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로비스트 활동 혐의로 미국 연방검찰이 기소한 한국계 북한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 파장이 커지고 있다. 31쪽의 공소장은 테리 연구원이 10여 년에 걸쳐 미 국무부 비공개 정보 등을 제공하고, 국정원 등으로부터 고급 식사와 명품 의류, 핸드백, 고액 연구비를 받았다고 적시했다. 테리 측은 혐의를 부인하는 입장이다. 외국정부 이익을 위해 활동할 경우 법무부 등록을 요하는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 혐의를 적용했지만, 우리 측의 정보활동에 대한 경고 의미도 적지 않아 보인다.
공소장 내용을 보면 국익을 지키기 위한 미 수사당국의 집요함과 맞물려 우리 정보요원 활동이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정보활동엔 은밀성을 생명으로 하지만 정보요원이 맞나 싶을 정도다. 미 국무부 비공개회의에 테리 연구원이 참석한 뒤 나오자 우리 외교관 차량에 그를 태웠고, 그를 위한 명품 쇼핑에도 외교관 차량을 동원한 사실이 미 당국에 포착됐다. 명품 쇼핑과 저녁식사 대접 자리에 동석한 우리 요원 사진까지 증거로 제시됐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10여 년간 테리 연구원을 추적하는 동안 우리 요원은 낌새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국정원의 어설픈 활동이 도마에 오른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방한한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의 숙소 침입이 발각돼 외교 망신을 샀다. 김대중 정부 시절엔 주러시아 한국대사관의 국정원 직원이 무리한 정보수집을 하다 러시아 보안당국에 포착된 뒤 추방과 맞추방의 외교전쟁이 빚어졌다.
대통령실은 문제가 된 정보요원 활동을 두고 “문재인 정권 때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전문 활동을 할 수 있는 요원을 다 쳐내고 아마추어로 채운 결과라는 것이다. 일만 터지면 내세우는 전 정권 탓은 무책임하지만 수십 년간 이어진 정보기관의 정치화와 정파적 물갈이 폐단이 드러난 바가 아닐 수 없다. 이 정부 들어 국정원장까지 경질된 유례없는 국정원 인사파동도 언제 부작용이 터질지 시간문제다. 더 이상 제 살을 깎아 먹는 정보역량 훼손이 빚어지지 않도록 총체적 점검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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