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회색지대 공격'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 체계는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지난달 28일부터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이 1,000개 안팎의 '오물 풍선'을 띄워보내고, 닷새 연속 위성항법시스템(GPS) 전파 교란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우리 군은 사실상 지켜만 봤다. 군이 북한의 도발을 '군사작전'이라고 규정하면서도 감시·정찰과 이후 수거한 것 외에 취한 조치는 딱히 없다.
군과 정부는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 가장 안전한 방법을 택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국에선 오물 풍선으로 인한 재산 피해가 발생하고, GPS가 먹통이 된 어선들은 조업에 차질을 빚었으며, 전국의 군·경은 북한발 오물 수거를 위해 총동원되고 있다. 군이 수세적으로만 대응하면, 앞으로도 반복될 북한의 '회색지대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오물 풍선 260개 이어 720개… "격추는 고려 안 해"
장호진 안보실장은 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확대회의 주재 후 브리핑에서 북한의 오물 풍선과 GPS 교란에 대해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도발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면서도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오기 전에 격추하는 방안을 논의했느냐'는 질문엔 "공중에서 터뜨렸을 때 오물들이 더 분산돼 피해 지역이 넓어질 수 있고 처리도 복잡하다"고 답했다.
군도 미온적인 건 마찬가지다. 합동참모본부는 "1일부터 식별된 북한의 오물 풍선은 720여 개"라며 "군은 풍선 부양 원점에서부터 감시·정찰을 실시하고 있으며, 항공정찰 등을 통해 추적해 낙하물을 수거했다"고 설명하는 데 그쳤다.
北 군사작전에 이미 국민 피해 발생… "뒷짐 지고 보기만 할 건가"
정부와 군의 신중한 대응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나, 국민이 입을 피해와 고통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지적 또한 적지 않다. 합참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남쪽으로 넘어온 일부 오물 풍선엔 내용물을 공중 살포하기 위한 타이머와 기폭장치가 달렸다. 의도적으로 서울·경기 지역에 집중적으로 띄운 정황도 포착됐다. 북한의 도발 의도가 명백하다. 일부 차량 유리창이 깨지는가 하면, 북한의 연이은 GPS 교란으로 서해 어민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다.
군 관계자는 북한 오물 풍선을 공중에서 요격하지 않은 이유로 "MDL 이북으로 탄이 넘어갈 경우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합참 관계자도 "인명·재산상의 심각한 피해가 없는 이상, 섣부른 대응은 자칫 북한에 추가 군사 도발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만약 풍선이 아니라 무인기가 MDL을 넘어와도 탄이 넘어갈까 우려돼 추적·감시만 하고 있을 건가'라는 비판은 여전하다. 북한의 도발수위에 응당하게 맞서는 비례성 원칙이나 교전 수칙에 비춰봐도 군의 대응은 안이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더구나 우리 군의 허점을 파고드는 북한의 회색지대 도발은 앞으로도 기승을 부릴 공산이 크다.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은 3월 미 의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한국을 공격할 것으로 예상되느냐'는 질문에 "북한의 최우선 순위는 정권 생존으로, 공격보다 방어를 준비하고 있다"면서도 "회색 지대 활동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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