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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선호사상'이라는 어폐

입력
2024.07.0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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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1974년에 나온 산아제한 공익광고에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적혀있다. 그러나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여전히 남아 선호 현상 탓에 '여아 선별 낙태'가 성행, 출생 성비는 113~116명에 달했다. 국가기록원 제공

1974년에 나온 산아제한 공익광고에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적혀있다. 그러나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여전히 남아 선호 현상 탓에 '여아 선별 낙태'가 성행, 출생 성비는 113~116명에 달했다. 국가기록원 제공

'"심각한 수준"…한국 남자들 결혼하기 힘든 이유 있었다.'

'"결혼성비 불균형 심각"…미혼남이 20% 더 많아, 대구는 35%'

위와 유사한 제목과 내용의 보도가 쏟아진 건 지난달 17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한국의 출생성비 불균형과 결혼성비' 보고서를 낸 뒤다. 조성호 보사연 빈곤·불평등연구실 부연구위원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 사이 출생아 성비가 자연성비(여아 100명당 남아의 수로, 자연적으로는 104~107명 범위 안에 존재)를 크게 뛰어넘은 현상이 현재 미혼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기사 제목에서 유추가 가능한 것처럼, 보고서의 결론은 과거 30년 가까이 이어진 출생성비 불균형 탓에 2021년 기준 미혼 남성이 미혼 여성보다 19.6%나 많다는 것이다. 지역 격차도 꽤나 크다. 경북과 경남 지역은 미혼 남성이 미혼 여성보다 30% 이상이나 많으며, 이들 지역은 특히 1980~1990년대 출생성비가 다른 지역 대비 매우 불균등하다고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기사들을 읽고 모골이 송연해진 건 1980년대 후반, 여성으로 태어난 기자의 개인적 배경 때문일 것이다. 이 시절에 출생성비가 유난히 불균등한 이유로는 ①강력한 남아선호사상 ②출산율의 급격한 감소와 정부 주도 산아제한정책으로 인한 자녀 성 선택 욕구 증가 ③초음파를 통한 성 감별 기술 보급 등이 꼽힌다.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는 바람에 남자 아이를 출산하기 위한 여아 낙태가 횡행했다. '백말띠 여자는 팔자가 사납다'는 속설 때문에 1990년생 여아들을 낙태하는 일이 많았다는 건 이미 알려진 이야기다. 1990년 전국의 출생성비는 116.5에 달했고 경북은 130.6, 경남은 124.7을 기록했다. 어쩌면 기자는 위로 두 살 터울에 집안의 장손인 오빠가 있었고, 부모님이 살던 곳이 남아선호사상이 유난히 강한 지역은 아니었기 때문에 '운 좋게' 태어났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과거 행태를 우리는 정말 '선호'라는 단어로 불러도 되는 것일까. 선호는 여러 가지 중 무언가를 특별히 더 좋아한다는 뜻이다. '나는 아무래도 딸보다 아들이 든든하고 좋다' 정도의 개인적인, 가벼운 취향이라면 '남아선호'로 표현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한 선호는 이보다 훨씬 잔혹하다. 특정 성별의 수많은 생명권이 속절없이 박탈됐던 참상이다. 여아를 임신한 여성들의 선택권은 무참히 침해됐으며, 가족계획이나 호주제 같은 정책과 제도가 이를 뒷받침했다. '선호'라는 단어를 무기로 쓰는 사람들은 이를 방관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남아선호사상'이란 말은 '여아차별사상'으로 치환해야 마땅하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당장의 높은 남성 미혼율과 저출생 현상이 문제인데, 왜 과거를 물고 늘어지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남아선호사상은 이미 사라졌으며, 이제는 바야흐로 '여아 선호의 시대'라는 반론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당장 출생성비가 제자리로 돌아갔다고 해서, 30년 전 악습이 말끔히 자취를 감추는 건 아니다. 보사연의 보고서와 이를 받아쓴 언론들이 결국 걱정하는 것은 결혼하기 어려운 남성들의 미래다.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기 위해 남녀가 서로를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여아를 1년 조기 입학시키자는 주장이 놀랍게도 2024년 국책연구기관이라는 곳에서 나온다. 여성을 손쉽게 '수단화'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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