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좌파 노동당, 보수당에 압승, 14년 만
스타머 대표 새 총리에... '참패' 수낵 퇴진
경제난, 공공 의료 악화 집권 여당 심판론
무능한 보수에 분노한 민심은 변화를 택했다. 영국 제1야당이자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인 노동당이 4일(현지시간) 실시된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며 14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당을 한 걸음 중도로 옮기며 압승을 이끈 키어 스타머 대표는 총리에 올랐다. 반면 집권 보수당은 경제난과 의료 혼란 등을 해소하지 못하는 등 잇따른 실정으로 1834년 창당 이후 최악의 참패라는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
노동당 '압승' ... 총리에 스타머
영국 650개 선거구에서 치러진 이날 총선에서 노동당은 5일 오후 2시(한국 시간 5일 오후 10시) 개표 기준 412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다. 5년 전 총선에 비해 211석을 더 얻으며 과반(326석)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로써 영국은 14년 만에 보수당에서 노동당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스타머 신임 총리는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관저 앞에서 한 취임 연설을 통해 "영국을 재건할 것"이라며 "변화의 작업은 즉각 시작된다"고 말했다.
보수당은 121석에 그치며 참패했다. 2019년 총선 때 확보했던 의석(365석) 절반에도 못 미쳤다. 창당 이래 190년 만에 가장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 든 것이다. '최연소·첫 유색인종 총리' 등 화려한 수식어로 1년 8개월 전 관저에 입성했던 인도계 리시 수낵 현 총리는 판세를 뒤집지 못하고 퇴장하게 됐다.
중도 성향 자유민주당은 지난 총선보다 63석을 더 얻은 71석 확보로 3당이 됐다. 극우 성향 영국개혁당도 4석을 확보했다. 최초 자력 등원 기록이다. 특히 득표수 410만 표를 기록, 노동·보수당에 이어 3위를 기록하는 등 유럽 전역에 부는 극우 돌풍이 영국에서도 확인됐다.
보수 거물들 줄줄이 퇴진
민심은 매서웠다. 물가 급등과 경제난, 의료 등 공공 서비스 악화, 이민자 급증 등을 겪으며 사회 저변에서 차곡차곡 누적돼 온 불만이 집권당 심판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14년간 절치부심했던 노동당은 2020년 스타머 대표 취임 후 중도로 외연을 확장하며 민심을 확보했다.
보수당의 실정은 누적돼 왔다.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정권을 잡은 이래 영국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코로나19 대유행' 등 격동기를 거치며 저성장·고물가 늪에 빠졌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어긴 '파티 게이트'로 물러난 보리스 존슨, 대규모 감세안 발표로 '금융 대란'을 초래해 최단명(44일) 퇴진한 리즈 트러스 전 총리 등 집권 여당 내 혼란도 유권자의 환멸을 부채질했다. 영국 가디언은 "유권자들은 노동당을 환영한 것이 아니라, 영국의 재앙적 상황을 초래한 보수당을 용서하지 않고 몰아낸 것"이라고 짚었다.
그 결과 보수당 거물들도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트러스 전 총리를 비롯해 그랜트 섑스(국방), 알렉스 초크(법무) 장관 등 현직 관료들도 줄줄이 의석을 잃었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영국 정치에서 현직 장관이 의석을 잃는 일은 이례적"이라며 "지난 27년 동안 6번의 총선에서 의석을 잃은 장관은 4명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재정 압박 속 정책 수정 불가피
집권당 교체로 영국의 정책 변화도 불가피해졌다. 노동당은 보수당이 불법 이민을 해결하겠다며 추진한 '르완다 정책(망명 신청 난민을 일단 아프리카 르완다로 보내는 것)' 폐기를 예고했다. 또 대규모 공공 주택 건설과 공공 서비스 개선, 소득세 및 국민보험요율 동결 등을 경제 관련 공약으로 내걸었다. EU와의 관계 강화, 국방 예산 증액도 예고되고 있다.
하지만 이민자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경제난과 국민보건서비스(NHS) 등 공공의료 악화 문제 해결을 위한 예산 압박도 만만치 않다. 영국의 정부 부채(지난해 말 기준)는 1년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2조7,000억 파운드(약 4,700조 원)에 달한다. 로이터는 "노동당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정권을 잡은 만큼 엄청난 과제를 물려받게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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