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RE100 달성 가능한가]
<1> 재생에너지 충분히 쓸 수 있을까
지리 여건 고려한 재생에너지 잠재량 '666TWh'
국내 RE100 기업들 1년 전력 사용량 '56TWh'
지리 여건에 '규제' 반영하면 잠재량 확 줄어
태양광은 1/8, 해상풍력은 1/10 수준으로 축소
"잠재량 현실화할 규제 완화 노력 필요하다:
2021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대·중국 칭화대 소속 공동 연구진은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세계 태양광과 풍력 안정성의 지리적 제약'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일사량, 풍속, 국토 면적 등 태양광과 풍력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입지 조건이 좋지 않아 재생에너지 전력 공급 안정성이 세계 42개 나라 가운데 꼴찌였다. 해가 떠 있거나 바람이 일정 속도 이상 불 때만 발전할 수 있는 태양광·풍력의 특성상 한국은 재생에너지를 만들기에 불리한 지리적 여건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 것이다.
한국은 정말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 어려운 곳일까. 날씨 등 주변 환경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intermittency)은 세계 어느 나라든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지만 유독 한국이 불리한 이유가 무엇일까. 지정학적 여건을 감안하면 어찌할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인지 제도나 규제가 가로막고 있어 풀지 못하는 의지의 문제인지 따져봤다.
한국일보는 에너지원별 발전 비용만 10년 동안 연구한 이근대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게 의뢰해 에너지경제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사단법인 넥스트 등 국내 기관들이 내놓은 재생에너지원 잠재량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태양광과 풍력에너지를 모두 포함한 국내 재생에너지 잠재량은 연간 최소 666테라와트시(TWh)로 산출됐다. 강이나 폭포수의 낙차를 활용해 전기를 만드는 소수력 에너지까지 포함하면 최소 잠재량은 연간 674.7TWh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RE100 가입 기업 32개사의 연간 전력 사용량은 56.338TWh로 신재생에너지 잠재량의 8.5% 수준이다. 올해까지 RE100에 가입한 기업이 4개 더 늘어난 36개사임을 감안해도 RE100을 달성하는 데 충분한 재생에너지 잠재량을 갖고 있었다. 앞으로 국내에 RE100에 함께할 기업의 사업장이 확대되거나 RE100 가입 기업 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지만 적어도 지리적 여건상 RE100 이행은 달성 가능하다.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lectricity) 100%'의 약자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2050년까지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채우겠다는 목표의 글로벌 캠페인이다. 2014년 영국 런던의 다국적 비영리기구인 '더 클라이밋 그룹'에서 발족했으며 정부가 강제한 것이 아닌 글로벌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로 진행된다.
"한국은 일사량과 바람이 부족하다?"
신재생에너지 잠재량은 일반적으로 ①현재 기술력을 기준으로 어떤 제약도 없는 경우를 산정한 '이론적 잠재량', ②기술적·지리적 영향을 반영한 '기술적 잠재량', ③경제성과 정책적 요인까지 반영해 실질적으로 활용 가능한 '시장 잠재량'으로 나눠진다. 이처럼 세 가지 기준으로 구별하는 이유는 연도별 변화는 물론 지리적 여건이나 기술 요소, 사회적 인식과 경제성 등에 있어 잠재량을 계산한 결괏값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장 폭넓은 기준을 갖고 잠재량을 따지는 이론적 잠재량은 현재 조건에서 어떤 제약도 없을 때 이론적으로 활용 가능한 에너지의 양을 의미한다. 기술적 잠재량은 설비가 들어설 수 없는 지역이나 기술적으로 제약이 있는 지역은 제외한 뒤 활용 가능한 에너지의 양을 뽑아낸다. 시장 잠재량은 이에 더해 기술적 잠재량 중 바람이 약하거나 일사량이 적어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는 지역과 정부가 지원하는 보조금 등 정책 규제로 인해 사실상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모든 입지를 뺀 '가장 현실적인 잠재량'을 추정한다.
한국에너지공단이 발표한 신재생에너지 백서(2020)에 따르면, 국내 태양에너지의 기술적 잠재량은 연간 3,117TWh, 설비 용량은 2,409기가와트(GW)로 2023년 우리나라 전체 전력 소비량(588TWh)의 5, 6배 수준이었다. 신재생에너지 백서는 전체 국토를 1㎢ 크기의 네모 격자로 나누고 각 격자에 일사량과 영향 요인에 관한 정보를 입력한 뒤 그 정보를 이용해 격자별로 잠재량을 뽑았다. 일반 부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육상 태양광', 건물 지붕에 설치하는 '옥상 태양광'을 기준으로 했으며, 옆 건물 그림자에 가려 실질적으로 태양광 발전 효율이 떨어지는 경우 등은 모두 빼서 잠재량 연구 결과 중 '가장 보수적' 기준으로 잠재량을 추산했다.
우리나라가 지리적 여건만 따졌을 때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은 다른 기관의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단법인 넥스트의 2020년 분석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 기술적 잠재량은 연간 발전량 1,632TWh, 설비 용량 1,117GW다. 넥스트는 신재생에너지 백서에서 기초로 한 국내 국토 정보를 격자의 지리 정보 형태로 재구성하고 각 격자의 면적(1㎢)에서 지리적 혹은 기술적으로 설치가 불가능한 면적을 제외한 후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한다고 가정했다. 태양광 패널의 경우 육상 태양광, 옥상형 태양광 패널뿐 아니라 신재생에너지 백서에 담기지 않은 수상 태양광 잠재량도 분석 범위 안에 넣었다. 올해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의 연구에선 잠재량이 더 늘어나 태양광 발전 기술적 잠재량이 연간 2,338TWh, 설비 용량은 1,807GW로 추산됐다.
태양광 이격거리·풍력발전 인허가 규제…재생에너지 가로막은 복병
지리적 여건만 봤을 때는 잠재량이 충분한데도 규제 요인을 반영하자 잠재량은 눈에 띄게 줄었다. 신재생에너지 백서(2020)는 태양광 발전 시장 잠재량을 연간 발전량은 495TWh, 설비 용량 369GW로 내다봤는데, 기술적 잠재량의 8분의 1 수준으로 대폭 깎였다. 다만 현재 시점의 규제를 반영해도 우리나라 전체에서 쓰는 전력 소비량의 80%가량은 태양광 발전으로 마련할 수 있는 규모였다. 전력 계통의 안정성과 유연성이 확보된 상황이라고 전제한다면 실제 우리나라 전체 전력 소비량의 80%를 태양광 발전으로만 공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래 재생에너지 확대의 관건인 풍력에너지 잠재량 또한 적지 않았다. 신재생에너지 백서(2020)에서 추산한 풍력발전 기술적 잠재량은 육상과 해상이 각각 연간 781TWh, 1,176TWh로 총 1,957TWh에 달했다. 사단법인 넥스트의 경우 우리나라 해상풍력 발전의 기술적 잠재량은 1,166TWh(고정식 275TWh·부유식 891TWh)로 이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필요한 전체 전력 생산량(1,296TWh) 중 재생에너지가 차지해야 하는 발전량(84%·1,093TWh)을 뛰어넘는 수치라고 추산했다.
그러나 각종 인허가 규제 및 용도 지역·문화재 지역 등 입지 제한 여건을 반영하면 풍력에너지의 시장 잠재량은 연간 육상 52TWh, 해상 119TWh 등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전체 풍력발전의 시장 잠재량은 연간 발전량 171TWh로 국내 총발전량의 29%에 해당하지만 규제 장벽이 높게 작용하고 있는 에너지원인 셈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풍력발전의 기술적 잠재량은 현재 국내 전력 소비량의 세 배 이상에 가까울 정도로 적지 않은 수준"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력발전의 시장 잠재량은 크게 감소했다는 점이 확실한 만큼 잠재량을 현실화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및 비용 절감 등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50년 RE100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인터랙티브에서는 지역별 전력수급상황과 앞으로의 송전선로 설비계획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인터랙티브 바로가기 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electric-path/ (클릭이 안 되면 링크주소를 복사+붙여넣기 하세요)
※본 기획물은 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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