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요미우리 공동여론조사 30년]
독도·과거사 문제 불거질 때마다
양국서 한일관계 '좋다' 응답자 급감
역사 갈등 때마다 상대국 신뢰 하락
드라마·K팝 '한류' 긍정적 영향 확인
'29% 대 49%.'
광복 50주년을 맞은 1995년 한국일보가 제휴사인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처음으로 실시한 한일 공동 여론조사에서 상대국에 대해 '좋다'고 생각한 한국인과 일본인의 비율이다.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정적인 비율이 다수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일본엔 한국에 대해 '좋다'는 인상을 지닌 사람이 '나쁘다'는 사람보다 많았다.
변화 기점은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었다. 이어 2018년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 판결을 계기로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급격히 악화했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일관계가 개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또 다른 계기가 생기면 흔들릴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다.
지난 9일 창간 70주년을 맞은 한국일보는 오는 11월 창간 150주년을 맞는 요미우리와 함께 30년째 공동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 기간 조사 결과를 되돌아보며 양국 국민의 인식이 변화해 온 과정을 한일관계 전문가인 남기정 서울대 교수(일본연구소 소장)와 함께 분석했다.
독도·과거사 불거질 때마다 인식 악화
1995년 실시한 첫 조사 때부터 올해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한 공통 질문은 그 시점 한일관계에 대한 인식이다. 주로 과거사 문제와 독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한일 관계가 ‘좋다’는 응답이 크게 줄고 ‘나쁘다’는 응답이 대폭 늘어났다.
예를 들어 1995년 양국 관계가 '좋다'는 응답은 한국 42.7%, 일본 61%였으나, 일본 정치인의 과거사 망언과 독도 영유권 주장이 이어지자 바로 이듬해 조사에선 각각 18.7%와 37%로 급감했다.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 조례를 제정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독도 담화'를 발표한 2005, 2006년엔 한일관계가 '좋다'고 대답한 한국인이 10% 남짓에 불과했다.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가장 극적으로 악화한 계기는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었다. 2011년과 2013년 사이 한일관계가 '좋다'고 대답한 일본인 비율은 53%에서 17%로 급감했다. 2013년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해 한국인의 67.0%가 '적절하다'고 봤으나 일본인은 86%가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2014년엔 한일관계가 '좋다'고 답한 일본인이 7%에 불과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나쁘다'(87%)는 역대 최고치였다.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신뢰도도 1996~2011년까지는 40~60%대에서 움직였으나 2013년엔 31%, 2014년엔 18%까지 추락했다. 당시 도쿄 신주쿠의 신오쿠보역 근처 코리아타운엔 혐한 단체가 매일 확성기로 혐오 발언을 쏟아내며 시위를 벌였고, 대형 서점에도 버젓이 혐한 서적 매대가 마련됐다.
일본 아베 정권 때 인식 급격 악화
한일관계가 급격히 악화한 두 번째 계기는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이었다. 일본 피고 기업이 피해자에게 배상할 것을 명하자, 당시 아베 신조 정권은 "한국은 국제법을 어기는 나라"라며 연일 비난했다. 급기야 이듬해 여름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등 경제 보복을 감행했다. 한국인은 '노재팬(No Japan)' 운동으로 답했다. 2020년 5월 조사에서 한일관계가 '좋다'고 답한 한국인은 6.1%에 불과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나쁘다'는 응답은 90.3%로 역대 최고였다. 일본인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때, 한국인은 일본의 경제 보복 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셈이다.
지난 30년 한일관계는 과거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크게 흔들렸다. 남 교수는 지금 개선되고 있는 한일관계도 과거사 문제로 언제 다시 흔들릴지 모른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관계 개선 자체만을 목적으로 삼아 역사 문제는 어물쩍 봉합해 버리려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한국의 일본에 대한 신뢰도가 조금씩 높아지고는 있지만 관계 개선이 진행된 올해(28.7%)도 신뢰도는 30%가 채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한 가운데 역사 문제를 계속 제쳐 둔다면 관계 개선의 의미를 국민이 납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일 관계 개선 움직임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건드리지 못하던 문제도 용기 있게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역사 문제를 제기하는 건 일본 사회의 보수화로 인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올해 조사에서 '역사 문제로 이견이 있더라도 우호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양국 모두 절반에 가까웠다는 데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남 교수는 덧붙였다.
한류, 일본에 '한국 긍정 이미지' 퍼뜨려
30년간 지속된 공동조사에선 한일관계의 굴곡 속에서도 한국 드라마나 K팝 등 '한류'가 미친 긍정적 영향도 드러난다. 2003년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 공영방송 NHK의 전파를 타면서 시작된 한류는 2005년 드라마 대장금의 폭발적 인기로 더욱 확산됐다. 비슷한 시기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와 카라가 일본에 '2차 한류'를 몰고 왔다. 2007년 한일관계가 '좋다'고 답한 일본인은 73%로 역대 최고였다.
2017년 K팝 그룹 트와이스와 BTS가 일본 진출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K팝이 일본 10대 소녀를 사로잡으며 '3차 한류'가 시작됐다. 2018년 강제동원 판결 후 연일 지상파TV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들 세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남 교수는 "한일관계 개선이 시작된 지난해와 올해 조사에서 18, 19세 응답자는 다른 세대에 비해 두드러지게 긍정적 응답을 했다"며 "한류 드라마를 좋아하던 중년 여성의 딸 세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 교수는 일본의 30대가 매우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일례로 올해 한일관계가 '좋다'는 응답이 다른 모든 세대에서 40~50%대였으나 30대만 34%였다. 한국에 대한 신뢰도도 다른 세대는 30~40%대였으나 30대만 26%였다. 남 교수는 이들이 아베 2차 정권 시기에 20대가 되고, 아베 전 총리에 대해 긍정적인 '아베 세대'와 겹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일본 30대는 한국 정부가 앞으로 잘 눈여겨보고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는 세대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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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렇게 조사했다
한국일보는 광복 50주년을 맞은 1995년부터 6월 9일 창간 기념일에 맞춰 일본에서 최대 부수를 발행하는 일간지인 요미우리신문과 함께 '한일 국민의식 공동 여론조사’를 30년째 실시하고 있다. 초창기는 부정기적으로 조사했으나 2013년부터는 매년 진행하고 있다.
한일 양국 국민의 한일관계, 상대국 신뢰도·친밀도, 중국·북한 등 주변국 인식 평가 문항을 매해 빠짐없이 넣고, 여론조사 당시 현안에 대해 양국 국민에게 동일한 문항을 질문한 뒤 비교한 결과는 그 자체로 역사적 자료가 됐다.
한국일보의 올해 조사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8세 이상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휴대폰 면접조사 방식으로 지난달 24, 25일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요미우리신문은 사내 여론조사부를 통해 같은 달 24~26일 18세 이상 일본인 1,045명을 상대로 유무선 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한국일보는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 요미우리는 소수점 이하를 반올림해 수치를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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