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장마가 먹구름 폭우를 몰고 와 공기가 눅눅해졌다. 그래서인지 가끔 나타나는 햇볕이 뜨겁기는 하지만 반갑기까지 하다. 한밤중 빗소리에 잠을 설쳐 창문을 열어보니, 훅하고 들어오는 습기가 새벽잠을 깨운다. 다시 잠을 청할 수 없어 그길로 경남 밀양시의 식수원인 밀양댐 전망대를 찾았다. 탁 트인 수변과 주변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상쾌한 나무 향기가 그간 막혀 있던 가슴을 뻥 뚫어준다. 습기에 불쾌했던 밤의 기억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청량한 새벽 공기가 온몸을 휘감는 순간, 어둠 속에서 점점 밝아오는 동쪽 하늘에 은은한 빛이 감돈다. 한순간 하늘에 떠 있던 희미한 구름이 붉게 물들면서 붉은 비단을 펼쳐놓은 듯 황홀한 장관을 이뤘다. 붉은빛을 머금은 구름이 어둑어둑한 산을 포근히 감싸안자, 이계(異界)에 온 듯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도 잠시, 산 너머 구름 사이로 해가 떠오르자 붉은 비단은 꿈처럼 사라졌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햇빛에 눈이 시렸다.
지난주 내내 전국에서 장맛비가 물 폭탄으로 변하면서 피해가 속출했다. 출하를 앞둔 수박과 참외는 비닐하우스에서 둥둥 떠다니고, 안 그래도 힘든 전통시장 상인들은 침수 피해를 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마철이라고 넘어가기에는 예상치 못한 재난에 가슴이 아팠다. 어서 빨리 비가 그치고 해가 떠올라 비가 할퀴고 간 상처를 ‘붉은 비단’처럼 포근히 보듬어 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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