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소 사실도 안 알려 상고도 못하게 해
법원 "고의에 가까운 중과실 인정" 판단
유족 "재판 내내 벽에 외쳐... 항소할 것"
학교폭력(학폭) 피해자 유족의 소송을 맡고도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 패소하게 만든 권경애(59) 변호사가 유족에게 5,0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소송에서 변론 기회를 상실한 유족들이 받았을 정신적 고통을 감안한 액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8단독 노한동 판사는 학폭 피해자 고 박주원양의 어머니 이기철씨가 권 변호사와 소속 법무법인 등을 상대로 낸 2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1일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권 변호사와 해미르 법무법인은 공동으로 5,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민사 소송은 형사 소송과 달리 당사자 출석 의무가 없긴 하지만, 권 변호사는 해당 소송 재판 모두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소송위임계약에 따른 담당 변호사로서, 소송을 수행할 의무를 부담하는 권 변호사가 잇달아 세 차례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 항소를 취하한 것으로 간주됐다고 인정했다. 민사사건 항소심을 불성실하게 수행한 점이 인정된 것이다. 특히 2심에서 2회 불출석을 인지하고 기일 지정 신청을 했음에도 다시 불출석한 점을 들며 "거의 고의에 가깝게 주의를 결여한 것으로 중과실에 해당한다"고 질책했다.
다만, 원고가 주장하는 재산상 손해에 대해선 소멸시효가 지난 점 등을 들어 "민사에서 승소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워, 재산상 손해의 인과관계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사건 승패를 떠나 (변론) 기회 상실로 인해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에 위자료 일부인 5,000만 원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딸의 사망 경위를 밝히려 6년간 소송을 이어 왔음에도 허망하게 끝나 유족이 느꼈을 허탈감과 배신감을 고려한 판단이다. 법무법인 해미르 역시 권 변호사와 연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봤다. 다른 변호사 2명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권 변호사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숨진 박주원양의 어머니를 대리해, 2016년 가해자 등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 1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선 변론기일에 권 변호사가 세 차례 불출석해 결국 패소했다. 민사소송법상 당사자가 3회 이상 재판에 출석하지 않거나 출석해도 변론하지 않으면 소를 취하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후 권 변호사는 패소 사실을 5개월간 이씨에게 알리지 않았다. 결국 상고가 이뤄질 수 없었고,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재판에 출석하지 않는 동안에도 권 변호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정치 관련 글을 꾸준히 올렸다.
이후 이씨는 권 변호사의 불성실한 변론으로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됐다며 2억 원을 손해배상 청구했다. 법원은 지난해 10월 권 변호사가 5,0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했지만, 이씨가 받아들이지 않아 정식 재판 절차가 진행됐다.
선고 후 이씨는 "당연히 항소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씨는 "재판 내내 혼자 벽에 외치고 있는 양상이었다"면서 "피해자들이 겪지 않아야 될 억울한 일을 겪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지 방법을 알려 달라"고 호소했다.
권 변호사는 이 사건으로 지난해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정직 1년의 징계를 받았다. 현행법상 권 변호사가 받을 수 있는 징계 종류는 △제명 △3년 이하 정직 △3,000만 원 이하 과태료 △견책 등 4가지다. 이씨는 판결 선고 직후 "조만간 정직 징계가 끝나 (권 변호사) 이름 옆에 변호사를 다시 붙일 수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특혜"라면서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과하지 않는 이들이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도록 대법원까지라도 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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