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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주인을 물었다"...천안시 공무원들 하도급 업체서 형사 피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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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주인을 물었다"...천안시 공무원들 하도급 업체서 형사 피고소

입력
2024.06.13 04:30
수정
2024.07.0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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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 "토사 붕괴.. 안전한 공법 변경" 요구에
발주처 "설계변경 안돼, 공사강행하라" 압박
공사 업체 '거부'에... 천안시 '계약 해지' 엄포

지난해 6월 5일 천안시 원성동 하수관로 교체공사 터파기 공사 중 설계도면과 다르게 지장물 간섭이 심각하게 드러났다. 시공업체는 안전시설 설치가 어렵다는 의견을 감리단에 제기하자 감리단장 K씨(사진 오른쪽)가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지난해 6월 5일 천안시 원성동 하수관로 교체공사 터파기 공사 중 설계도면과 다르게 지장물 간섭이 심각하게 드러났다. 시공업체는 안전시설 설치가 어렵다는 의견을 감리단에 제기하자 감리단장 K씨(사진 오른쪽)가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충남 천안시 공무원들이 하수관로 교체 시공업체로부터 형사 고소를 당했다. 안전하게 공사할 수 있도록 ‘공사 설계 변경’을 요구한 업체와 이 요청을 거부한 천안시의 오랜 갈등이 형사사건으로 비화한 것이다. 공사가 지체되면서 애꿎은 시민들만 교통 혼잡과 악취로 피해를 보고 있다.

12일 천안시와 논산경찰서에 따르면 원성동 하수관로 정비 시공업체인 A사는 최근 천안시맑은물사업본부(맑은물본부) 본부장과 과장, 팀장 등 4명을 논산경찰서에 고소했다. 혐의는 강요에 의한 갑질, 보복조치, 건설기본산업법 위반이다. A사는 논산에 있다.

천안시 관계자는 “22년 말 공사를 수주한 A사가 내년 6월까지 공사를 마무리 지어야 하지만, 공정률이 아직 5%도 안 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맑은물본부가 지난 3일 A사에 계약 해지를 예고했고, 이에 반발한 A사가 담당 공무원들을 고소한 상황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초유의 ‘관급공사 반란’으로 지역에서 회자된다. 공사 내막을 잘 아는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사를 수주한 ‘을’(A사)이 발주처인 ‘갑’(천안시)을 형사 고소한, 개가 주인을 문 사건”이라며 “천안시의 느슨한 행정이 빚은 촌극”이라고 말했다.

실제 해당 공사 현장은 지난해 6월부터 문제가 있었지만, 천안시가 안일하게 대응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6~8월 토사 붕괴 사고가 6회나 발생했다. 그중에는 작업자가 흙에 묻히는 사고도 있었다. ‘잘못된 공사 설계로 발생한 사고’로 판단한 A사는 공사를 중단하고, 감리와 맑은물본부에 작업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공법 변경을 요구했다.

그러나 감리와 발주처인 맑은물본부는 “토사 붕괴는 설계 하자 때문에 발생한 게 아니다”며 A사에 공사 강행을 요구했고, A사는 “이 상태로는 안전한 공사가 불가능하다”며 공법 설계 변경을 재차 요구했다. 해당 사업장은 총공사비 110억 원 규모로 중대재해 처벌법 대상이 된다. 아파트 건설 현장 작업자 추락사, 산업단지 조성 현장의 매몰사 등 중대재해법을 비웃듯 관내에서 터지는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천안시는 적극 대응해야 했지만, 대신 ‘공사기간 지연’을 이유로 A사에 벌점 부과했다.

이에 대해 A사 관계자는 “공정률 부진은 부실한 공사 설계에서 기인하고, 위험을 인지하고도 이를 바로 잡지 않은 발주처와 설계사에 그 책임이 있다”며 “그런데도 벌점을 매긴 것도 모자라 '계약 해지' 운운하는 것은 우리더러 죽으라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일정 벌점을 받은 업체는 다른 관급 공사에 입찰할 수 없고, 계약 해지를 당하면 부정당 업체로 등록돼 역시 다른 공사에 입찰할 수 없다.

시민들의 불편은 가중되고 있지만, 천안시는 팔짱을 끼고 있다. 원성동 주민 김모(56)씨는 “부시장이 우기를 앞두고 시가 발주한 공사 현장들의 안전 점검에 나섰지만, 우리 동네 하수관로 정비사업의 공사 지연과 고소전에 대해서는 모른 척했다”며 “산하 기관이 벌인 일이긴 하지만, 시가 무책임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윤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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