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피해 야기한 ELS 손실사태
투자자 보호 우회한 은행판매 결과
'특정금전신탁' 시장에서 몰아내야
은행의 주가연계증권(ELS) 판매가 논란이다. 증권사는 다양한 채무증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다. 우리나라 증권사는 일반 채권에 더해 독특하게도 ELS를 자금조달 수단으로 활용한다. ELS는 복잡한 구조의 금융상품이다. 흔히 해외 주식거래소의 주가지수와 연계해 수익이 약속된다. 예를 들어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와 연계된 ELS의 경우 홍콩H지수에 대해 '기준선'을 설정한다. 기준선이 30%라고 하면, 홍콩H지수가 30%이상 하락하지 않을 경우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원금에 대해 일정한 이자율로 이자를 지급한다. 홍콩H지수가 기준선인 30%를 초과해 하락할 경우에는 ELS투자자가 원금에서 하락률만큼을 제하고 나머지 원금만을 받게 된다. 예컨대 홍콩H지수가 투자시점 대비 50% 하락했다면 투자자는 원금의 절반을 까먹게 된다. 최근에 벌어진 ELS손실 사태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ELS 투자자는 투자결정에 앞서 따져봐야 할 것이 많다. 어떤 증권사가 3년 만기, 이자율 5%를 약속하는 일반적인 채권을 발행한다고 해보자. 이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하려는 투자자는 그 증권사의 신용도에 향후 3년간 별 문제가 없을지를 따져보면 된다. 반면 이 증권사가 홍콩H지수 연계 3년 만기 ELS를 발행한다고 해보자. 이 ELS 투자자 역시 이 증권사의 향후 3년간 신용도는 당연히 따져보아야 한다. 발행 증권사에 문제가 생기면 약속된 수익금을 받지 못하는 것은 ELS와 일반 채권의 투자자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ELS 투자자는 홍콩 H지수의 변동성에 대해서도 따져보아야 한다. 증권사가 제시한 홍콩H지수의 기준선이 어느 정도 확률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인지도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ELS에 비해 간단해도 일반 채권 투자의 위험 판단도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채권, 주식, ELS 등 투자위험 판단이 쉽지 않은 금융상품의 판매는 절차대로 정해진 금융업종이 전담하도록 금융규제의 체계가 진화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채권, 주식, ELS 등 금융투자상품 판매는 증권사가 전담하도록 규제하고 있는 연유이다. 은행이나 보험사에 비해 증권사의 인력이 우수하거나 보다 투자자를 위하는 마음이 클 것이라는 뜻에서가 아니다. 단지 업무를 구분해 놓는 것이 투자자 보호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홍콩H지수 폭락으로 개인투자자 손실 사태를 야기한 ELS는 대부분 은행을 통해 판매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은행이 ELS를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일까? '특정금전신탁'이라는 마법의 망토 때문이다. 특정금전신탁은 투자자가 자금을 금융기관에 맡기면서 운용방법을 특정하고, 금융기관은 지시받은 대로 운용해서 손익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상품이다. 투자자 스스로 투자위험을 판단하고 금융기관에는 집행만을 맡긴다. 투자자 보호 문제가 원천적으로 발생할 여지가 없으므로 투자자가 지정할 수 있는 금융상품 범위에 거의 제한이 없다. ELS도 그 범위에 포함된다. 은행의 ELS 판매는 투자자가 특정금전신탁에 가입하면서 운용방법을 ELS로 지정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과연 현실에서 투자자 스스로 ELS를 운용방법으로 특정해 맡긴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은행의 ELS 판매금액이 이처럼 막대한 규모에 다다를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특정'금전신탁이 본래 취지와 달리 사실상 '불특정'금전신탁으로 기형화되면서 마법의 망토가 되어버린 이야기는 우리 금융시장에서 지난 20년 동안 전개된 전설 아닌 역사이다. 왜 그리되었는지는 별도 논의가 필요하다. 어쨌든 이제 그 마법의 망토를 전설로 만들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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