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1000만명 본 '버닝썬' 다큐…BBC처럼 못한 한국 언론의 3가지 잘못
알림

1000만명 본 '버닝썬' 다큐…BBC처럼 못한 한국 언론의 3가지 잘못

입력
2024.06.12 04:30
22면
0 0

BBC 5월 19일 유튜브에 '버닝썬' 다큐 공개
3주 만에 조회수 980만 회, 댓글 3.7만 개

한국 언론 보도는
①가해자에 집중...성범죄 본질 묻혔다
②후속보도 없어...정준영 출소, 1곳만 취재
③'여성 의제' 사소하게 보는 조직 문화

BBC가 지난달 19일 유튜브 'BBC 뉴스 코리아'에 공개한 '버닝썬' 다큐의 조회수는 11일 기준 978만 회에 달하고 3.7만 개의 댓글이 달렸다. 유튜브 캡처

BBC가 지난달 19일 유튜브 'BBC 뉴스 코리아'에 공개한 '버닝썬' 다큐의 조회수는 11일 기준 978만 회에 달하고 3.7만 개의 댓글이 달렸다. 유튜브 캡처


“이 다큐가 한국 언론이 아닌 BBC에서 나왔다는 게 참 비극이다.”

영국 공영방송 BBC가 유튜브 채널 ‘BBC 뉴스 코리아’에서 공개한 다큐멘터리 ‘버닝썬: 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에 달린 댓글이다. 이 댓글은 6만 회 가까운 ‘좋아요’를 받았다. 1시간 분량의 이 다큐는 공개 3주 만에 조회수가 1,000만 회에 이를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5년 전 일을 다룬 다큐가 이토록 열렬히 환영받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한국 언론은 왜 BBC처럼 하지 못했을까.

①관점 : ‘가해자’ 집중한 한국 언론, ‘피해자’ 조명한 BBC

BBC 다큐에 출연한 강경윤 SBS 연예뉴스 기자가 정준영 일당이 벌인 성착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BBC 다큐에 출연한 강경윤 SBS 연예뉴스 기자가 정준영 일당이 벌인 성착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2019년 한국 사회를 휩쓴 ‘버닝썬’ 사건은 복잡다단하다. 빅뱅 출신 가수 승리가 운영하던 서울 강남의 클럽 ‘버닝썬’에서 일어난 마약 이용 성착취와 가수 정준영의 성폭행·불법촬영, 연예인과 경찰의 유착 등이 실타래처럼 얽혀있었다. 당시 한국 언론은 이 사건을 ‘연예인 범죄’, ‘마약 범죄’로 주로 접근했고, 가해자들의 가해 행위에 초점을 맞춘 자극적인 보도가 많았다.

BBC의 시선은 달랐다. 이 복잡한 일들이 모두 여성들에 대한 참혹한 성범죄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다큐 제작진은 성범죄 피해자의 목소리와 취재 과정에서 괴롭힘 피해자가 된 기자들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관점이 달라지자 가수 고(故) 구하라가 가해자들과 경찰의 유착관계 규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고, 가해자들이 턱없이 낮은 처벌을 받았다는 것도 선명히 드러났다. 다큐는 또 ‘버닝썬’ 사건 3년 전인 2016년 발생한 정준영의 성폭력 피소 무마 과정까지 조망하며 한국 사회가 얼마나 오래 성범죄에 무감했는지 보여줬다. 또 강남 클럽에서는 아직도 '버닝썬' 방식의 성착취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경고했다.

홍지아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는“BBC 다큐는 말하고 한국 언론은 말하지 않은 것들을 비교해 보면, 한국 언론이 어떤 것을 중요시하며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지가 보인다”며 “한국 언론은 성범죄를 다룰 때 가해자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고 처벌, 재발 방지 등 구조적인 문제에는 관심이 적다”고 지적했다.

가수 구하라씨가 연예인들과 경찰의 유착 사실을 밝히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BBC 다큐에서 처음 밝혀졌다. 유튜브 캡처

가수 구하라씨가 연예인들과 경찰의 유착 사실을 밝히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BBC 다큐에서 처음 밝혀졌다. 유튜브 캡처


② 후속 보도 : 정준영 출소 취재 안 한 한국, 3년 준비한 BBC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를 이용해 일간지와 방송사의 '버닝썬' 보도 건수를 집계한 결과. 2019년 3월 2,662건에 이르던 보도량은 가해자 구속과 함께 급감, 이후 후속 보도도 거의 없었다. 올해 5월 BBC 다큐가 큰 반향을 일으키며 국내 언론 보도 건수도 늘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를 이용해 일간지와 방송사의 '버닝썬' 보도 건수를 집계한 결과. 2019년 3월 2,662건에 이르던 보도량은 가해자 구속과 함께 급감, 이후 후속 보도도 거의 없었다. 올해 5월 BBC 다큐가 큰 반향을 일으키며 국내 언론 보도 건수도 늘었다.

다큐를 제작한 BBC의 탐사보도팀 ‘BBC eye’는 1시간 분량 다큐를 위해 3년 전부터 취재를 시작했다. 정준영의 단체채팅방 대화 내용을 확보해 보도했던 강경윤 SBS 연예뉴스 기자는 BBC, 미국 ABC 방송 등 세계 여러 방송사로부터 가해자들이 모두 구속된 후에 섭외 요청을 받았다. 사건 발생 당시에는 경쟁적으로 취재하지만 가해자 구속 등으로 사건이 잦아든 뒤엔 거의 다루지 않는 한국 언론의 관행과는 대조적이다.

BBC 다큐에 출연해 ‘버닝썬’의 마약 이용 성착취 취재과정을 들려준 고은상 MBC 기자는 “2022년 BBC 제작진의 섭외 연락을 받고 굉장히 놀랐다”며 “‘이미 끝난 사건 아닌가?’ ‘사람들의 관심이 이렇게 멀어졌는데 취재를 한다고?’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국 언론사에도 한 이슈를 장기간 취재하는 탐사보도팀은 있지만 당일 뉴스 제작에 압도적으로 많은 인력과 자원이 투입된다. 다른 언론사가 단독 보도한 이슈는 깊이 다루지 않는 관행, 기자들의 1, 2년 주기 인사이동 등도 심층 취재를 가로막는다.

고은상 MBC 기자가 BBC 다큐에 출연해 '버닝썬'에서 벌어졌던 마약을 이용한 성착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고은상 MBC 기자가 BBC 다큐에 출연해 '버닝썬'에서 벌어졌던 마약을 이용한 성착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BBC 다큐는 정준영 출소 후 공개돼 반향이 더 컸고, 사회에 깊은 고민을 던졌다. 하지만 한국 언론 중 지난 3월 19일 전남 목포교도소에서 정준영의 출소를 취재한 언론사는 뉴스1 한 곳뿐이었다. 대부분 언론이 ‘버닝썬’을 ‘다 끝난 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KBS 시사교양국 이은규 PD는 “다른 성범죄 가해자의 출소에 맞춘 아이템을 고민한 적이 있는데 ‘징역 다 살았는데 뭘 어떻게 할 거냐’는 주변의 논리 구조를 이겨내지 못했다”며 “버닝썬 다큐를 보고 사법 판단이 끝났다고 언론이 후속 보도를 못 하는 게 아니라,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국내 언론 중 뉴스1만 3월 19일 전남 목포교도소에서 출소하는 정준영을 취재했다. 뉴스1 홈페이지 캡처

국내 언론 중 뉴스1만 3월 19일 전남 목포교도소에서 출소하는 정준영을 취재했다. 뉴스1 홈페이지 캡처


③ 조직문화: 여성 의제에 둔감한 한국 언론이 놓치는 것들

한국 언론에서 여성 관련 의제는 '사소한 문제'로 취급돼왔다. 여성 대상 범죄 등 여성 관련 이슈는 여전히 가볍거나 선정적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고, 구조적인 문제나 피해자 목소리를 듣는 데도 소홀하다. 홍 교수는 “한국 언론이 ‘버닝썬’ 사건을 후속 보도하지 않은 이유는 명쾌하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언론계 조직 문화의 영향이 크다. OBS PD 출신인 김수진 전국언론노조 성평등위원장은 “우리 사회 대부분 조직이 그렇지만 언론계는 다른 업계보다 훨씬 보수적이며 기득권 남성 중심 시각이 고착돼 있다”며 “기사 아이템 결정 등 주요 의사 결정 구조와 조직 문화가 성평등하게 바뀌어야 성범죄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보도, 피해자 중심의 보도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BBC 다큐에 출연한 '버닝썬'의 마약 성폭행 피해 여성은 법의 처벌을 피한 가해자들이 "평생 죄책감을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튜브 캡처

BBC 다큐에 출연한 '버닝썬'의 마약 성폭행 피해 여성은 법의 처벌을 피한 가해자들이 "평생 죄책감을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튜브 캡처


남보라 기자
서진 인턴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