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탐구생활] <20>
피식대학 '경상도 호소인'의 지역 비하
뉴미디어가 부추기는 '지방 콤플렉스'
편집자주
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복길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시리즈 ‘경상도 호소인’은 제목부터 문제가 있는 콘텐츠다. ‘호소인’이라는 개념은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부정하는 2차 가해의 언어로 탄생했다. 개인의 낙오와 열등감을 조롱하며 온라인 커뮤니티의 혐오 정서로 정착한 단어다. 보통은 ‘호소인’ 앞에 당위와 가치를 가진 것들이 온다. 그래서 시리즈의 제목으로 사용된 ‘경상도’와 ‘호소인’의 결합은 부적절하고 어떻게 해석하려 해도 어색하기만 하다. ‘경상도’가 대변하고 있는 비수도권 지역은 지금 우리 사회가 이상으로 삼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너 제목부터 엇나간 지역 비하
영상을 몇 편 보지 않아도 ‘경상도 호소인’의 주인공인 이용주가 경상도를 동경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경상도를 여행하며 매체에서 재현되는 경상도 남자 특유의 허세를 흉내 내고 엉터리 사투리를 쉴 새 없이 뱉는다. 이 코미디의 목적이 경상도 남성들의 불필요한 마초성과 과장된 권위를 풍자하는 것이었다면 성공적인 연기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경상도 호소인’은 비수도권 지역사회가 중심부와 얼마나 다른지를 외부자의 시선으로 표현하는 콘텐츠이기에 의도가 조금만 빗나가도 지역사회에 대한 비하로 읽히게 되는 한계를 드러낸다. 경북 영양군이 지역 특산물로 육성 중인 블루베리로 만든 젤리를 먹으며 "할머니 살 뜯는 맛"이라고 표현해 불거진 지역 비하 논란은 이 코미디 시리즈를 보며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위험 요인인 셈이다.
'백종원 신화'에 취한 지자체가 쫓는 허상
‘피식대학’을 탓하는 것만으로는 이 사태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지 않는다. 촬영을 앞두고 긴급 회의까지 했다는 영양군은 정말 이 콘텐츠가 지역 마케팅의 기회라 생각한 것일까. 또 다른 군도 7,000만 원의 홍보 예산을 편성해 '피식대학' 콘텐츠로 지역을 홍보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업 코미디 콘텐츠를 왜 지역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겠다고 생각한 것일까.
배경은 이렇다. 백종원의 언급 한 번에 시장이 살아나고, 트로트 가수의 공연 한 번에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는 현상은 지역사회가 미디어를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수많은 1인 방송 크리에이터가 지역 공공기관과 문화단체의 초청을 받아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충주맨’의 성공을 본보기 삼아 대다수의 지자체가 뉴미디어 부서를 신설해 홍보 영상 제작에 열을 올린다. 이런 흐름에서 300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인 '피식대학'이 하나의 지역만 다루는 콘텐츠에 등장하는 것만으로 지역을 홍보할 절호의 기회라 여긴 것이다.
소멸이라는 단어가 끝없이 삶을 위협하는 지역사회에서 지자체들의 선택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역을 홍보하는 방법이 늘어날수록 지자체는 ‘어떤 종류의 관심도 절실하다’는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 지역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 적 없는 외부자에게 쉽게 허락되는 자원과 관용, 외부의 에너지를 끝없이 갈구하는 태도가 오히려 지역민들의 자긍심을 훼손시킬 수 있다. 많은 구독자 수와 조회 수가 지역에 꼭 필요한 관심을 보장할지도 의문이다.
"어떤 종류의 관심도 절실" 경계해야
콘텐츠를 활용한 지역 홍보 방식으로 생각해 볼 사례가 있다. 지난 2월 공개된 일본 나가노현 나가노시의 도시브랜드 프로모션 영상에는 유명인이나 화려한 도시의 경관 대신 나가노 시민들의 일상과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장엄한 자연 속에서 내가 나일 수 있는 삶을 찾으십시오.” 영상은 온라인 입소문, 즉 바이럴에 대한 욕심보다 지역민의 삶을 비추는 데 초점을 뒀다. 지역 풍토를 긍정하고 지역민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다루는 것이 지역을 홍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임을 잊지 않는다.
지역사회의 환경과 지역민들의 고유한 일상을 콤플렉스로 만드는 것은 무지한 유튜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안'에서가 아니라 끝없이 '밖'에서 새로운 것을 찾으려 하는 지자체의 시선이다. 진정한 지역 마케팅을 위한다면 외부를 향한 공허한 홍보와 구애를 멈추고 지역과 지역민의 삶부터 긍정해달라. 건들거리며 엉뚱한 사투리로 ‘깔끼하네’(맛있다, 멋있다는 뜻)를 외치는 유튜버는 지역의 자긍심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먼저 ‘소멸’이라는 단어부터 지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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