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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적 위인은 왜 한국보다 진취적이고 다양할까?

입력
2024.07.13 04: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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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한국 존경받는 인물은 이순신, 세종대왕, 신사임당
엔화 새 지폐 인물 日가치관 반영, 유교 중심의 한국과 대조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역사적 위인들은 현대인의 삶의 좌표를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인이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은 한국보다 훨씬 다양하고 각각 존중받는 이유도 다르다. 일러스트 김일영

역사적 위인들은 현대인의 삶의 좌표를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인이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은 한국보다 훨씬 다양하고 각각 존중받는 이유도 다르다. 일러스트 김일영

◇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 속 위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일본 센고쿠시대(戦国時代, 15~16세기 일본 열도가 수많은 지방 세력으로 분열되어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혼란의 시기)를 대표하는 무장으로,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적인 위인 중 한 명이다. 서양의 문물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혁신적인 군사 기술을 뽐내며 세력을 넓혔으나, 일본 통일을 눈앞에 두었을 때에 아끼던 부하의 반란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인물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오다와 함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센고쿠시대를 종식시킨 세 명의 위인으로 함께 언급된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악명이 높은 도요토미는 오다가 마련한 기반 위에서 실제로 일본 열도를 무력 통일한 인물이다. 하지만 조선 침략(임진왜란)에 실패하면서 그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도쿠가와가 도요토미의 후손들을 물리치고 안정된 세습 권력을 구축했고, 도쿄 주변 지역을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으로 삼아 에도시대(江戸時代)를 열었다. 세 인물은 성격과 스타일이 판이하게 다른 것으로도 자주 회자된다. 세 인물의 대조적인 성격을 잘 묘사한, 울지 않는 두견새를 울게 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오다는 울지 않는 새를 그 자리에서 죽여버리고, 도요토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기어이 새가 울도록 만들고, 도쿠가와는 새가 스스로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와 사카모토 료마가 사랑받는 이유

개인적으로는 도요토미나 도쿠가와에 비해 오다에 대한 일본인의 호감이 독보적으로 높다는 점이 꽤 인상적이다. 오다가 센고쿠시대의 종식에 기여한 사실은 있으나, 실제로 통일의 과업을 완수한 자는 도요토미였고, 이후의 권력을 성공적으로 구축한 자는 도쿠가와였다. 어떻게 보자면 오다는 실패자다. 천하 통일의 뜻을 세우고도 그 꿈을 실현하지 못했으니 장수로서도 실격이요, 굳게 믿었던 부하 장군의 배신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으니 한 명의 인간으로서도 실망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일본인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도요토미나 도쿠가와는 일본인이 좋아하는 역사 속 위인 순위에서는 비교적 하위에 랭크되는 경향이 있다. 위업을 달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적인 매력은 부족하다. 그 둘과 비교하자면 비상한 두뇌, 불같은 성격, 드라마틱한 생애, 전략가로서 천재적인 면모 등을 지닌 오다의 캐릭터가 훨씬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는 서양에서 전해진 ‘조총’을 대뜸 받아들여 신병기로 활용하거나, 서양식 망토를 스스럼없이 걸치고 돌아다니는 등 거침없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지금 일본 사회에서는 이런 진취적인 인물을 좀처럼 보지 못했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역사적인 위인으로 오다와 1, 2위를 다투는 인물이, 일본 근대사를 상징하는 풍운아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다. 19세기 중반, 시골의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난 사카모토는 일찍부터 에도시대 지배 계급의 부패와 비효율성에 대한 반감을 품고 일본의 근대화, 국제화에 대한 큰 뜻을 세웠다. 그는 막부(에도시대 일본의 군부 정권) 타파를 부르짖고 서양의 과학 기술과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며, 개혁가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일본 최초의 주식회사를 세우고 근대 해군 학교 설립에 기여하는 등 실제로 근대화 과정에 여러 공적을 남겼지만, 암살로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했다. 한국에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그의 삶도 대담하고 전략적인 개혁가라는 점에서 오다와 닮았다.

오다와 사카모토가 일본인에게 사랑받는 데에는 대중문화의 영향도 크다. 격동의 시대를 상징하는 두 인물은 역사 소설, TV드라마, 영화, 만화 등 다양한 매체에서 자주 다뤄졌고, 이를 통해 그들의 인상적인 삶이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거꾸로 그들의 삶과 주장 속에 현대 일본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만한 특징이 충분했기 때문에 대중문화로부터 주목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오다와 사카모토는 둘 다 ‘개혁가 정신이 넘치는 풍운아’라는 공통점이 있다. 현대 일본 사회에서는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경향이 점점 더 두드러진다. 오다와 사카모토의 개혁 정신과 진취적인 삶을 동경하는 일본인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 일본의 새 지폐의 얼굴은 ‘자본주의’, ‘여성 교육’, ‘의학’

사람들이 특정 시대나 인물에 호감을 느끼는 것은 결국 그 시대와 인물이 지닌 가치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대와 인물을 통해,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미덕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일본에서 새 지폐가 유통되기 시작했는데, 이 지폐에 담긴 인물들 역시 시사적이다. 보통 일본 사람들의 호감도를 반영한 것 같지는 않지만—만약 그랬다면 높은 확률로 오다나 사카모토가 선정되지 않았을까?— 적어도 지금 일본 사회의 지도층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을 골랐다는 점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새 지폐의 1만 엔 권에는 일본의 근대 자본주의 경제의 기틀을 다진 실업가 시부사와 에이이치(渋沢栄一), 5,000엔 권에는 일본 최초의 여성 유학생이자 근대 여성 교육의 개척자인 쓰다 우메코(津田梅子), 1,000엔 권에는 전염병 연구의 선구자인 기타자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郎)가 각각 선정되었다. 모두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활약한 인물들이다. 이전의 지폐에는 고대 신화나 중세 이전의 인물들이 자주 등장했지만, 21세기 이후에 발행하는 지폐는 주로 근대화 시기의 인물들을 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근대화와 함께 식민주의와 한반도 강점의 역사를 긍정했던 인물이 지폐의 얼굴이 되어 논란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이전 1만 엔 권의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나, 이번 1만 엔 권에 새로운 얼굴이 된 시부사와도 그런 경우여서, 굳이 그런 인물을 화폐에 담는 것이 퍽 불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새 지폐에 인쇄된 인물들을 통해 현대 일본 사회가 중점을 두고 싶어 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점에만 주목하겠다. 시부사와는 일본의 경제 발전을 이끌었고, 쓰다는 여성의 교육과 권리를 향상시켰으며, 기타자토는 공중 보건을 발전시켰다. 즉, 이런 인물들을 통해 현대 일본 사회가 자본주의 경제, 성평등, 의학 발전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역사 속의 위인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는 오다와 사카모토 외에도 사랑받는 역사 속 인물이 매우 많다. 웬만한 랭킹이 수십 명은 훌쩍 넘을 정도다. 실제로 주변에 물어보면 실로 다양한 이름이 튀어나오고, 좋아하는 이유도 다양하고 기발하다. 오다와 사카모토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위인의 업적보다 인간적인 면모에 주목하는 경향도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역사 속의 존경받는 인물로 거론되는 이름이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신사임당 정도다. 다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유교적 가치와 업적을 상징하는 인물에 한정되는 경향도 있다. 이들이 훌륭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더 다양한 분야에서 도전과 성취를 이룬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도 조명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위인의 존재는 단순히 역사적인 인물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위인의 이야기를 통해 앞서 살아간 사람들이 어떻게 도전과 역경을 극복했는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영감도 얻는다. 위인의 삶은 현재와 미래까지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는 어떤 위인이 있으며 그들의 삶이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는가?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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