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정치현안과 사회적 난제에 대한 ‘한국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올바로 이해해야 합의가능한 해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심층적 데이터 분석을 통해 새로운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와 의견을 담고자 합니다.
퓨리서치의 잘못 설계된 조사
한국인에 대한 국제편견 조장
해외 발표, 무비판 수용 안 돼
해외기관 발표에 대한 비판적 대응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조사를 꼽으라면 퓨리서치센터(PEW)가 2021년 전 세계 17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조사를 들 수 있다. 17개국 중 14개국에서 가족을 1순위로 꼽은 반면, 유일하게 한국인은 '물질적 행복'을 1순위로 꼽았다는 발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국내 언론 대다수도 자세하게 소개했는데 2순위는 '건강', '가족'은 3순위에 그쳤다.
한국 사람들은 '가족'보다도 '돈'에 인생의 의미를 두고 사는 속물적인 별종인가? 퓨리서치는 엄격한 조사방법론과 전문성이 있는 기관으로 글로벌 조사 연구를 이끄는 공신력 있는 기관이다. 그래서 더더욱 영향력이 컸다. 해당 보도는 공신력 있는 기관의 조사 결과라도 적절한 조사 방법과 분석을 진행하지 못할 경우 편견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차원의 '데이터 리터러시' 능력을 요구하는 사례였다. 당시 대다수 언론이 전파하는 확성기 역할을 했다. 일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데이터 분석 전문가이나 한국일보와 같은 일부 언론에서만 조사의 허점을 지적하며 자조적 해석에 대해 반박했다.(한국일보 '한국인만 물질적 풍요 중시? 조사 보고서 확인해보니…' 2021년 11월 22일)
이 조사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표준화된 질문 및 구조화된 보기 중에서 응답을 선택해야만 하는 '폐쇄형 구조화된 질문 방식'(closed-ended question)과 응답자가 임의로 대답하는 '개방형 주관식 질문문항'(open-ended questions)의 차이에 주의해야 한다. 단적인 예가 서구 나라의 응답자들은 위의 질문에 대해 복수의 응답이 많은 반면, 한국 응답자들은 단일 응답 비중이 높았다. "한국에서는 '한 가지 응답'만 제시한 비율이 62%로 조사국 중 가장 높았다. 반면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은 응답자의 76%가 '복수 응답'을 냈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응답 비교가 어려운 어느 범주에 속하지 않는 '일반적으로 좋다', '일반적으로 어렵다'는 응답이 높았던 점을 근거로 한국인의 특성은 '돈에 미친 나라'보다는 '행복에 무관심한 나라'라는 해석이나 '공동체적인 요인의 중요성이 낮은 나라'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무엇보다 '물질적 풍요=돈'으로 분류된 응답들이 타당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집중되었다. 퓨리서치가 밝힌 주관식 응답의 코딩 분류 부록에는 '물질적 풍요, 안정, 삶의 질'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여있다. 물질적 가치와 삶의 질을 동일 범주로 묶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또 응답을 보면 '평범한 삶', '검소한 삶'처럼 탐욕과 상충하는 응답들이 '물질적 풍요'로 분류되었다. 특히 '주거 구조물로서의 물리적 집'과 가족, 친구, 애완동물 등이 함께하는 '따뜻함, 사랑, 소속감을 표현하는 삶의 의미·가치가 부여되는 공간으로서의 집'을 모두 물질적 풍요 범주로 묶은 것도 문제다. 한국에서는 가족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후자의 의미로서 '집'이라 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차원 높은 데이터 리터러시가 필요
퓨리서치 이후 후속 연구결과들을 보면 단순화된 해석을 더욱 유의해야 한다. 실제로 모든 제도언론이 퍼 나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날카로운 비판과 심층적 보도도 존재했다.(한국일보 '한국인만 물질적 풍요 중시? 조사 보고서 확인해보니…' 2021년 11월 22일, 한국일보 '1938년부터 85년 동안 개인의 인생을 추적했다… '행복의 조건'을 알아내기 위해' 2023년 10월 28일 자).
후속 연구들도 진행되었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한국리서치 '15개 아시아 대도시 가치조사'에서 질문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11개 항목에 대해 평점을 매기는 방식과 순위를 매기게 한 방식을 병행했다. 서울은 평점 방식으로는 물질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중요도에 따라 순위를 매긴 응답에서는 가족(1위 49.8%) > 건강(2위 20.7%)이었고, 물질적 풍요로움(13.7%)보다 높았다.
필자가 2018년과 2021년 11월 실시한 10개 항목에 대한 중요도 평가(다음이 당신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1. 전혀 중요하지 않음~4. 매우 중요)로 답한 평균점수를 보면 강한 물질주의적 성향과 함께 가족 인식에서도 큰 변화가 확인된다. 가치관·가족관 분석이 간단치 않음을 보여준다. 퓨리서치의 결과와 달리 '부·재산'이 중요하다는 평점은 일관되게 1위 '건강', 2위 '부모', 3위 '일(직업)'에 못 미치는 4위 수준이다. 가족에 대한 인식변화가 발생하면서 가족을 부모, 배우자, 자녀로 세분화할 경우 부·재산은 배우자나 자녀와 비슷한 수준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족 중에서 부모와의 관계가 아닌 배우자녀에 대한 무게중심은 가벼워졌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는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후속연구들이 진행되면서 직후 잠잠해졌던 편견이 최근 당시 보도들을 레퍼런스로 하여 공중파의 지식콘텐츠 프로그램이나 인플루언서들의 유튜브 동영상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제는 국내를 넘어 미국 유명대학 교수의 수업에서 해당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국인은 왜 가족보다 돈을 중시하게 되었나라는 토론이 중계되는 세상이다. 한국인에 대한 '글로벌 괴담'이 유포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조사방법이나 코딩 능력보다 잘못된 해석에 대한 비판적 태도와 교정능력도 향후 데이터 리터러시의 중요한 덕목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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