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한국가스공사 인천 LNG 기지' 가다
자그마치 3만 km다. 최근 홍해 사태로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지 못하게 되자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으로 돌아서 가는 경로로 인천과 미국 사빈패스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을 오가는 LNG선의 항해 거리다. 배에서 보내는 시간만 3개월. 27일 긴 항해 끝에 약 6만5,000톤(t)을 실은 17만4,000㎥ 급의 LNG선 '에스엠 이글(SM Eagle)' 호가 한국가스공사 인천LNG기지 서쪽 끝 제2부두에 접안해 있었다. 가로 길이가 295.5m로 서울 여의도 63빌딩보다 50m나 긴 LNG선이었지만 부지 면적이 138만8,400㎡(약 42만 평)인 인천기지에선 적당한 크기로 보일 정도였다. '세계 최대 규모'라는 수식어가 실감되는 순간이다.
세계 최대 규모답게 인천기지는 국가시설 보안 등급이 가장 높은 '가급 시설'이다. 각 가정이나 발전소로 LNG 공급이 한순간이라도 끊기면 안 되기 때문에 '주요 3부' 대통령실, 국회, 대법원에 준하는 보안이 요구된다. LNG선이 정박한 이날 인천기지 외곽을 대형 드론 두 대가 정찰한 것도 '가급 시설'이라 벌어지는 풍경이다. 특히 LNG선이 들어오면 방호 담당자들은 더 예민해진다. 최근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드론으로 인천기지 부지 내로 침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곳에는 최대 3km 이내의 드론을 탐지·식별해 침투가 확인되면 추적해 무력화할 수 있는 '안티 드론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보안이 중요한 만큼 인천기지는 외부에 거의 노출된 적이 없다. 가스공사가 이번에 언론에 시설을 공개한 것도 약 10년 만이다.
국내 수입 LNG 33% 맡는 '중추' 인천기지
가스공사 인천LNG기지는 경기 평택, 충남 당진, 강원 삼척, 경남 통영, 제주기지와 함께 전국에 LNG를 공급하고 있다. 평택기지에 이어 1996년 상업 운영을 시작해 수도권 LNG 공급을 맡는 중추 역할을 한다. 저장 탱크 23기에 저장할 수 있는 LNG 용량도 155만5,560t이다. 가스 수요가 많은 겨울에는 LNG선이 하루에 2대씩 들어온다. 김영길 인천기지본부장은 "지난해 기준 미국, 호주 등 21개 나라에서 들여온 LNG 3,548만 t 중 33%에 해당하는 1,207만 t은 여기에서 맡는다"고 말했다.
인천기지는 1기지와 2기지로 나눠져 있다. 가스 공급은 멈춰서는 안 되기 때문에 두 개의 기지가 서로 보완한다. 혹여 한 개 기지에서 가스 공급이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면 남은 기지에서 가스 공급이 끊기지 않게 하는 것.
운전선→저장탱크 배관 1km...6.5 강진 버티는 탱크
LNG는 탄화수소가스를 낮은 압력을 가해 냉각 액체화한 것이다. 전용 운반선에 실려온 영하 162도의 액체인 LNG는 인천기지 부두의 '화이트암'을 통해 옮긴다. 물을 뽑아 올리는 펌프 역할을 하는 설비이다. 이날 SM Eagle호에 연결된 화이트암에서도 계속 LNG가 옮겨지고 있었는데 영하 162도의 액체가 계속 지나가니 설비 주변에 큰 성에 덩어리가 만들어져 있다. 양재훈 설비운영2부장은 "화이트암을 통해 배에서 빼낸 LNG는 약 1km의 배관을 지나 23개의 저장탱크로 보내진다"고 설명했다.
인천기지의 저장탱크는 땅에 붙어 있는 '지상식', 땅에서 살짝 떠 있는 '고상식', 땅에 묻혀 있는 '지중식'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상식은 저장탱크로 접근하기 용이하고, 고상식은 영하 162도의 LNG의 냉기가 땅에 스며들지 않게 하고, 지중식은 LNG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인천기지는 고상식 10기, 지중식 10기, 지상식 3기를 보유하고 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저장탱크들은 강도 6.5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돼 있다"며 "내부는 스테인리스 소재로 공기가 없는 상태라 부식될 염려가 없다"고 강조했다.
LNG를 기체로 전환이 관건...시간당 6,270톤 기화
LNG는 액체 상태이기 때문에 기체 상태로 바꿔야 연료로 쓸 수 있다. LNG 기지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기화능력'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천기지는 시간당 6,270t의 LNG를 기화할 수 있다. 인천기지가 보유한 기화시설은 연소식 기화기, 해수식 기화기 두 종류다. 연소식 기화기는 보일러와 같은 원리로 LNG를 끓여 기체로 바꾸는 설비다.
해수식 기화기가 독특하다. 이날 운행 중인 해수식 기화기 내부는 저장탱크에 있던 액체 상태의 LNG가 해수식 기화기의 수많은 얇은 배관 내부를 타고 올라가면 배관 바깥에는 '바닷물'이 위에서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영하 162도의 액체가 배관 밖에 흐르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바닷물의 온도를 교차해 만나면 기체로 바뀌는 원리를 이용했다고 한다.
최선환 설비운영1부장은 "LNG의 온도가 워낙 낮아 최소 5도의 바닷물과 만나도 0도의 기체로 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바닷물이 5도보다 높으면 높을수로 기체화가 잘 돼 여름에는 해수식 기화기의 효율이 좋다"며 "특히 인천기지는 바다가 바로 옆에 있어 바닷물을 가져오기 쉽다"고 덧붙였다.
기체로 변한 LNG는 무색무취하다는 특성 때문에 '부취'가 주입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양파 썩은 냄새에 가까운 가스 냄새는 가스공사가 안전을 위해 일부러 넣은 것이다. 그런 뒤 LNG는 공급관리소를 통해 각 가정이나 발전소로 보내진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LNG 수요가 많은 동절기에는 하루 최대 9만 t이 나가기도 했다"며 "먼 외국에서 수도권 각 가정이나 발전소에 매일 LNG가 공급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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