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22명 중 외국인 노동자 20명
중국 18명·라오스 1명·미확인 1명 등
유족 "죽은 아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
"우리 딸 이름, OOO입니다."
중국인 채모(73)씨가 24일 오후 서툰 한국어로 다급하게 말했다. 그는 뉴스를 보자마자 슬리퍼 차림으로 경기 시흥시에서 급하게 올라왔다고 했다. 연락이 닿지 않는 20대 딸을 찾고 있었다. 채씨의 딸은 이날 아침 일찍 경기 화성시의 리튬 일차전지 제조업체인 ‘아리셀’ 공장으로 출근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선 오전 10시쯤 리튬 전지 폭발로 불이 나 다수의 사상·실종자가 발생했는데, 그의 딸은 연락이 닿지 않는다.
채씨의 딸 사례처럼, 이번 리튬 전지 공장 화재 사상자 다수는 외국인 노동자다. 그러나 외국인인 탓에 신원파악부터 유족에게 연락하기까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중국인 노동자가 다수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화성 서산면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리튬전지가 폭발해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오후 6시까지 집계된 공식 사망자는 22명이다. 화성소방서 관계자는 "회사 관계자 말로는 화재 현장 안에 1명이 추가로 더 있을 수 있다고 해 몇 차례에 걸쳐 소방 대원들이 수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의 대다수는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였다. 큰 돈 벌어보겠다고 코리안 드림을 찾아 한국으로 왔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중국 국적이 18명으로 제일 많았고, 라오스 국적이 1명, 국적 미상 1명까지 총 20명이 외국인이었다. 화재가 발생한 건물 1층에서 탈출한 직원 이모(59)씨는 "2층 안에는 완제품을 포장하는 ‘패킹룸’이 위치해 있었다"면서 "단순 포장 작업이라 외국인 노동자가 유독 더 많이 몰려있던 편이었다"라고 설명했다.
희생자의 다수가 외국인인 만큼, 화재 후 사망자들의 신원 파악도 쉽지 않았다. 화성시청은 이날 오후까지 "고용노동부와 법무부로부터 해당 공장에 근무하던 외국인들의 신원을 요청해 둔 상태"라며 체류 형태나 가족 관계에 대해선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이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 대부분은 아웃소싱 형태로 고용된 일용직이라, 명단 확보를 하는 것부터 지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상황 대처 역시 현장 근로자 대부분이 일용직 외국인이어서 더욱 어려웠다는 게 소방당국의 판단이다. 공장 내부 구조가 낯설어 발화 지점 바로 근처에 있던 대피로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선호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은 "인명피해가 많았던 이유는 결국 대피 방향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며 "외국인인 데다 일용직이 대부분이라 공장 내부 구조에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 찾으러 왔지만 언어 소통도 안 돼
어렵게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은 근로자 가족들의 속도 타들어 갔다.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신원 파악이 늦어 가족에게 연락이 가지 않거나, 우여곡절 끝에 현장에 도착해도 언어 문제로 소통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 중국인 근로자의 가족은 연신 눈물을 훔치며 귀에 착용한 통역기구로 겨우 당국자와 대화를 이어가는 등 현장 곳곳에서 안타까운 모습이 이어졌다.
실종자 다수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에도 ‘불통’은 계속됐다. 현장을 배회하던 유족이 이송된 병원을 몰라 헤매는 상황도 발생했다. 딸을 찾아 헤매던 채씨는 "아이가 일하는 공장에 불이 났다는 소식도, 죽었다는 소식도 연락 한 통이 없다"고 분개하며 "아이를 데리러 가야하는데 어디로 가야 볼 수 있나"라고 울먹였다.
더 큰 문제는 이들처럼 가족이 한국에 들어와 있지 않고 본국에 남아있을 사망자들이다. 국내에 가족이 없는 사망자들은 사고 소식조차 뒤늦게 전해 들을 가능성이 크다. 화성소방서 관계자는 "현재 시신 훼손상태가 심각해 육안으로는 남녀 정도만 구분 가능하다"며 "(국적 외) 구체적인 인적 상황에 대해선 DNA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유족과 부상자를 돕는 통합센터를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현장을 찾은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화성시청에 통합지원센터를 설치해 24시간 운영하고, 전담 공무원을 일대일로 배치하겠다"며 "외국인 유족들에게 항공료, 통역비, 체류비를 모두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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