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브리핑 열고 상법 개정 필요성 강조
"이사 충실의무, 선진국에선 너무 당연"
"배임죄, 전 세계 한국이 유일...폐지해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현행 '회사'에서 추가로 '주주'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두고 "선진국에서는 너무 당연히 여겨지는 국제기준"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정치권의 상법 개정 방안을 두고 경제계가 "소송이 남발할 것", "해외에는 없는 법안" 등 반발하자 이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원장은 경영진의 부담을 줄이는 차원에서 상법 개정과 함께 배임죄 폐지를 함께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1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브리핑을 열고 "일부 논객 사이에서 이사 충실의무가 해외에 없다는 식으로 와전되는데 솔직히 유감스럽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당초 계획에 없던 브리핑을 연 이 원장은 "혼란이 있다 보니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금감원장의 생각을 말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 해소를 위해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에 대해 재계가 강력히 반발하는 것을 두고 이 원장이 총대를 메고 진화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재계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가 12일 발표한 국내 상장기업 153개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61.3%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넓히면 주주대표소송과 배임죄 처벌 등이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원장은 "그동안 쪼개기 상장이나 다양한 주주가치 실패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며, 개인부터 해외투자자까지 이를 해소해 달라고 호소해왔다"며 상법 개정 취지를 다시 강조했다. 실제 상법 개정 논의는 2022년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의 쪼개기 상장 이후 본격화됐다. 핵심 계열사를 분리해 상장한 회사는 막대한 투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LG화학 주가는 폭락해 개인투자자들은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재계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카드로 이 원장은 배임죄 폐지를 내걸었다. 이 원장은 "배임죄는 타인의 임무를 다루는 자가 손해를 끼치기만 하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도"라며 "폐지가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 이후 일부 주주들이 경영진이 주주 의견을 충실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며 무차별적으로 배임죄 처벌 목적의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해 균형의 추를 맞추겠다는 얘기다. 이 원장은 "현실적으로 폐지가 어렵다면 구속요건을 좀 더 명확히 해 정말 나쁜 의도가 확인된 경우만 해당하는 등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이 검사 시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주요 재계 인물을 배임죄로 기소한 전력이 있는 만큼 이제 와서 배임죄 폐지를 거론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전현직 통틀어 배임죄를 제일 많이 해본 만큼 (배임죄에) 제일 고민이 많은 사람 중 한 명"이라며 "내가 말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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