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이민정책-①사회구조 전략으로]
편집자주
인구소멸과 기후변화 등으로 구조적 위기가 닥쳐오고 있지만 5년 단임 정부는 갈수록 단기 성과에 치중해 장기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정권교체마다 전 정부를 부정하는 정치적 갈등으로 정책적 혼선도 가중됩니다. 한국일보는 창간 70주년을 맞아 이런 문제를 진단하면서 구조 개혁을 이루기 위한 초당적 장기 전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돌봄 인력난 완화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 활용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개별 가구가 사적계약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아도 돼,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올해 3월 한국은행 보고서)
요즘 중앙은행은 이런 걱정을 한다. 한국은행이 돌봄 노동 인력난의 우회로(최저임금 피하는 방법)를 생각해야 할 정도로, 노동력 감소 문제는 심각하다. 그러나 나오는 해법은 주로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해서 해결하겠다는 방안 일색이다.
외국인 노동자 현실을 오랫동안 들여다본 이들은 이게 '1차원적 접근'이라고 단언한다. 1990년대 산업연수생 제도에 뿌리를 둔 고용허가제 중심의 이주민 정책은 눈앞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한 미봉책일 뿐, 노동시장의 근본적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용허가제란?
고용허가제는 내국인을 고용하지 못한 고용주가 합법적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주로 비전문취업(E-9) 비자가 주어지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취업한 외국인 근로자도 내국인과 동등하게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는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취업한 외국인은 입국일로부터 3년 동안 취업활동을 할 수 있다. E-9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는 처음 근무를 시작한 사업장에서 계속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사업장 휴폐업, 임금체불 등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사업장 이동을 최대 세 번까지 허용한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30년 뒤인 2055년 국내 총인구는 현재 총인구보다 500만 명 이상 줄어든 4,486만8,000명으로 예측된다. 0.72명까지 떨어진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을 올려봐야, 인구절벽은 피할 수 없는 미래다.
총인구 감소만큼 큰 문제가 인구구조의 질적 고령화. 바로 젊은 노동력,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감소다. 2022년 기준 3,674만 명이던 생산가능인구는 2050년 2,445만 명, 2072년 1,658만 명으로 반토막 날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의 한국은 일할 사람이 사라져 노동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세상이 될 게 분명하다. 자연히 전체 경제규모는 축소되고, 재화와 서비스 가격도 치솟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저출산 관련 범국가적 총력 대응을 예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출산·육아 지원 외의 인구 부족 해결책으론 주로 이주민 정책이 거론된다. 실제 국내 이주배경인구는 올해 261만 명에서 2042년 404만 명으로 급증할 전망(통계청)이다. 30년 뒤인 2050년에는 국내 인구 10명 중 1명이 외국인이나 내국인 2세, 귀화 내국인일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동안 한국은 노동력 공급이 부족한 곳에 외국인 인력을 단기적으로 수입하는 식의 고용허가제로 '저렴하게'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해왔다. 이 고용허가제의 핵심은 ①보충성의 원칙과 ②정주화 방지 원칙이었다.
보충성 원칙이란 내국인 근로자의 일자리를 잠식하지 않도록 외국인 근로자는 보완적으로만 활용해야 한다는 것. 정주화 방지 원칙은 단순기능직에 종사하는 비전문 외국인 근로자(E-9 비자)가 장기간 체류하면서 뿌리를 내리지 않도록, 단기 순환방식으로 고용하는 방식을 뜻한다. 장기체류 시 영주권 부여 문제를 비롯해 결혼, 출산, 자녀교육 등 다양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배타적 방식의 고용허가제는 효과만큼이나 폐해도 컸다. 사업장 이동 제한(예외적인 경우만 3회 허용) 조치 등이 뒤따르며 외국인 노동자에 비해 고용주(사장)가 '갑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살다가 사망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잇따랐고, 불합리한 처우에 못 견뎌 사업장을 탈출하고 불법체류자(미등록 이주민)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정해진 체류기간이 지나 모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들 중 일부도 법망을 피해 숨어들었다. 지난해 통계청 외국인력 고용조사에 따르면, 체류기간 만료 후 계속 한국에 머물기를 원하는 이주민이 국내 체류 외국인의 89.6%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외국인을 '손님'(관광객)과 '일꾼'(노동자)으로만 양분하는 인식은 한국에 오래 머물고자 하는 이주민을 '돈만 바라는 존재'로 비치도록 했다. 자연히 혐오 정서가 이어졌고, 다문화 가정에 대한 차별이나 외국인 범죄율에 대한 확증편향 등이 뒤따랐다.
전문가들은 이민사회는 피할 수 없는 미래라는 점을 우선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일시적 노동력 유치가 아닌, 바람직한 사회구조 설계를 목적으로 한 이주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노동력 부족은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도입이나 고령층 일자리 확대 등 다양한 분야와 각계각층의 논의를 통해서 풀어야 하는 문제지, 이주정책을 노동 문제의 대안으로 보는 식의 접근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이야기다.
이충훈 한국이민학회 연구이사는 "국내에서의 이민은 장기적 비전 없이 '노동력만 갖다 활용하겠다'는 과거 발전국가 시대의 사고방식 하에서만 논의되고 있다"며 "이런 방식이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을 수 있어도, 미래로 나아가야하는 지금은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정주화를 통해 이들을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임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향수 건국대 공공인재대학 행정학전공 교수는 "이주노동자의 정주화는 부족한 젊은 노동력을 공급할 수 있는 적절한 채널이 될 수 있다"며 "정주화 방지로 인해 발생하는 불평등 등 인권 측면에서도 현행 원칙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이 단서를 제공한 외국인 노동자 이중임금 제도도, 결국엔 전체 노동자 처우의 하향 평준화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많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차별적 노동조건을 적용하면 내국인의 노동조건 역시 저하될 수밖에 없다"며 "기업이 부담해야 할 노동비용을 정당하게 부담해야만 국가 경제도 건강하게 성장하고 국민 삶의 질도 개선된다"고 말했다.
미국식 영주권 제도 확대도 대안으로 나왔다. 저임금·저숙련 노동자들의 장기체류 및 사회적 계층 이동 문턱을 높여 늘어나는 이주민 2세 등을 비롯한 다문화 사회 통합과 함께 고부가가치 노동력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창원 이민정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이민자 자녀들이 고등교육을 받아 실리콘 밸리 등 다양한 분야와 업종에서 일하는 미국처럼 영주권 제도 확대 등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며 "30년 뒤 우리가 바라는 한국 사회의 밑그림부터 그리고, 사회정책으로서의 이주정책을 근본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화성에서 온 재생e, 금성에서 온 원전
노인 빈곤과 웰다잉
이민정책, 지금이 골든아워
이중위기 맞은 교육
정치가 정권 한계 넘어서려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