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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아닌 국민에게 ‘죄송’해야

입력
2024.07.10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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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 문자 ‘사과’ 10회 ‘죄송’ 5회
명품백 수수 정작 사과받을 이는 국민
잘못 뉘우치면 진정성 보여야 국정동력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김건희 여사(왼쪽 사진)와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뉴스1

김건희 여사(왼쪽 사진)와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뉴스1

간절했던 모양이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 1월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보낸 문자 전문엔 ‘사과’라는 단어가 10차례나 나온다. 김 여사는 1월 15일 ‘대통령과 제 특검 문제로 불편하셨던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라고 쓴 뒤 다시 ‘제가 백배 사과드리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다 제가 부족하고 끝없이 모자라 그런 것이니 한 번만 양해해 주세요’라고도 덧붙였다. 1월 19일 ‘사과를 해서 해결이 된다면’, ‘천 번 만 번 사과’, ‘사과를 하는 것이 맞(는)다고 결정 내려주시면’ 등의 문자를 보냈고, 1월 23일 ‘다시 한번 여러 가지로 사과드립니다’라고 강조했다. 마치 큰 죄를 지은 이가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용서를 구하는 듯한 느낌이다.

김 여사는 ‘죄송’이라는 단어도 5차례나 사용했다. ‘제가 죄송합니다’(1월 15일) ‘제 불찰로 자꾸만 일이 커져 진심으로 죄송합니다’(1월 19일)에 이어 1월 25일 마지막 문자 역시 ‘정말 죄송합니다’로 끝맺었다.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도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라 사달이 나는 것 같습니다’란 대목에선 스스로에 대한 원망도 읽힌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게 ‘역정‘을 낸 것을 언급하며 ‘다 저의 잘못으로 기인한 것이라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고 한 부분에선 두 사람이 돌아서게 된 데 대한 자책도 보인다.

김 여사가 이러한 문자를 보낸 건 총선을 앞두고 자신의 명품백(파우치) 수수 의혹이 여당의 최대 리스크로 부상하며 윤·한 갈등도 증폭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당을 대표하던 한 위원장에게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전할 순 있다.

그러나 당시 김 여사가 정작 죄송해하면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대상은 한 위원장이 아니라 5,200만 명의 국민이었다. 대가성이 없었다고 해도 현직 대통령 부인이 고가 명품 가방을 받은 건 명백한 잘못이고 부적절한 처신이다. 몰래카메라 함정과 정치공작의 덫에 걸린 것이라고 해도 영상이 공개된 이상 대국민 사과부터 하는 게 마땅했다. 대통령 부인이 만났다는 사람도, 만남이 성사된 경로도, 만나서 한 행동도 국민에겐 모두 실망이고 충격이었다. 국격에도 퍼스트레이디의 품위에도 어긋났다.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는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가 김 여사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기대했다. 국민들 마음을 다독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김 여사는 국민 앞에 나와 직접 고개를 숙이는 대신 한 위원장에게만 미안하다는 문자를 연거푸 보냈다. 국민에게 가져야 할 죄송한 마음이 먼저이고 훨씬 큰데 우선순위와 번지 수를 잘못 찾아간 셈이다.

김 여사는 문자에서 ‘이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이 저에게 있다고 충분히 죄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제가 너무도 잘못을 한 사건’이라며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습니다’라고도 했다. 모두 사실이라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대국민 사과부터 하는 게 순리다. 고작 한 위원장에게도 그토록 낮은 자세로 사과 문자를 보낸 김 여사가 그보다 더 높고 중요한 국민에게 사과하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김 여사의 문자를 한 위원장이 읽고도 무시(읽씹)한 뒤 당시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한 사실과 서천 화재 현장에서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에게 90도 폴더 인사를 한 후에도 갈등이 계속된 정황을 맞춰보면 두 사람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하다. 대통령 임기가 3년이나 남았는데 정권 내부 권력 암투와 레임덕이 시작된 꼴이다. 이제 김 여사가 믿고 매달려야 할 건 한동훈이나 당이 아니라 국민들의 마음이란 사실은 더 분명해졌다. 김 여사의 진정성 담긴 대국민 사과는 꺼져가는 국정동력을 그나마 되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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