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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수 대응’ 전략의 파산

입력
2024.07.17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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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3월 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3월 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현 정부 국방 전략을 요약하면 ‘즉강끝’이다. 건배사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이 표현은, 북의 도발을 ‘즉시 강력하게 끝까지’ 응징한다는 뜻이다. 적대적 핵보유국을 머리에 이고 있는 안보환경에서 대응 의지를 평소 세 음절로 정리해 두는 것은 군의 즉응태세 마련을 위해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주적이나 흉악범에게만 써먹어야 할 즉강끝을 내치에서 아무 변주 없이 활용한다는 점이 이 정부의 문제다. 전쟁과 달리 보건·복지·교육·노동에선 상황에 따라 목적과 수단이 달라지는 싸움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상대는 죽여야 할 적이 아니라, 살려야 할 국민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상대의 특성과 능력 △정부의 의지·자원 현황 △갈등이 국민 생활에 미칠 영향 등 여러 변수에 따라 전술은 달라진다. 때론 적도 포섭해야 한다. 목표의 반까지만 가는 타협도, 나라를 위해 정권의 패배를 감수할 용기도 필요하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사회 정책에선 엄정대응 이외의 수단을 찾기 어렵다. 거슬러 올라가면 2022년 화물연대 파업에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며 승리를 거둔 게 계기였다. 그때 자신감과 지지율을 얻자 강대강은 필승책이 됐다. 신속한 압수수색, 발 빠른 영장 청구로 검찰이 피의자의 혼을 쏙 빼놓는 것처럼, 정책에서도 전격전이 위력을 발휘할 거라 본 것 같다.

이 접근법이 드러난 때가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이다. 교사들이 동료의 죽음을 추모하려고 휴가를 쓴다 하니, 당국은 대뜸 파면·해임을 언급했다. 연가 쓰면 징계한다는 말에 열받아 거리로 나선 선생님도 있었다. 점잖은 교사들이 그렇게까지 화난 이유를 살피려는 공감능력이 필요했던 지점에서, 강경대응을 하며 불을 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한 의사 파업. 또 즉강끝을 내세웠다. 전공의에겐 화물연대 파업에서 재미 본 업무개시명령이, 의대 교수에겐 파면, 개업의에겐 공정위 조사가 언급됐다. 그러나 ‘진짜 범죄’인 리베이트 수사를 빼면 정부의 큰소리 중에 제대로 이뤄진 건 하나도 없다.

처음부터 강경론만 득세했다. 진정 이길 수 있는 싸움인지 분석이 없었고, 과연 이겨야 하는 싸움인지 성찰이 없었다. ‘즉’과 ‘강’까지는 했는데, 정부의 밑천이 드러나니 ‘끝’까지 갈 수가 없다. 정부는 이제 의사들에게 호소 말곤 할 게 없다. 지금 지지율은 실망한 국민이 내린 판결이다.

대통령은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리더의 지지율은 포퓰리즘의 산물이 아니라 국민에게 ‘쓴 약 한 숟갈’을 과감하게 권할 수 있는 용기의 원천이다. 25% 얄팍한 지지 위에서 강경대응만 하니, 리더가 옳은 일을 한다고 해봤자 악순환만 계속될 뿐이다.

즉강끝은 적어도 내치에선 파산했다. 정부가 의사 앞에서 결정적 순간마다 말 바꾸는 모습을 온 국민이 봤는데, 이제 어떤 집단이 순순히 개혁 대상이 될까. 감히 덤비지 못하는 약자들, 의사처럼 독점이 허용되지 않는 시장 종사자들만 개혁의 먹잇감이 될 뿐이다.

정부가 어떤 개혁을 또 들이밀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뭐든 지금보다 훨씬 유연하고 사려 깊으며 영리한 모습으로 시작해야 한다. 엄포는 사절이다. 국민은 강인한 지도자는 좋아할지언정, 매사 격노하는 지도자는 질색이다. 밖(외교)에선 호인 노릇을 하고, 안(내치)에서만 엄격한 전근대 가부장의 모습을 그만 보고 싶은 것이다.

이영창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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