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 때 입국 초·중·고 다닌 한국 '토박이'
출입국 직원 실수로 떠밀리듯 출국 처지
8년 간 '낯선' 모국 파키스탄에 발 묶여
"한국말을 하는 게 한 달 만이라 조금 어색하긴 한데..."
6일 화상으로 한국일보 인터뷰에 응한 파키스탄인 노만 자파르(27)의 말엔 부산 사투리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그는 "기존쎄(기가 정말 세다는 뜻의 은어)" "한 번 갔다 오다(이혼하다)" 등 '네이티브' 한국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만 4세 때 가족을 따라 한국에 온 노만은 10대 시절 대부분을 부산에서 보냈다. 국적은 파키스탄이지만 사실상 '토박이' 한국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16년, 출입국사무소 직원의 행정 실수로 쫓겨나듯 한국을 떠나 8년째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나의 고향은 한국
'인종 차별 때문에 가출한 파키스탄 아이'. 노만은 이미 11세 때 유명해졌다. 한 방송에서 한국인 학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다 시외버스 짐칸에 올라탄 '딱한' 사연을 가진 아이로 그를 소개하면서다. 그러나 노만이 탈출한 진짜 이유는 가정폭력이었다. 부모의 손찌검을 피해 도망 온 노만에게 손길을 내민 건 대안학교들이었다. 방송 보도를 보고 연락을 줬고, 또 다른 학교는 숙소를 제공했다.
한때 방황하던 노만의 마음을 잡아준 사람도 대안학교 교사다. 한 번은 그가 같은 반 친구 지갑에 손을 대다 이철호 온세미 대안학교 교장에게 들킨 적이 있다. "혼날까 봐 눈만 질끈 감고 있는데, 말없이 안아주시더라고요. 처음으로 죄책감이 들었어요." 교장은 노만에게 직접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줬다. 매질만 하던 부모와 달랐다. 한국에서 처음 가족이 생긴 것 같았다.
그러나 부모의 폭행은 계속됐고 견디다 못해 가출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일당 8만 원에 막노동을 하던 중학생 노만을 이 교장이 거둬줬다. 비자가 만료된 부모가 2012년 아들을 두고 파키스탄으로 떠난 뒤 노만은 체류 자격 만료로 쫓겨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 때도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이 힘을 모아 노만의 사정을 각종 행정부처에 설명하고, 청원을 낸 덕에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교육 과정을 마치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 출국 기한을 유예할 수 있었다. 90일에 한 번씩 재학증명서와 여권을 들고 부산 출입국사무소를 찾아 체류기간을 연장하는 조건이었다.
한순간에 미등록 외국인 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노만을 담당하는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바뀌면서 사달이 났다. 그의 상황을 들은 직원은 "전화가 갈 테니 그때 오면 된다"고 했다. 넉 달이 지나도록 전화가 안 와 걱정이 돼 찾아가니 그제야 직원은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고함쳤다. 노만은 당황했지만 "지금 바로 출국하면 불법 체류자(미등록 외국인)는 아니다"는 말을 듣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그러나 출국장에서 붙들리고 말았다.
노만이 다시 만난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에게 거세게 항의하자 "감히 대한민국에 소리를 쳐?"라는 호통이 돌아왔다. 결국 불법 체류 자진 신고 출국으로 처리해줄 테니 나가라는 회유에 응했다. 한국에서 오래 살았고, 체류 기록도 깨끗할 테니 파키스탄에서 다시 초청비자를 받아 적법하게 돌아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2016년 8월 출국 후 8년간 비자 발급은 매번 무산됐다. 바뀐 담당 직원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의 불법 체류 기록이 발목을 잡았다고 한다.
낯선 모국에서 보내는 편지
초중고 시절을 한국에서 보낸 그에게 파키스탄은 낯선 나라였다. "파키스탄의 역사나 유명한 곳도 네이버에 검색해보고 알았다니까요." 언어도 익숙하지 않고 이슬람교도 믿지 않는 노만은 파키스탄에서 '죄인' 취급을 받았다. "종교를 안 믿는다"는 말에 뜨거운 차를 끼얹은 친척 어른도 있었다. 황달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그를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기도를 했다. 상식 자체가 한국과 달랐다.
8년이 흘러 지금은 노만도 파키스탄에 얼추 적응했다. 결혼을 하고, 현지 사업에 뛰어드는 한국 투자자들과 협업도 진행한다. 그러나 검정고시를 봐 한국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계획은 단념했다. 대신 파키스탄에서 성공해 스스로의 힘으로 한국으로 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어떻게든 한국에 가게 될 텐데, 친구들이 반겨줄 만한 사람이 돼야 하잖아요."
그가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통해 떠올리고 싶지 않은 한국 출국 당시 얘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노만이 떠밀리듯 출국한 지 8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주민에게 냉담하다. 난민 신청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관련 기관을 찾아 문의하는 이들에게 함부로 대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머문 시간은 축복이었어요. 따뜻한 식구들을 만나고, 좋은 교육도 받고요. 그런데 저처럼 한국이 '고향'과도 다름없는 사람들에게 한국 정부가 선택권을 줄 수는 없는 걸까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