸라기예요. 3년 넘게 묵은 쌀도 많고요. 여기 사람들은 그것도 맛있다고 먹어요. 싸라기가 맛있는 건 줄 알고 정상적인 쌀을 깨서 먹기도 해요. K라이스벨트를 통해 세네갈 사람들한테 직접 지은, 제대로 된 쌀밥을 보여주고 싶어요."
"밥 든든히 먹이고 싶은 마지막 꿈"
김충회(76) 가나 코피아센터 소장은 '꿈'을 꺼냈다. 가나에 '한국식 쌀 재배법'을 널리 알려 밥을 든든히 먹이는 게 마지막 꿈이란다. "와서 보니 너무 충격이었어요. 맨땅에 그냥 씨를 뿌리고, 잡초도 그냥 두니 빨간색 액미(잡벼)가 태반일 수밖에 없죠. 물을 끌어올 줄도 몰라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를 짓는데... 딱 저희 1960년대 모습이었어요."
3모작까지 가능할 정도의 비옥한 땅과 충분한 물이 있지만, 가나는 쌀 수입에만 연간 12억 달러(약 1조6,611억 원)를 쓰고 있다. 농사를 지을 줄 몰라 생산력이 뒷받침되지 않자 큰돈을 들여 쌀을 사들이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나는 K라이스벨트 사업국 중 가장 속도가 빠른 편에 속한다. 작년에 300톤이 넘는 쌀을 성공적으로 시범생산한 김 소장이 부연했다. "허리를 내내 숙여야 해서 힘들 법도 한데, 여기 사람들은 시범포 논에 오면 계속 웃어요. 내 손으로 이렇게 좋은 쌀을 재배할 수 있게 되다니 꿈만 같대요. 그 꿈을 널리 퍼트려 주고 싶어요."
K라이스벨트 사업은
벼 종자부터 생산 기반, 유통 체계까지 쌀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한국의 노하우를 아프리카에 전수하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이다. 쌀을 원조하는 개념이 아니라, 아프리카 국가 스스로 2027년까지 다수확 벼 종자 1만 톤을 생산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연간 3,000만 명에게 안정적으로 쌀을 공급하는 게 목표다. 지난해 착수한 후 올해부터 본격 추진하고 있다. 현재 서아프리카(4곳), 중앙아프리카(1곳), 동아프리카(2곳) 등 총 7개 나라가 참여하고 있으며, 3개 나라가 추가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상태다.
[K녹색혁명, 아프리카를 가다]
글 싣는 순서
<상> 생명의 쌀띠, K라이브벨트
<하> 벼만 심는 게 아니다
연관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