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 부모 50명 국방부 앞 규탄 시위
"숨기고 감출 생각 말고, 우리 아이들 좀 그만 죽이세요."
(2022년 12사단에서 사망한 김상현 이병 아버지 김기철씨)
육군 12사단에서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던 훈련병이 사망한 사건의 처리 과정을 보다 못한 현역 국군 장병 부모들이, 국방부 앞에 모여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군의 대오각성을 촉구했다.
군인권센터는 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이어 장병들이 목숨을 잃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채상병 사망으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바뀐 것이 없고 여전히 군인들은 쓰다버리는 소모품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이번 죽음의 원인은 명백한 가혹행위, 즉 고문"이라며 "경찰은 가해자를 긴급체포하고 구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는 군 장병 부모로 구성된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부모연대' 소속 회원 약 50명이 참석했다. 또 앞서 군에서 사망한 장병들의 유족들도 함께했다. 이들은 검은 옷과 마스크, 모자를 쓰고 '믿고 맡긴 우리자식 언제까지 죽일거냐'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시위 내내 눈물을 흘리거나 "아들을 돌려내라"며 울부짖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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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12사단 사망 사건' 피해자의 유족도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2022년 11월 군 복무 중 집단 괴롭힘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김상현 이병의 아버지 김기철씨는 "우리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12사단에서 아들 한 명이 또 가혹한 얼차려를 받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 자리에 나왔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아들을 잃었는데 그게 아무런 변화조차 가져오지 못한 게 아닌가 싶어 너무 허탈하다"고 말했다.
이번에 사망한 12사단 훈련병 동기의 아버지가 쓴 편지도 대독됐다. 이 아버지는 "아들을 군대에 보낸 것이 후회된다"며 "헤아릴 수 없는 공포와 고통의 시간을 보낸 아들도 부모에게 위로를 하는데, 사고가 난 지 열흘이 넘도록 이 나라는 누구 하나 사과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어떠한 의혹도 없는 진상규명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역·현역 자녀를 둔 부모들도 발언에 나섰다. 현역으로 복무중인 아들을 둔 어머니는 "꽃같은 젊은 나이에 가게 된 군대에서 안겪어도 될 것 겪고, 구타와 집단따돌림에 노출되면서 고통받고 있다"며 "피해자는 평생 고통에 살고 유족들은 한 맺혀사는데 (정부가) 가해자들을 왜 감춰주냐"며 눈물을 흘렸다. 얼마 전 자녀가 전역했다는 한 어머니는 "국방부는 부모에게 사과하고, 아들들이 무사히 돌아오도록 재방방지를 위한 노력을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군인권센터는 경찰과 군이 사건을 은폐·축소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임태훈 소장은 "군은 유족들이 공론화를 원치 않는다며 다른 훈련병들 부모님이 외부에 확산시킬까 입을 틀어막았다"며 "군에서 건강한 20대 남성이 사망했다면 정부가 고개를 숙이는 게 우선이지 왜 감추려고 하냐"고 따졌다.
지난달 23일 강원 인제군 육군 12사단에서는 이른바 얼차려로 불리는 군기훈련을 받다 훈련병이 쓰러졌다. 그는 민간병원으로 응급 후송돼 치료받았으나 상태가 악화해 이틀 뒤 사망했다. 현장에 있던 지휘관이 규정을 지키지 않고 완전 군장 상태에서 구보와 팔굽혀펴기를 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강원경찰청이 군으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아 수사 중이지만, 경찰은 아직 해당 간부들을 입건하거나 소환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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