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헌 의원, 국가유산청 자료 분석
서식 개체 중 절반 가량 떼죽음 추정
환경부·국가유산청, 소통 조차 안돼
지난겨울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의 사망 수가 1,000마리를 넘은 것으로 확인됐다. 죽은 산양 10마리 중 3마리는 강원 인제군, 고성군 등 설악산 국립공원에서 발견됐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으로부터 받은 산양 멸실(사망)신고서를 보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망한 산양 수는 1,022마리였다. 국가유산청과 환경부가 추정하는 국내 서식 산양 수가 1,000~2,000마리임을 감안하면, 절반 이상이 떼죽음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지난겨울 산양 사망 수는 지난 3월 본보를 포함한 언론사들이 국가유산청으로부터 받은 멸실신고서를 기반으로 집계 보도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2월 기준 277마리에서 3월 537마리, 4월 747마리로 늘어나다 5월 기준 1,000마리를 넘은 게 확인된 것이다.
시민단체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과 멸실 신고서를 지역별로 분석한 결과 비무장지대(DMZ)가 속한 강원 화천군과 양구군에서 죽은 산양 수는 각각 264마리, 316마리로 도합 56.7%에 달했다. 이곳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을 위해 설치한 방역 울타리와 농가가 친 울타리가 집중돼 있는 곳(본보 3월 7일 보도)이다. 산양이 울타리에 가로막혀 먹이를 구하지 못한 채 고립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생태적 단절을 초래하는 ASF 방역 울타리를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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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국립공원이 있는 강원 고성군과 인제군, 양양군, 속초시에서만 346마리(33.8%)가 죽은 점도 눈에 띈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은 "3월 말까지 산불통제기간으로 수색하지 못했던 국립공원에서 기존에 죽은 산양들이 대규모로 발견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산양이 1,000마리가 넘도록 떼죽음을 당하는 동안에도 관할부처인 국가유산청과 환경부는 제대로 된 원인규명은커녕 부처 간 협업도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의원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이 환경부에 보낸 협조 공문은 '천연기념물 산양 폐사 관련 협조 요청' 한 건뿐이었다. 공문에는 "ASF 차단 울타리가 산양 폐사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르고 있다"며 "환경부 차원의 관련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되며, 기 시행 중인 조치가 있으면 청에 알려주길 바란다"고 돼 있다.
이 의원은 "천연기념물 보호관리 주무부처인 국가유산청이 마땅히 해야 할 고심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가유산청이 환경부만 쳐다보고 있다간 돌아오는 겨울에도 산양의 떼죽음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며 "조사를 통해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환경부가 지난 4월 개최한 멸종위기 포유류 산양 보호를 위한 전문가 자문회의에 국가유산청은 참석하지 않았다.
환경부는 ASF 차단 울타리 일부를 개방하고 모니터링하는 시범사업을 내년 5월까지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개방 구간이 적은 데다 실제 산양이 사망하거나 구조된 위치, 원인 등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은 가운데 정책이 수립(본보 4월 18일 보도)되고 있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이런 가운데 강원도의회에서도 ASF 울타리 철거와 개방을 요구하는 의견이 나왔다.
정 사무국장은 "산양 폐사 수가 1,000마리를 넘을 때까지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환경부와 국가유산청의 무능함을 넘은 직무유기로 봐야 한다"며 "22대 국회가 개원한 만큼 각 상임위에서 관계부처를 상대로 철저한 감사와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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