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유튜버 논란에 '구독 취소' 행렬
피식대학·오킹, 역풍에 사실상 활동 중단
해외선 전쟁 침묵 유명인 '디지틴' 운동
"하루아침에 관심→나락 가는 주목 경쟁"
"잘못 하나로 무분별한 마녀사냥은 위험"
구독자 113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 '달씨'가 전세사기로 문제가 된 집을 다른 세입자에게 넘겨 '폭탄 돌리기'를 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2일 영상에서 그는 세입자를 '나의 유일한 희망, 파랑새'라고 표현하며 "그분이 마음을 바꿀까 계약서를 쓰는 날까지 1분 1초가 고통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계약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누리꾼들은 "선을 넘었다", "정신 못 차리다가 나락 갈 줄 알았다"고 비난하며 구독을 취소하고 있다.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유명인이 논란이 될 만한 행동이나 발언을 했을 때 지지를 철회하는 것을 뜻하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가 확산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나락 간다"는 표현과 함께 연예인은 물론 유튜버까지 '캔슬' 대상이 되는 일이 빈번해졌다. 관심이 곧 돈이 되는 사회에서 대중의 정당한 의사 표현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비판의 본질에서 벗어난 채 성급한 '마녀사냥'이 될 위험이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경솔한 발언에 '구독 취소'… 등 돌리는 대중
유명 개그 유튜브 채널 '싱글벙글'도 최근 영상에서 군인을 조롱했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23일 올라온 광고 영상에서 마사지기를 홍보하며 "군대 가면 다리 아플 텐데 마사지기라도 좀 가져갈래?", "(좋으면 뭐하니) 군대 가면 쓰지를 못하는데"라고 발언한 점이 문제가 됐다. 해당 유튜버와 광고주인 코지마는 연이은 군 사망 사고를 세심하게 고려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누리꾼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대중들은 경솔한 발언 등으로 물의를 빚은 유명인들에 대해 구독을 취소하며 등을 돌리고 있다. 지난달 11일 경북 영양군을 방문해 낙후된 지역을 조롱한 유튜버 '피식대학'은 구독자가 318만 명에서 논란 이후 294만 명으로 줄었다. 코인 사기 의혹에 휩싸인 유튜버 '오킹'은 한때 약 20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했지만 현재는 161만 명으로 급감했다. 피식대학은 한 달째 새로운 콘텐츠를 올리지 않았고, 오킹도 4개월째 해명 방송 외에 별다른 활동이 없는 상태다.
'전쟁 침묵' 유명인에 "디지털 단두대 세우자"
캔슬 컬처는 해외에서는 이미 익숙한 개념이다. 2010년대 중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시작돼, 인종 편견과 성차별, 소수자 혐오 문제 등을 둘러싸고 확산됐다. 2017년 '미투'(성폭력 고발), 2020년 '블랙 라이브스 매터'(BLL·Black Lives Matter) 운동이 기폭제가 됐다. 미성년자 성범죄 등으로 체포된 래퍼 알 켈리에 대해 "알 켈리의 입을 막아라"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확산한 적도 있다.
최근에는 유명인을 '디지털 단두대'(digital guillotine·디지틴)에 올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난달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남부에 대한 군사 작전을 발표한 가운데 미국 최대 패션쇼인 '멧 갈라'가 열린 것이 계기였다. 연예인 등 이 패션쇼 유명 참석자들은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토벌을 명분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3만 명 넘게 학살하는 데는 침묵했다는 비판을 샀다. 디지틴 운동을 시작한 틱톡커 '레이디프롬더아웃사이더'는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신이 가진 자원을 쓰지 않는 유명인과 인플루언서를 차단할 때"라며 "그들에게 준 우리의 조회수, 좋아요, 댓글과 돈을 빼앗을 때"라고 호소했다.
대상에는 팝스타 셀레나 고메즈, 저스틴 비버와 배우 젠데이아 등이 포함됐다. SNS 분석 업체 '소셜블레이드'에 따르면 차단 목록에 오른 이들은 하루 평균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의 팔로어를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명 모델인 헤일리 칼릴은 프랑스 혁명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했다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Let them eat cake)라는 말을 립싱크하는 영상을 올렸다가 공분을 샀다. 영상은 삭제했지만 1,000만 명에 달하던 칼릴의 팔로어는 990만 명으로 줄었다.
주목 경쟁 사회의 단면… "속도 경계해야"
캔슬 컬처는 주목 경쟁이 보편화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분석된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연예인과 유튜버들은 단순히 돈만 많이 버는 게 아니라 사회적 위신을 얻고 있다"며 "그만큼 대중이 요구하는 윤리 의식, 도덕적 기준이 엄격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논란을 일으키면 대중은 바로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갑작스레 인기를 얻은 만큼 바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절벽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징은 개인이 모여 의사 표현을 하면서 군중의 특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와 달리 대중이 양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구조가 됐다"며 "특정인을 타깃으로 찍으면 순식간에 몰리는 힘이 어마어마하다"고 경계했다. 이 과정에서 '나락 보내기'는 일종의 놀이처럼 여겨진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대학 교수는 "한 명이 비판하기 시작하면 '밴드웨건 효과(편승 효과)'가 생겨 반대 의견을 적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잘못에 대한 비판에서 벗어나 특정인의 삶, 인생 전체를 공격하는 '조리돌림'은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캔슬 컬처가 '한 사람을 끝장내자'는 식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며 "자신이 가진 게 팔로어가 전부인 취약한 상황에서는 상당한 상실감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 평론가도 "정당한 비판은 할 수 있지만, 잘못 하나로 특정인의 모든 걸 매도하는 마녀사냥으로 흘러가게 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성급한 캔슬 시도가 낳는 위험성도 명확하다. 속도에만 매몰되면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단순히 좋고 싫음의 감정만 남고,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최 교수는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통해 지지를 철회하면서 실질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손 평론가도 "고 이선균씨 사건처럼 명예를 실추시키기는 쉽지만 가짜뉴스를 바로잡고 회복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며 "논란에 대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갖고, 흐름에 휩쓸려가고 있지는 않는지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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