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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나고자란 이주청소년... 취업 못하면 나가라니 '무슨 날벼락'

입력
2024.06.27 04:30
수정
2024.06.27 09:5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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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이민정책-①사회구조 전략으로]
한국서 초·중·고 나와도 불안정한 체류
그러다 성인 되면 기존 체류자격 박탈
휴학 제한, 취업·창업시 체류 연장 가능

편집자주

인구소멸과 기후변화 등으로 구조적 위기가 닥쳐오고 있지만 5년 단임 정부는 갈수록 단기 성과에 치중해 장기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정권교체마다 전 정부를 부정하는 정치적 갈등으로 정책적 혼선도 가중됩니다. 한국일보는 창간 70주년을 맞아 이런 문제를 진단하면서 구조 개혁을 이루기 위한 초당적 장기 전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자말자다(가명·20)에게 '한국이 이주배경청소년에게 어떤 사회가 됐으면 좋겠는지'를 묻자, 그는 스케치북에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꿈꿀 수 있는 사회'라고 주저 없이 적었다. 자말자다는 8살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으로 와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현재 서울의 한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 중이다. 김태연 기자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자말자다(가명·20)에게 '한국이 이주배경청소년에게 어떤 사회가 됐으면 좋겠는지'를 묻자, 그는 스케치북에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꿈꿀 수 있는 사회'라고 주저 없이 적었다. 자말자다는 8살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으로 와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현재 서울의 한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 중이다. 김태연 기자

자말자다(가명·20)가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건 2012년이었다. 9·11 테러의 원흉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된 이듬해였다. 그때 아프간 정정(政情)은 불안하고 혼란했다. 무역업을 하던 아빠는 불안한 정세 때문에 거래대금을 계속 못 받았고, 가족들은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 그래서 자말자다 가족은 아빠가 사업차 오가던 한국으로 건너왔다. 체류 자격을 얻기 위해 2년 간 출입국사무소를 여러 차례 두드린 끝에, 가족은 임시비자인 인도적체류 허가(G-1)를 받았다.

고국을 떠날 때 자말자다는 여덟 살이었다. 이제 스무 살 성인이 된 자말자다에겐, 인생의 가장 긴 기간(12년)을 보낸 한국이 모국이나 다름 없다. 여성을 사람으로 안 보는 탈레반이 재집권한 아프간으로는,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이미 한국이 고향인데... 난 여전한 이방인

자말자다는 서울에서 초·중·고를 나와, 지금은 서울의 한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 중이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가 제 몸에 착 붙듯이 익숙하다. 그럼에도 남들과 다른 외모 탓에, 주변 시선이나 관심을 끄는 일이 다반사다. "와, 한국말 잘하시네요." 자말자다가 유창한 한국말을 하면 으레 이런 반응이 나온다. 자말자다는 "강의실에 들어가면 저를 따라 70명의 눈동자가 움직인다"면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데도 조별과제마다 '외국인이라 손 많이 가는 것 아니냐'는 편견을 마주하면 속상하다"고 털어놨다.

자말자다가 넘어야 했던 벽은 '시선차별'에 그치지 않는다. 다른 한국인 학생들과 달리, 자말자다는 대학에 갈 때 '2,000만 원 이상'의 통장잔고증명서를 제출해야 했다. 학비를 낼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겠다는 것이었지만,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그에게 소득이나 자산이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한국 국적 보증인이 '여차하면 학비를 대신 내겠다'는 보증을 서고서야 겨우 입학이 허가됐다.

'이주배경 청년'이 넘어야 할 벽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학생 신분을 유지하지 않을 경우 체류 자격을 잃을 수 있어, 자말자다는 질병·사고 등 부득이한 사유가 아니라면 휴학계를 낼 수 없다. 다른 친구들은 어학연수나 공모전 활동, 인턴십 등을 위해 휴학을 자유롭게 하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마친다 해도 졸업 이후 체류 자격을 얻기 위해선, 취업비자를 받아야 한다. 인문학 전공자인 자말자다에게 취업의 벽은 높다. 한국에 남으려면 자말자다에겐 '백수의 시간'이 결코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대학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국제기구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지만 "인턴십 경험조차 쌓기 어려운 제가 그럴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막막함을 토로했다.

대학 진학부터 취업까지... '산 넘어 산'

최근 10년간 19세 이하 체류 외국인 수. 그래픽=송정근 기자

최근 10년간 19세 이하 체류 외국인 수. 그래픽=송정근 기자

자말자다처럼 부모를 따라 왔거나, 국내로 온 이주민 부모를 둔 '이주배경 청소년'은 성장 과정에서는 물론이고 성인이 된 이후 대학 진학이나 취업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여느 한국 청소년들처럼 한국의 교육 제도 아래에서 같은 문화와 경험을 공유하면서도, 이주민 배경이라는 이유 때문에 남들보다 더 어려운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국내에 체류하는 이주배경 청소년의 수는 늘고 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중 19세 이하 이주아동·청소년은 17만 6,086명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외국인 등록을 하지 않은 아동 수까지 포함하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10년 전인 2014년(7만 7,710명)과 비교해 약 2.4배 늘어난 것이다.

이주배경 청소년이 증가함에도 제도적 뒷받침은 충분하지 않다.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영·유아기에 입국했더라도, 이주배경 청소년들은 부모의 불안정한 체류자격 탓에 미등록이 되기도 한다. 법무부는 2022년 2월부터 3년간 '한시적 체류허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초중고 재학 중인 청소년에게는 학업을 위한 체류자격(D-4)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면 1년간 임시체류자격(G-1)을 부여하는 것이다. G-1의 경우, 유학 또는 취업 요건을 갖추면 해당 자격으로 변경 가능하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다시 불안정한 체류 상태에 놓인다. 한국에 계속 남으려면 유학 비자(D-2)를 받아 대학에 진학하는 수밖에 없다. 외국인 취업 비자는 E-1~E-10까지 있지만 전문인력 비자인 E-1~E-7은 대개 학사 이상 학위가 필요하며, 비전문인력 비자인 E-8~E-10은 제조업이나 농·어업 등 일부 분야에 한정돼 있다.

이주청년은 휴학, 백수 허용 안돼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성공회 용산나눔의집에서 만난 아미나(가명·22)는 "저같이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에게는 이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부모를 둔 아미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나왔다. 김태연 기자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성공회 용산나눔의집에서 만난 아미나(가명·22)는 "저같이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에게는 이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부모를 둔 아미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나왔다. 김태연 기자

나이지리아 국적의 부모를 둔 아미나(가명·22)는 한국에서 태어나 지금껏 여기서 22년을 살았다. 심지어 부모님 고향 나이지리아엔 한 번도 못 간 '토종 한국사람'이지만, 놀랍게도 아직까지 나이지리아 국적이다. 고교 1학년 때, 체류 자격을 보증해주던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혼하고 나이지리아로 돌아가자 아미나와 두 동생, 어머니는 미등록 상태(불법체류)가 됐다. 그러다 다시 임시 비자를 받았는데, 이제 와서 정든 고향 한국을 등지고 생소한 나이지리아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아미나는 "한국 친구들과 이별해 생활 환경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건 상상도 안 된다"고 말했다.

아미나는 단체의 도움을 통해 D-2 비자를 발급 받아 대학에 재학 중이지만,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새로운 체류 자격을 마련해야 할 생각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영문학을 전공했기에 학원 강사 등 비교적 빠르게 취업을 할 수 있는 길을 생각 중이다. 아미나 역시 한국에 남으려면 취업 비자를 받아야 한다. 그는 "휴학을 하고 본인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알아보는 또래 친구들이 너무 부럽다"면서 "이번 방학에는 당장 취업에 도움이 되는 스펙을 쌓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24학번 새내기 남학생 오두와(가명·19)는 나이지리아에 뿌리를 둔 이주배경 청소년이다. 오두와도 한국에서 태어나 여기서 쭉 자랐다. 가족들은 본국에 돌아갔지만, 오두와와 남동생(고등학생)은 고향 한국을 떠날 수 없었다. 오두와는 배우의 꿈을 품고 단체의 지원을 받아 대학에 어렵사리 입학했지만, 갓 대학생이 된 그가 부모의 도움 없이 월세·식비건강보험료를 부담하는 건 쉽지 않았다. 돈을 아끼려 하루에 한 끼만 먹고 빈 강의실에 들어가 노숙을 하기도 했다.

오두와는 당장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하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카페나 식당에선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그가 택한 건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이어지는 야간노동. 한두 시간 겨우 눈을 붙이고 학교에 가거나, 잠을 버티다 못해 아예 불출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학생의 경우, 성적이 나쁘면 체류기간 연장이 안 돼 출국 조치를 당할 수 있다. 오두와를 지원하는 강슬기 의정부엑소더스이주민센터 활동가는 "이번 학기에 체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비자 연장에 어려움을 겪을까 봐 걱정이 된다"고 털어놨다.

올해 봄 칸(가명·18)이 교정에 핀 벚꽃 나무 아래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독자 제공

올해 봄 칸(가명·18)이 교정에 핀 벚꽃 나무 아래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독자 제공

대학 입시를 앞둔 칸(가명·18)은 경기 안양에서 태어난 파키스탄 배경 이주청소년이다. D-4 자격을 받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칸 역시도 나고 자란 한국에서 계속 머물고 싶다. 하지만 대학 진학을 위해 당장 마련해야 하는 2,000만 원의 잔고증명도, 외국 유학생 기준으로 지불해야 하는 높은 등록금도, 고용빙하기라 불리는 취업 시장도 그에게는 만만치 않은 벽이다.

칸은 최근 입시에 대한 정보를 찾으며 한국에서 살 방법을 고민 중이다. 자신과 같은 이주아동을 돕고 싶어 상담 관련 학과에 진학하려 했지만, 취업 여건을 고려해 사회복지학과로 희망 학과를 변경했다. 칸은 "대학에서 성적이 떨어지면 비자 연장도 어렵다고 하고, 취직을 해도 월급이 일정 수준 이상이 돼야 한다고 들었다"면서 "대학을 어찌어찌 졸업한다 해도, 그 이후로는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안정적 체류 자격 제공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주배경 청소년의 바람은 '내가 평생 살았던 땅' 한국에서 계속 사는 것이다.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이 2021년 12월 발행한 '이주배경청소년실태조사'(응답자 1,315명)에 따르면, 앞으로 한국에 계속 살고 싶은지를 물었더니 766명(58.3%)이 "그렇다"고 답했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도 459명(34.9%)이었는데, 체류 자격 등 현실적 여건으로 인해 계속 살 수 있을지 판단이 안 서기 때문으로 추정됐다.

실제로 이주배경 청소년이 영주권을 따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한국에서 일반 영주(F-5-1) 비자를 받으려면, △소득 △연령 △학력 △한국어 능력 등 여러 기준들을 충족해야 한다. 특히 전년 국민총소득(GNI) 두 배 이상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내국인도 맞추기 쉽지 않다.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했던 네팔인 수잔 샤키아는 2010년 어학연수 비자(D-4)로 한국에 들어와, △유학(D-2) △특정활동(E-7) △거주비자(F-2)를 거쳐 2021년 영주권을 받기까지 11년이 걸렸다. 그가 방송 출연 없이 일반 회사만 다녔다면 소득 조건을 충족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봐도, 한국은 이주배경 청소년의 체류에 훨씬 까다로운 조건을 적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미등록 외국인 자녀에게 시민권을 주고 내국인과 동일한 권리를 부여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본국에서의 출생 여부나 거주 기간을 고려해 국적을 부여한다. 1990년부터 반(反) 이민주의 정책을 펼쳐온 호주 또한, 본국에서 태어나 10년 이상을 거주한 아동에게 부모의 국적이나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국적을 부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주배경 청소년이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거주 비자(F-2)를 부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수년 간 이주배경 청소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생각한다"면서 "영주권을 따는 게 쉽지 않다 보니 F-2를 취득하는 게 최선인 상황"이라고 말했다.이어 "전공이나 직종 선택시 받는 제한을 완화하고, 일이나 학업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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