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으로 흔히 쓰이는 암브록솔 성분이 발작 등 신경학적 증상이 있는 고셔병 환자의 증상 호전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셔병(Gaucher's disease)은 몸 속의 낡은 세포들을 없애는 데 도움을 주는 글루코세레브로시데이즈(Glucocerebrosidase)라는 효소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유전 질환으로, 프랑스 의사 P.C.E.고셰(1853~1918)가 발견했다.
글루코세레브로시데이즈 효소가 부족하면 당지질을 제대로 분해하지 못해 비장·간·골수 등에 글루코세레브로사이드(몸 속의 낡은 세포)가 축적된다. 이로 인해 당지질이 체내 세포 내 축적돼 골수에 영향을 미쳐 뼈 통증과 괴사가 생길 수 있고 간, 비장, 림프절 비대가 생길 수 있다. 10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희소 질환이다.
이범희·황수진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센터 교수팀은 2013년부터 10년 동안 고셔병 환자 중 신경학적 증상이 있는 환자 6명을 대상으로 기존 표준 치료법인 효소 대체 요법과 암브록솔 치료법을 병용한 결과, 최근 신경학적 증상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초기에 치료를 시작한 환자들은 9년 후부터는 발작 증상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등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6명의 환자 중 4명은 신경학적 증상이 상대적으로 약한 증상 초기 환자들이었으며, 2명은 스스로 걷기 힘들 정도로 증상이 진행됐다.
연구 결과, 신경학적 증상 초기 환자의 발작 빈도는 2주에 5번 정도였는데 병용 치료 후 발작 횟수가 조금 증가했다가 5년 후부터 약 2번, 9년 후부터는 발작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신경학적 증상이 진행된 환자들도 2주에 10번 정도 발생하던 발작 증상이 치료 10년 후에는 절반인 5번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
연구팀은 환자들의 고셔병 삶의 질 점수(mSST)도 측정했다. 그 결과 신경학적 증상 발생 초기 환자들은 평균 7.5점에서 병용 치료 10년 후 6점으로 낮아졌고, 신경학적 증상이 진행된 환자들은 평균 17점에서 11점으로 낮아졌다. 고셔병 삶의 질 점수는 낮을수록 삶의 질이 높은 것을 의미한다.
6명 중 5명의 환자에게서 저요산혈증, 기침 및 가래, 단백뇨 등의 부작용이 있었지만 경미한 수준으로 모든 환자가 큰 문제 없이 회복됐다.
이범희 교수는 “고셔병의 신경학적 증상을 치료하기 위한 약이 개발돼 있지 않다보니 하루 수십 알의 감기약을 복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암브록솔 성분 약으로 고셔병의 신경학적 증상을 큰 부작용 없이 호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장기 연구로 밝혀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퇴행성 뇌 질환인 파킨슨병 환자의 5% 정도가 고셔병 발생 유전자 보인자라고 알려진 만큼 고셔병과 파킨슨병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제 개발에 이번 연구 결과가 바탕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유전적 문제로 체내 세포에 특정 당지질이 축적되는 희소 질환인 고셔병은 다행히 치료제가 개발돼 있다. 하지만 고셔병에 의해 일부 환자들에게서 나타날 수 있다고 알려진 발작, 인지기능 장애 등 신경학적 증상까지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미국혈액학회지(American Journal of Hematology, IF=10.1)’에 최근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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