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의대 학사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
학기제→학년제 전환·1학기 등록금도 대체
총장들 "학년제도 9월 초엔 복귀해야 소용"
미복귀 시 휴학 승인·집단 유급 현실화 우려
정부가 의과대학 증원에 반발해 수업을 거부 중인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을 막기 위해 학사 운영을 학년제로 전환하고 성적 평가도 유예한다. 정부는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인력 수급 차질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했지만 학칙을 개정해 의대생 편의를 봐준다는 특혜 논란도 불가피하게 됐다. 사실상 의대 학사의 규제를 전부 푼 셈이라, 의대생들이 끝내 복귀하지 않을 경우 휴학 승인이나 집단 유급 등 원칙적 대응 외에 마땅한 추가 대응책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대생 돌아오면 유급 없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의과대학 학사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동맹휴학과 수업 거부 등 의대생 집단행동이 5개월째 지속되면서 발생한 학사 운영 차질과 그로 인한 집단 유급을 막기 위한 조치다.
가이드라인에 따라 각 대학은 현재 운영 중인 교육과정과 성적 평가를 학기가 아닌 학년 단위로 전환할 수 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매 학년도 30주 이상 수업시간을 확보하도록 규정해 대학들은 대부분 1년을 2학기로 나눠 학기당 15주씩 수업을 진행했다. 이를 학년제로 전환하면 1학기 수업을 듣지 않은 의대생들이 학년 말까지 수업을 마칠 수 있다.
교육부는 구체적으로 학칙을 개정해 △1·2학기 병행 △1학기 10월까지 연장 △하반기를 2개 학기로 나눠 총 3학기로 운영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필수 전공이 포함된 계절학기를 운영하거나 학점당 수업시간은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수업 기간을 한 학기(15주)보다 짧게 운영하는 집중이수제도 도입할 수 있다. 일부 수업을 내년 상위 학년으로 진급한 후 들을 수 있는 방안도 가능하다.
1학기 수업을 듣지 않은 의대생 유급도 유예됐다. 1학기에 듣지 않은 과목은 F학점 대신 ‘I(Incomplete)학점’을 부여한다. I학점을 받은 과목은 학년이 끝나기 전까지 보충수업을 들으면 성적 평가를 미뤄준다. 교육부는 올해 F학점을 받더라도 유급되지 않는 특례도 마련한다. 특히 올해 예과 1학년은 내년도 신입생 증원을 고려해 유급 없이 진급할 수 있도록 조치할 계획이다.
학습량을 고려해 야간·원격수업이나 주말 강의를 허용한다. 1학기 수업 결손으로 인한 추가 학기 등록금도 면제한다. 다학기제를 운영하는 대학은 수업연한 총액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등록금을 징수해야 한다. 올해 본과 4학년생을 대상으로 의사 국가시험(국시)을 추가로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하지만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이달 1~7일 각 의대 학생회에서 본과 4학년(총 3,015명)에게 설문한 결과, 응답자 2,903명 중 95.5%(2,773명)가 국시원에 국시 응시원서 접수의 절차 중 하나인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 제출을 거부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이날 밝혔다.
의대 총장들 “의대생 복귀 안 하면 원칙 대응”
정부의 전례 없는 조치는 의대생 집단 유급을 막을 마지막 카드다. 1학기 수업 출석일수를 채우지 않은 대다수 의대생들이 원칙대로 F학점을 받으면 유급 처리된다. 유급 횟수가 3회일 경우 제적된다. 정부는 수업 복귀를 원해도 유급을 우려해 복귀를 꺼리는 의대생도 적지 않다고 파악하고 있다.
의대생들이 학년이 끝나는 내년 2월까지 30주 수업시간을 채우려면 다음 달 5일부터는 복귀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교육부는 고등교육법 시행령상 수업일수 규정을 매 학년 2주 이내 범위에서 감축해 운영할 수 있게 허용할 방침이다. 28주만 수업해도 된다는 의미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각 대학들은 학칙 개정 등 학사 일정 조정에 착수했다. 경북대 의대는 이달부터 계절학기를 운영해 필수 이수 과목 등을 집중 배치했다. 1학기를 10월까지 연장하고 1·2학기를 병행할 방침이다. 울산대 의대도 학년제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학칙 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의대생들이 수업 불참으로 F학점을 받을 경우 재수강 시 불이익이 없도록 하는 방안도 마련한다. 전북대 의대도 이달 말까지 학칙 개정 절차를 완료해 학년제를 적용한다.
공은 의대생에게 넘어간 셈이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대다수의 의대생들이 휴학 승인을 요구하고 있는데다 집단행동 와중에 개별 복귀할 경우 자칫 배신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하고 있다.
하반기에도 의대생이 돌아오지 않으면 정부와 대학이 강경 대응에 나설 공산이 크다. 올해보다 1,500명 늘어난 내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이 이달부터 시작되는 터라, 미복귀 재학생 문제를 정리하지 않으면 내년 학사 일정에 차질이 크기 때문이다. 의대가 있는 지방국립대 A총장은 “늦어도 9월 초에는 복귀해야 학년제 수업도 가능하다”며 “무한정 기다릴 물리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못 박았다.
의대생 특혜 논란도 있다. 이 부총리는 이날 "의대생 개인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고자 추진하는 조치가 아니다"며 "의료인력 수급 차질로 인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방국립대 B총장은 “정부와 대학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했는데도 수업을 안 듣겠다고 하면 원칙대로 할 수밖에 없다”며 “수의대나 한의대, 약대 등 다른 전공과의 형평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의대를 운영하는 사립대 C부총장은 “대학 전체 인원 수 중 의대생은 1% 수준에 불과하다”며 “국민 생명과 직결돼 있긴 하나 학생들의 집단행동에 학칙까지 바꿔가며 사정을 봐주는 것은 향후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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