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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인 부부가 전 재산 처분해 한국에서 원정 출산한 사연은

입력
2024.06.27 04:30
수정
2024.06.2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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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서 신생아 사망 두 번에 유산까지 '아픔'
넷째는 꼭 살리고 싶어 집 차량 팔고 한국행
분당서울대병원서 응급 수술로 2㎏ 딸 출산
수억 빚 생길 처지 "열심히 돈 벌어 갚을 것"
"아이는 부모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원동력"

11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응급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몽골 여아 다쉬제베그 아민후슬렌양의 발가락 모습. 복막염 증세로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수술을 받고 현재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11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응급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몽골 여아 다쉬제베그 아민후슬렌양의 발가락 모습. 복막염 증세로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수술을 받고 현재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출산을 위해 집을 팔아야 하고 수억 원의 빚까지 생긴다면, 부모는 이를 감수하며 출산을 강행할 수 있을까. 몽골인 부부 소놈체베인 다쉬제베그(40·부)와 시일레그마 오트공게렐(39·모)은 몽골이 아닌 이역만리 한국에서 예쁜 딸을 얻었다. 이름은 다쉬제베그 아민후슬렌. '진심으로 너를 원하고 축복한다'는 뜻으로 부부는 아이를 꼭 살리고 싶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왔다.

장폐색(장이 막히는 질환) 증세를 보였던 아이는 지난 11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응급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났다. 다음 날 장 절개 수술을 받은 아이는 현재 신생아중환자실(NICU)에서 회복 중이다. 회복 경과가 좋아 한 달 뒤에는 퇴원이 가능해 보인다. 아버지 소놈체베인은 24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한국까지 건너와서 어렵게 얻는 딸은 내 삶의 에너지이자 원동력"이라며 악착같이 돈을 벌어 병원비를 갚아 나가겠다고 했다.

11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응급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몽골 여아 다쉬제베그 아민후슬렌양이 분유를 먹는 모습. 복막염 증세로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수술을 받고 현재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11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응급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몽골 여아 다쉬제베그 아민후슬렌양이 분유를 먹는 모습. 복막염 증세로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수술을 받고 현재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부부는 앞서 세 아이를 잃었기 때문에 이번에 얻은 딸에 대한 애착이 더욱 컸다. 첫째는 2015년 11월 만삭에 3.5㎏으로 태어났지만, 장폐색 증세를 보이다 세 차례 수술 끝에 사망했다. 2017년 11월 둘째가 찾아왔지만 첫째와 똑같은 증상을 보였다. 첫째를 허망하게 잃었던 부부는 몽골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립 모자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산전 진찰도 성실히 받았지만, 둘째 역시 하늘나라로 떠났다. 부부는 둘째 사망 이후 유전자 검사를 받았지만 별문제 없다는 진단결과가 나와 아이가 잘못된 원인도 알 수 없었다.

2020년 찾아온 셋째는 임신 3개월도 안 돼 유산됐다. 부부는 이후 절망감에 빠져 출산을 포기했지만, 지난해 11월 예상치 못하게 넷째가 찾아왔다. 장폐색증으로 아이가 재차 잘못될 수 있다는 걱정이 떠나지 않았지만, 부부는 한 번만 더 해보자고 결심했다. 2024년이 용의 해인 만큼 왠지 건강할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몽골인 부부 소놈체베인 다쉬제베그(왼쪽)와 시일레그마 오트공게렐(오른쪽)이 24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몽골인 부부 소놈체베인 다쉬제베그(왼쪽)와 시일레그마 오트공게렐(오른쪽)이 24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첫째와 둘째에게 나타난 증상이 '잔인하게도' 넷째에게 똑같이 나타났다. 그나마 다행인 건 초음파로 증상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아이를 세 차례나 잃었던 부부는 몽골에서 아이를 출산하기 두려웠다. 부부는 친척 조카가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대퇴부 골절 수술을 받고 만족해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부부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병원에 연락했다. 치료비가 만만치 않았지만, 집(5,000만 원)과 차를 팔고 빚을 내면 감당할 수 있겠다 싶었다.

아내는 5월 27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첫 진료를 받았다. 초음파 검사 결과 태아의 장이 이상하게 늘어나 있었다. 태아의 변 때문에 장이 막혀 팽창돼 있던 것이다. 의료진은 임신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응급제왕절개 수술을 하기로 했다. 의료진은 이달 10일 실시한 초음파 검사 결과 태아에게 복수가 생긴 것을 확인했다. 태아의 장에 구멍이 생겨 복막염으로 발전한 상황이었다. 의료진은 다음 날 응급제왕절개 수술을 진행해 2㎏의 아이를 건강하게 꺼냈다. 임신 34주 만이었다.

시일레그마 오트공게렐이 24일 분당서울대병원 신생아중환자실(NICU)에서 어렵게 낳은 딸 다쉬제베그 아민후슬렌양을 의료진과 함께 바라보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시일레그마 오트공게렐이 24일 분당서울대병원 신생아중환자실(NICU)에서 어렵게 낳은 딸 다쉬제베그 아민후슬렌양을 의료진과 함께 바라보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아민후슬렌양은 다음 날 수술에 들어갔다. 의료진은 문제가 된 장을 잘라내고 절단된 양쪽의 장을 이어 붙였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각종 수치도 좋아졌다. 박지윤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부모가 거액을 들여 한국까지 와서 출산한 만큼 건강한 출산을 꼭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당시 신생아중환자실 병동은 꽉 차 있었지만, 박 교수는 소아과에 부탁해 어렵게 자리를 마련했다.

박지윤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24일 병원 회의실에서 어렵게 태어난 다쉬제베그 아민후슬렌양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박지윤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24일 병원 회의실에서 어렵게 태어난 다쉬제베그 아민후슬렌양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부부가 아직 납부하지 못한 치료비는 5,000만 원 수준이다. 한국 사람이면 100만 원가량 지불하면 되지만, 이들에게는 '외국인 수가'가 적용돼 병원비는 8,000만 원까지 늘어났다. 병원이 15% 감면해줘 부담은 조금 줄었지만, 몽골에서 들고 온 현금 2,300만 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부부는 치료비를 내기 위해 집(5,000만 원)을 팔았고, 몽골에서 타던 차량까지 내놨다. 한 달 정도 신생아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 하기에, 병원비는 최대 2억 원까지 불어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부부는 딸이 건강을 되찾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이유가 생겼고 열심히 살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아이를 위해 집까지 판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부부는 이렇게 답했다. “한국인과 몽골인 생각에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몽골에선 아직도 후손을 남기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아이가 생기면 아이 인생까지 책임져야 하는 만큼 더 열심히 살 수밖에 없어요. 계획하지 않은 아이가 생긴 걸 보면, 이번엔 꼭 잘될 것 같았어요. 어렵게 찾아왔는데 포기할 수 없잖아요. 한국 의료 수준을 몽골이 따라가지 못하고, 이런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더 많은 몽골인이 누리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요.”



이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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