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의 행보를 보면 '독불장군'이 따로 없다. 정몽규 회장은 "여론에 귀 기울이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눈과 귀를 닫고 있다. 홍명보 울산 HD 감독이 직언했듯 축구협회 내 직원들도 정 회장의 독단에 아무 말 하지 못한 채 방관만 하고 있다. 심지어 협회 내 직원들끼리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상황 파악을 못 할 정도니 말 다했다. 흥망성쇠의 역사를 배운 우리는 이미 축구협회가 어떤 길로 가고 있는지 훤히 알고 있다.
그래서 먼발치에서 바라본 축구협회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축구계뿐만 아니라 축구담당 기자들 사이에서도 축구협회는 '그들만의 조직'으로 통한다. 오죽하면 축구팬들조차 "축구협회엔 희망이나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왜 이렇게 안하무인 조직으로 전락한 걸까. 그동안 축구협회는 독불장군처럼 '군림'했다. 딱히 견제 세력도 없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있긴 하지만 견제보단 상생의 기구로 봐야 할 터. 권오갑 프로축구연맹 회장은 뼛속까지 현대가(家) 사람으로,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50년 가까이 '현대인'으로 살았다. HD현대 회장을 겸직한 그가 현대가 태생인 정 회장과 등을 돌릴 수 있을까. 그들만의 바운더리 안에서 정 회장이 4연임을 노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구상이다.
이러한 생각이 뿌리 깊이 자리 잡은 정 회장과 축구협회가 4개월째 공석인 대표팀 사령탑을 찾은 일도 오죽할까 싶다. 감독 선임 막바지 작업 중에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사임했다는 사실 만으로 내부 실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7월 초 감독 선임을 앞두고 정 회장을 비롯한 협회 수뇌부와의 갈등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는데, '제2의 클린스만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게 나온 이름이 거스 포옛(56) 전 그리스 축구대표팀 감독, 다비드 바그너(52) 전 노리치 시티 감독이다. 포옛 감독은 선덜랜드에서 기성용(FC서울)을 지도한 바 있고, 바그너는 사생활 논란을 일으킨 황의조(알란야스포르)와 노리치 시티에서 스쳤다.
하지만 두 감독의 이름에 축구계는 고개를 갸웃한다. 둘 다 눈에 띄는 성과 없이 하락세에 놓여서다. 우루과이 출신의 포옛 감독은 브라이튼에서 첫 지도자 생활을 했으나, 부임 당시 팀은 3부리그(잉글랜드) 소속이었다. 2부리그 승격을 이끌었으나 1부리그 입성엔 실패했다. 이후 선덜랜드, AEK 아테네, 레알 베티스, 상하이 선화 등에서 각각 오래 머물지 못했고, 스페인의 레알 베티스에선 6개월 만에 옷을 벗었다.
2부리그인 허더즈필드 타운(잉글랜드)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바그너 감독도 샬케04, 영 보이즈, 노리치 시티를 맡았으나 재직 기간이 짧고 국가대표팀 경험이 전무하다. 한국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토트넘)이 강조한 '경험' 면에서 기준 미달이다.
하락세인 외국인 감독이 대표팀을 맡아 몸값을 높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이 대표적이지만, 당시에도 그는 세계적인 명장이었다. 한국은 이제 22년 전의 팀이 아니다. 언론에서 '역대급 최고 전력'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수준이 맞는 감독이 와야 하는 건 당연하다. 아울러 올 초 아시안컵 사태에서 보듯 젊은 선수들의 자의식과 개성이 무척 강해졌다. 이들을 보듬고 품을 수 있는 지도자가 절실하다.
하지만 축구협회의 기준은 여전히 22년 전 과거에 머물러 있다. 대표팀의 수준과 성향, 미래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밀실 인사' '톱-다운 인사'를 고집하며 20년 전 아집을 부리고 있다. 그럴 바엔 홍명보 감독이 옳은 선택일지 모른다. 본인은 사양했으나 차라리 홍 감독에게 사정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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