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연 시 ‘긍휼의 뜻’
편집자주
시집 한 권을 읽고 단 한 문장이라도 가슴에 닿으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흔하지 않지만 드물지도 않은 그 기분 좋은 성공을 나누려 씁니다. '생각을 여는 글귀'에서는 문학 기자의 마음을 울린 글귀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각자의 우산이 있었음에도 / 하나를 나눠 쓰자 청했어 // 그렇게라도 새로 산 우산의 쓸모를 구하다보면 / 걸음이 나란해지고 / 서로의 몸속에서 피가 도는 박자를 알아봐주면 // 단 한 사람 / 멀리서 구하지 않아도 이미 도착한 것일지 모른다고 // 그때 알았네 /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 한 사람 안에 포개진 두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는 거 (하략)”
안희연 시인의 시집 ‘당근밭 걷기’에 실린 시 ‘긍휼의 뜻’에는 “백지 앞에서 마음이 한없이 캄캄해질 때”나 “걸고 쓰느라 부서진 마음 알아봐주는” ‘단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인생의 운명적인 구원자와도 같아 보이는 단 한 사람이지만, 그가 하는 일들은 그리 대단하진 않습니다. “등 뒤에 집채만한 나무 그림자를 매달고 나타나 /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서로의 목격자 되어주기” “서글픈 농담하고 싱긋 웃기” 등의 소소한 일들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너’의 행동들은 ‘나’의 생기(生氣)가 되고,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해주곤 합니다. 어쩌면 인생도 이런 것 아닐까요. 매일을 살아가게 하는 건 대단히 그럴싸한 무언가가 아니라 소소하지만, 분명히 곁에 있었던 누군가와 함께했던 순간들일 겁니다. 또 이렇게 살아난 존재는 또 다른 존재를 살리”(이재원 문학평론가)며 “여럿이 살아나는” 결과로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시집 ‘당근밭 걷기’는 2012년 창비신인시인상을 받으며 등단해 활발한 작품활동을 해온 안 시인의 네 번째 시집입니다. 안 시인은 시집 출간을 앞두고 출판사 문학동네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는,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를 쓰는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저로서는 무척 절박했던 것 같다”라며 덧붙인 시인의 말을 새겨 봅니다. “삶은 굉장하다고, 상상 이상의 반짝임과 일렁임으로 가득하다고, 그러니 반드시 살아 있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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