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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수 "분만 인프라는 필수, 경제 논리로만 접근하면 안돼"

입력
2024.06.11 04:00
수정
2024.06.11 08:5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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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 인터뷰>
분만 인프라 붕괴의 본질은 저출생
"지금 의료개혁 안 하면 다 무너져"
의사 늘려 격무 해소하고 연구 도와야
본보 산모 기획 호평 "정책 이정표"
"정부가 고위험산모센터 적자 메우고
'소송 리스크' 보상금도 대폭 늘릴 것"

편집자주

11년간 아기를 낳다가 사망한 산모는 389명. 만혼·노산·시험관·식습관 변화로 고위험 임신 비중은 늘고 있지만, 분만 인프라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100일 동안 모성사망 유족 13명, 산과 의료진 55명의 이야기를 통해 산모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붕괴가 시작된 의료 현장을 살펴보고 안전한 출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고민했습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7일 서울 중구 서울시티타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7일 서울 중구 서울시티타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일주일에 편지 한 통 있을까 싶은 산골에도 우체국은 필요합니다. 통신할 권리는 기본권이거든요. 경제 논리로 보면 없어야 하지만 정부가 운영합니다. 의료도 비슷해요. 적어도 택시 타고 1시간 거리에 분만 인프라가 있어야 합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분만 인프라 붕괴의 본질은 저출생에 있다고 진단했다. 저출생 → 분만 수요 급감 → 의료 비용 증가 및 의료수가 부족 → 분만병원 폐업 절차를 밟아 왔다는 것이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며 고위험 산모는 급증했고, 산모를 돌볼 의료진이 과거보다 많이 필요해지면서 의료 비용도 그만큼 커졌다고 봤다. 박 차관은 특히 △응급상황과 격무 △잦은 의료소송 △상대적 저임금 등으로 의사들이 분만 의료를 택할 요인이 많이 사라졌다고 봤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이 지난달 <산모가 또 죽었다: 고위험 임신의 경고> 기획기사를 통해 짚은 문제 의식과 다르지 않았다.

박 차관은 7일 한국일보와 만나 1시간 30분간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부의 의료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박 차관은 본보 기획에 대해 "사례를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했고 날카로운 분석과 진단이 돋보였다. 정책을 마련하는 데 좋은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분만 의료 대책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이날 언급한 대책들은 분만을 담당한 산과(産科) 의사들이 현장에서 호소한 내용의 대부분이 담겨 있었다. '바꾸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고 묻자, 박 차관은 "바꿔야 한다. 안 그러면 다 무너진다"고 했다.

30년 넘게 복지부에 근무하며 의사들과 마주했던 박 차관은 ①수가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환자를 기다리는 시간도 수가로 보상해야 하며, 산모가 없어 병원이 적자를 보더라도 정부 재정으로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후보상제'라는 이름으로 일부 어린이병원에선 이미 시범시행하고 있다. 그는 ②의대 증원을 통해 미용·성형 등 비필수 의료분야 의사 수요를 충분히 공급해 비필수 비용을 낮추고 산과 의사들의 보상 체계를 확립하겠다 했다. 고위험 산모 돌봄의 최전선에 있는 산과 교수들의 처우를 비필수 분야 의사들보다 높여주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소송 리스크를 낮추고 교수들의 연구 여건을 충분히 개선해 주겠다는 것이다.

박 차관은 장·단기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면 의료 정상화까지 10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부터 증원될 의대생들이 전공의 과정까지 마치는 시점과 맞물린다. 정부는 필수의료에 향후 5년간 건강보험 재정 10조 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 소아와 분만 분야에 3조 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다음은 박 차관과의 일문일답.

분만 의료 붕괴 본질은 저출생

-최근 대학병원과 개원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 인프라는 붕괴를 넘어 멸종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는 성명서를 냈다.

“저출산이 직접적 원인이다. 내가 1968년생인데 이때만 해도 한 해 100만 명이 넘는 아이가 태어났다. 개원 산부인과에서 하루 10건씩 아기를 받으니 수가가 그렇게 높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 명으로,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다른 분야라면 비급여 진료로 수익을 메울 수 있지만, 산과는 비급여도 거의 없다. 그러니 병원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7일 서울 중구 서울시티타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던 중 그림을 그려가며 분만 의료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경제학과를 졸업한 박 차관은 '규모의 경제' 이론을 설명하며, 과거 출산이 많았던 시기에는 의료 수가가 상대적으로 낮아도 비용이 낮아 이익을 남겼지만, 현재는 출생이 급감하고 비용이 급증하면서 분만 병원들이 영업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신용주 인턴기자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7일 서울 중구 서울시티타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던 중 그림을 그려가며 분만 의료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경제학과를 졸업한 박 차관은 '규모의 경제' 이론을 설명하며, 과거 출산이 많았던 시기에는 의료 수가가 상대적으로 낮아도 비용이 낮아 이익을 남겼지만, 현재는 출생이 급감하고 비용이 급증하면서 분만 병원들이 영업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신용주 인턴기자

-저출산 이외에 분만 인프라 붕괴의 또 다른 원인은 무엇인가.

"수가 문제도 있다. 분만 건수가 4분의 1 수준이 됐다면, 수가가 4배 올라야 병원을 유지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론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만혼과 노산 등의 영향으로 고위험 산모가 급증하면서 의료 인력은 더 많이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 대학병원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를 방문해 출산 영상을 봤는데, 산과는 물론이고 소아과 의사에 간호사까지 20여 명이 달라붙어 있었다. 분만실 유지 비용이 엄청 커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수가가 그 정도 수준이 안 되니 병원 입장에선 수익이 날 수가 없다.”

분만 담당할 산과 인력 부족 심각

-인력 부족도 심각하다. 젊은 의사들이 산과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

“저출산 영향도 있지만, 의료 체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분만 의사들이 돈을 못 버는 건 아니다. 다만 피부과·성형외과 같은 비(非)필수 의료 분야가 상대적으로 너무 매력적이라는 게 문제다. 산과는 ‘워라밸’이 너무 안 좋다. 아기가 언제 나올지 모르니 24시간 ‘온콜(on-call·전화 대기)’ 상태로 있거나 당직을 서야 한다. 산모나 아기가 잘못되면 소송을 당해 수억 원씩 물어줘야 할 수도 있다. 반면 피부·미용은 응급 상황도 없고, 환자 생명과 무관하다 보니 리스크도 없다. 돈도 훨씬 잘 번다. 원래 산과처럼 위험하고 노동 강도가 높은 필수 의료는 보상(돈)이라도 커야 하는데, 정반대 상황이다. 저위험·저강도인 피부·미용이 가장 많은 돈을 번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대한산부인과학회와 오수영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의 도움을 받아 전국 95개 전공의 수련병원의 산과 교수 현황을 전수 조사했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대한산부인과학회와 오수영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의 도움을 받아 전국 95개 전공의 수련병원의 산과 교수 현황을 전수 조사했다.

-젊은 피 수혈이 끊기니 현장을 지키는 산과 교수들은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산부인과를 지망하는 소수의 의사들도 대부분 비급여 항목이 많은 부인과를 택하지, 산과는 가지 않으려고 한다. 후배들이 들어오지 않으니 대학병원 산과 교수들은 야간 당직, 외래 진료와 수술까지 모두 감당해야 한다. 교수들의 삶을 보며 젊은 의학도들은 더더욱 산부인과 지원을 꺼리고 있다. 악순환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피부·미용 같은 비필수 과목으로의 쏠림 현상부터 완화해야 한다. 최근 피부·미용 고객층이 중장년층까지 확대되고, 외국인 의료관광까지 늘면서 시장이 커지고 있다.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인력을 공급해야 시장이 왜곡되지 않는다. 현재 3,058명인 의대 정원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한편, 의사들이 독점해온 미용 시장을 개방하는 방안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의사들은 산과를 포함한 필수 의료 분야의 수가 인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의대 증원 없이 수가 인상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민들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가 지금보다 3, 4배 늘어날 것이다. 현실적 처방이 아니다.”

-의사가 늘어나면 산과 지망이 늘어날까.

“당연히 근무 조건과 보상 등 필수 의료 자체의 매력을 높이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가령 국립대병원의 교수들은 공무원 보수 체계를 적용받기 때문에 시장 임금 수준에 비해 처우가 낮은 편이다. 교수를 그만두고 소속 병원에 촉탁의(계약직)로 재취업하는 게 낫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촉탁의 연봉이 교수 연봉의 2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교수 처우도 개선해야 한다.”

-의사들을 유인할 다른 대책도 있나.

“비(非)금전적 보상도 강화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미국 하버드 의대에 다녀왔는데, 교수가 1만 명이나 있더라. 교수가 많으니 제비뽑기로 학생 가르치고, 남는 시간에는 연구와 진료에 매진하는 구조였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진료 ‘올인’ 체계다. 교수가 아니라 봉직의(페이 닥터)에 가깝다. 1~2년 내에 이런 구조를 바꾸긴 어렵겠지만 10년을 내다보고 있다. 산과 교수들이 일주일에 2~3일은 산모를 보고, 나머지 시간은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적자 메워주는 사후보상제 도입 검토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7일 서울 중구 서울시티타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7일 서울 중구 서울시티타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수가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서는 인프라 개선이 불가능해 보인다.

“물론이다. 진료 횟수가 많을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지금의 ‘행위별 수가제’를 유지하면 분만 인프라 붕괴를 막기 어렵다. 수가 개념 자체를 바꿔야 한다. 가령 위험도가 높은 산모를 돌보는 대학병원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에 대해선 정부가 분만실 운영에 따른 적자를 메워주는 ‘사후보상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대학병원들도 산과 인력을 충분히 투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수가 불균형을 방치해온 정부 계획을 신뢰할 수 없다는 분위기도 있다.

“2028년까지 ‘10조 원+알파(α)’를 투입해 필수 의료 수가를 집중 인상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소아 대상 고위험·고난도 수술(3월), 중증 심장질환 혈관스텐트 시술(4월), 고난도 신장이식(7월 예정) 등에 대한 수가를 대폭 인상했다. 수가를 한꺼번에 확 올리면 좋은데, 국민 부담과 직결되는 부분이라 점진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

-전국에 20개인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를 늘릴 계획이 있나.

“조금 더 늘려야 한다고 본다. 다만 몇 개를 늘릴지 구체화한 단계는 아니다.”

-지역 분만 병원들의 경영 상황은 특히 심각하다.

“최근 경기 성남의 한 분만 병원이 40여 년 만에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분만 의료체계의 ‘허리’ 역할을 하는 지역 병원들이 무너지면 대학병원도 고위험 산모 치료에 집중하기 어렵다. 동네 곳곳에 분만 병원이 유지돼야 하는 이유다. 올해부터 산과 전문의가 있는 분만 병원에는 ‘안전 정책 수가’를 도입해 분만 1건당 55만 원을 추가 지급하고 있다. 분만 건수가 적어 병원 운영이 어려운 지역(특별·광역시 등 대도시 제외)에는 ‘지역 수가’ 명목으로 55만 원을 더 얹어주고 있다.”

-지역 수가의 경우 젊은 인구가 많은 수도권 신도시는 받고, 서울 구도심 분만 병원은 못 받아 역차별 논란도 있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역의료지도’를 만들려고 한다. 읍·면·동 단위까지 지역별 의료 수요와 공급을 지표화해 수가 정책에 반영하자는 취지다. 가령 서울과 농어촌 지역은 인구 구성, 소득, 의사 인건비 등이 다를 수밖에 없다. 농어촌 지역에 분만 병원을 지으면 젊은 인구가 적어 분만이 많지 않을뿐더러 인건비 부담도 크다. 이런 지역에는 수가를 더 많이 지원하는 쪽으로 제도화하려고 한다.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다.”

-전국 시군구 250곳 가운데 1시간 이내에 분만실 접근이 어려운 분만 취약지가 43.2%에 달한다.

“모든 시군구마다 분만 병원을 짓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신 30분~1시간 내에는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여주는 게 필요하다. 산전 진찰 단계에선 병원을 오가는 교통비를 지원해 주는 것도 방법이다. 출산 예정 1주일 전에는 분만 병원 근처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숙박비를 지원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현재 강원도가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다.”

포괄수가제가 분만 인프라 붕괴 원흉?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7일 서울 중구 서울시티타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7일 서울 중구 서울시티타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2012년부터 제왕절개 수술이 포괄수가제로 묶이면서 분만 병원이 몰락했다는 비판도 있다.(*포괄수가제 : 의료의 종류나 양과 관계없이 특정 질병에 미리 책정된 진료비를 지급하는 제도)

“잘못된 분석이다. 제왕절개 수술 시 산모 상태에 따라 추가적인 수술·시술이나 검사 등이 필요하면 정부에 비용을 별도로 청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포괄수가제가 원흉이라면 안과도 진작 망했을 것이다. 백내장 수술 또한 포괄수가제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의료 소송 부담 때문에 산과를 포기했다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분만 특성상 사고가 한번 나면 쫄딱 망할 수 있는데, 이런 리스크를 줄여줘야 한다. 정부가 책임·종합보험에 가입하면 의료 사고 발생 때 법적 책임을 대폭 줄여주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추진하는 배경이다. 불가항력적인 분만 사고가 발생하면 정부가 최대 3,000만 원을 보상해주고 있는데, 보상금을 대폭 올리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얼마까지 올릴 계획인가.

“내년도 예산안 반영을 추진하는 단계라 구체적인 금액은 말하기 어렵다. 다만 최소한 일본 수준까지는 올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일본은 2009년부터 ‘JQ시스템’을 도입해 신생아가 뇌성마비를 앓게 되면 의사 과실과 상관없이 3억 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많은 전공의들이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양질의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여건이 개선돼야 하고 정부도 투자해야 한다. 전공의 수련 개편 작업은 상당히 구체화돼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될 것이다. 내년부터 눈에 띄게 현장에서 바뀌는 게 보이면 많이 복귀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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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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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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