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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살률 폭발 기점 2002년, 그해 사채시장 제도화가 있었다

입력
2024.07.24 16: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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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의 동행]
사채 피해 상담·지원 민생연대 송태경 사무처장
“사람들이 죽어가는 영역, 사회 너무 무관심해”
문닫을 뻔한 민생연대, 후원금 몰려 다시 운영
대부업법 제도개선 위해 야당과 법안 발의 협력
제주 4·3 비극 겪은 외할머니 당부 가슴에 새기고
민노당 정책실장 등으로 수많은 민생개선 이끌어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이 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사채시장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정책실장으로 각종 서민 구제 제도 제정에 기여해온 그는 2008년 민노당 분당 사태 후 당을 떠나 민생연대를 만들고 16년간 사채 피해 상담·지원을 해왔다. 신용주 인턴기자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이 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사채시장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정책실장으로 각종 서민 구제 제도 제정에 기여해온 그는 2008년 민노당 분당 사태 후 당을 떠나 민생연대를 만들고 16년간 사채 피해 상담·지원을 해왔다. 신용주 인턴기자

한국의 자살률 흐름엔 큰 매듭이 있다. 2002년이다. 전 해 14.6명(10만 명당)이던 자살률이 그해 18.0명으로 늘더니 2003년엔 22.7명으로 폭발했다. 이후 한국은 줄곧 자살공화국이다. 한일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2002년, 한국 사회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카드대란 사건)으로 빚을 권하고, 대부업법이 제정(7월)·시행(10월) 사채시장이 크게 확장된 시점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16년간 사채 피해자 무료 상담·지원에 천착해온 송태경(58) 민생연대 사무처장을 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민생연대 사무실에서 만나, 끊이지 않는 사채 피해 문제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법적으로 대부업 시장을 허용한 나라는 일본하고 한국밖에 없다”며 한탄했다. 그나마 엄격히 규제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대부업체의 난립을 방관하고 관리·감독도 거의 없다.

50만 원 빌렸는데 1억이 됐다?

그는 인터뷰 당일도 바빴다. “큰일 났어요. 고소장을 107개 작성해야 돼요. 내일까지.” 피해자 한 명이 처음 50만 원을 빌렸는데, 107개 업체에 돌려 막기를 하면서 갚아야 할 돈이 사채업자들 계산으로 1억 원이 넘었다. 카드값 연체비를 메우려다 이렇게 됐다.

“불법 사채 시장에서 소액급전 영역은 1,000%(연 이자)는 낮은 편이고, 1만%가 넘는 경우도 있다”는 게 송 처장의 설명이다. 대부업체들의 불법 영업행태는 법이 정한 이자한도(연 20%)를 비웃는다.

형사 절차를 밟으려면 돈을 누구(대부업자)에게 언제 얼마를 갚았는지 특정하고 이자율을 계산해야 해서 작업이 만만치 않다. 사채업자 이름과 계좌명이 다를 때도 많고, 피해 당사자조차 누구에게 얼마를 갚았는지 헷갈릴 정도다.

송 처장은 사건별 피해사실과 증거들을 파일로 빼곡히 정리한다. “소액 급전뿐 아니라, 일수 영역도 있고, 고액 대출 영역도 있고 담보 대출 영역도 있고요. 차량 담보 대출도 있어서 차를 가져가 버려요. 그 차를 대포차로 쓰는 거죠.” 돈을 갚으라며 피해자 사적 정보를 인터넷에 올리는 등 정신이 피폐해질 정도로 압박한다.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의 사무실 컴퓨터에 사채 피해 자료가 가득하다. 사채업자가 피해자의 여자친구 사진과 함께 ‘주변에 꼭 쓰레기로 남게 해줄게’라는 협박 메시지를 보낸 내용도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의 사무실 컴퓨터에 사채 피해 자료가 가득하다. 사채업자가 피해자의 여자친구 사진과 함께 ‘주변에 꼭 쓰레기로 남게 해줄게’라는 협박 메시지를 보낸 내용도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일본은 역사적으로 인허가 제도가 생기기 전에 대부업을 하고 있어서 한꺼번에 없애기 어려우니 허용하되 규제하는 방향으로 정리한 것인데, 한국은 아예 없던 제도를 만들었어요. ‘시장에 맡겨야 해결된다, 서민들도 좋아지고 사채업자들을 양성화시켜줘야 관리·감독이 된다’고 하고는 관리·감독도 안 되고 서민들 피해만 늘어났죠.”

일본은 자본금 5,000만 엔(약 4억4,700만 원) 이상을 유지해야 하지만 한국은 1,000만 원만 있으면 대부업체로 등록할 수 있고 등록 후 출금해도 상관없다. 일본은 자격시험이 있고 직원 상주 규정도 있지만, 한국은 어떤 기준도 없다. 일본의 정식 대부업체가 1,548개(지난해 3월 기준)인데, 한국은 8,771개에 이르는 이유다.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 서울시 금융복지상담센터에 신고할 수 있지만 원활한 피해구조엔 역부족이다. 민사소송은 법률구조공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나 모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민주노동당에서 일하던 시절에 ‘대부업은 정부가 허용한 거 아니냐, 부작용도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피해구제 시스템이 없다’고 항의를 해서, 법률구조공단에서 이자율 제한 위반 혐의로 상대방이 처벌 받은 경우에 무료 법률구조 대상이 되도록 했어요. 그렇다고 해도 대상이 되기 어려운 경우가 있고, 설령 됐다고 해도 복잡한 법 논리가 필요한 경우도 있고, 법률구조 대상이 되기 전에 민사적으로 풀어야 될 사람들도 있어요. (민생연대는) 나 홀로 소송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정 안 되면 비용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주는 거죠.”

사채업자가 피해자를 사기꾼으로 몰아서 인터넷에 개인정보를 유포한 내용들. 사채업자들은 개인 블로그를 사들여서 협박용으로 개인 정보를 유포한다. 신용주 인턴기자

사채업자가 피해자를 사기꾼으로 몰아서 인터넷에 개인정보를 유포한 내용들. 사채업자들은 개인 블로그를 사들여서 협박용으로 개인 정보를 유포한다. 신용주 인턴기자


일상 다반사여서 이슈가 안 되는 역설

송 처장은 이렇게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에, 이렇게나 무심한 사회를 이해할 수가 없다. “예전에 아주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죠. 사채 때문에 딸이 유흥업소에서 몸을 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딸을 죽이고 자살했던 사건요. 그런 경악할 만한 사건이 벌어져도 ‘사채업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이런 사회가 돼버린 거예요. 워낙 일상 다반사로 벌어지다 보니까 사람들이 죽어가도 ‘누가 죽었나 보다’ 하지 별로 신경 안 써요.”

서울 영등포구 민생연대 사무실 벽에 사채 피해자가 남편에게 남긴 유서(맨 오른쪽), 고 이한빛 PD 어머니 김혜영씨의 메시지(왼쪽) 등 응원 편지들이 붙어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서울 영등포구 민생연대 사무실 벽에 사채 피해자가 남편에게 남긴 유서(맨 오른쪽), 고 이한빛 PD 어머니 김혜영씨의 메시지(왼쪽) 등 응원 편지들이 붙어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그는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사채 사용을 부추기는 대부업 제도와 연관이 있다고 단언했다. “예전에 신용카드 엄청나게 발급해주고, 현금서비스 받게 해줬을 때, 신용 불량자들이 많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죽어갔잖아요. 사채시장도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가요.”

대부업법이 제정된 다음 해(2003년) 처음 10만 명당 20명대(22.7명)로 뛰어오른 자살률은 줄곧 20명대 이상(2011년 최고 31.7명)을 유지하고 있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22년엔 25.2명이었다.

송 처장은 “금융 과잉이 발생하면 과잉 대출이 일어나고, 누군가는 갚지 못한다”며 “연체에 따른 불이익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돈을 끌어다가 메꿔놓는 ‘돌려막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융기관 대출이 막히면 대부업 자금을 끌어오려 하는데, 멈추게 해 줘야 한다”며 “그런데 우리는 (정부가) ‘우수 대부업체’를 선정하고, 대부업 자금을 쓰라고 (권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회 구성원들의 전반적인 인식도 문제다. 그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의식 자체가 채권자 중심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빌렸으니까 갚아야지, 이 상식만 있고 소득과 재산의 범위 내에서 정상적으로 갚아야 된다는 상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인허가 받은 금융기관을 1금융권·2금융권으로 구분하고, 그 외에는 대부업자·사금융업자·사채업자라고 하는데 같은 말 다른 표현이에요. 2금융권이 마지노선이 되도록 해야 돼요.”

민생연대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사채 피해자들의 감사의 메시지. 신용주 인턴기자

민생연대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사채 피해자들의 감사의 메시지. 신용주 인턴기자


의원 보좌관 신분 땐, 경찰이···

그는 지금까지 3,000명 이상을 상담했다. 10년이 걸린 사건도 있다. 사채업자가 자기 명의 통장을 만든 뒤, 채무자에게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통해서 그 통장에 입금해서 갚아나가도록 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사채업자가 사망한 후 그 유족이 피해자에게 돈을 안 갚았다고 청구했다. ATM을 통해 돈을 입금한 것을 증명하는 은행 폐쇄회로(CC)TV 기록은 3개월만 보관되기 때문에 입증이 어려웠다. 결국 채무부존재 소송까지 제기해서 승소했다.

쓰린 기억도 많다. 상담 전화를 했다가 “아이가 운다”며 다시 전화하겠다던 아이 엄마는 연락이 끊긴 채 목숨을 끊었다. 코로나 시기 찾아와 상담을 받고 2억 원을 사채업자에게서 돌려 받았던 청년도 주변사람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송 처장은 “사실 4년 전에 (후원이 끊겨) 문을 닫아야 하는데 닫지 못한 이유가 그 청년 때문이었다”며 “환하게 웃으면서 (사무실 문을) 들어왔다”고 회고했다. “건강하게 살면서 마음의 빚을 갚아가면 되는데 그걸 이겨내지 못했죠.”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이 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이 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그는 2012년부터 2년간 최재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배려로 보좌관 직함을 달고 사채 피해 상담·지원을 했다. “‘자기(의원) 이름 걸고 민생연대 일을 해달라’는 파격적인 배려를 해줬다”고 고마워했다. 그때가 사건 해결이 가장 잘 되던 시기였다. 같은 일인데도 효능감은 훨씬 컸다. 이유는 경찰들의 자세에 있었다.

“정말 문제 풀기가 쉬웠죠. 지금은 고소장 작업을 다시 해야 하는데, 그때는 피해자와 함께 ‘정리된 (피해)내역 보내드리겠습니다’ 한마디만 하면 경찰이 알아서 수사를 잘해줬어요. 국회의원 보좌관 신분이니까, 경찰들이 ‘국회의원이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수사가 제대로 안 되면 깨질 수 있겠구나’···(생각을 하는 거죠). 권력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가 엄청나게 커요. 그런 데에 권력을 써야 하는데 안 쓰죠.

제주4·3 겪은 외할머니의 통곡과 당부

자본주의의 밑바닥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늘 만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테다. 송 처장은 “힘들 때도 있지만, 멘털이 약하진 않다”고 한다. 그 배경으로 ‘가족사’를 꼽았다.

“처참한 가족사가 있어요. 제가 제주 출신이고 4·3사건 때 외할아버지, 오촌 친척 가족 일가, 큰아버지 등을 잃었어요. 외할머니가 자식과 남편, 조카 가족을 잃은 거죠. 제주도는 마을 공동체의 문화·사회경제적 조직, 괸당 문화가 있어요.”

2019년 70년간 수형인이라는 낙인 속에 억울하게 살아온 제주 4·3사건 피해자들이 군사재판 재심 청구 사건 선고를 앞두고 제주지법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70년간 수형인이라는 낙인 속에 억울하게 살아온 제주 4·3사건 피해자들이 군사재판 재심 청구 사건 선고를 앞두고 제주지법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살을 보고 겪으신 외할머니는 여섯 살 어린 태경을 부둥켜안고 통곡하며 부탁했다. “4·3 고튼 거 어시게 간세 허지마랑, 아라시냐(4·3 같은 비극이 없게 게으름 피우지 말고, 알았니)!” 자라면서 외할머니를 뵐 때마다 같은 말을 들었다.

어머니는 홀로 가계를 이끌면서 6남매 중 큰형, 작은형, 그리고 태경까지 대학을 보내려 애썼다. 하지만 중학교 때 학교 공부를 접고, 고3 때는 자동차 정비회사에 취업했다. “큰형 대학을 정말 어렵게 보냈거든요. 만약 작은형과 내가 대학 가면 ‘우리 어머니 죽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머니가 공장 앞에서 아들 대학 보내야 하니 해고해달라고 할 정도였다.

2013년 제65주년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서 희생자 유족들이 위패봉안소에 모셔진 위패를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 제65주년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서 희생자 유족들이 위패봉안소에 모셔진 위패를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결국 대학(제주대)에 진학했다. 그리고 대학서 할머니의 뜻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일을 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도 외할머니 부탁과 관련돼 있어요. 맑스(마르크스) 철학의 ‘사회적 사랑’이 사회적 추진 중의 하나거든요. ‘사회적 사랑’을 튼튼하게 지탱하는 부분 중에 하나가 가족사이고, 초심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거죠. 공동체 이웃들이 아프면 연대하고 공존하려는 감정들은 누구나 있잖아요. 나는 이런 가족사나 철학적 배경 때문에 남들보다 훨씬 강한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도 많이 아팠어요. 많이 울기도 하고요.

민생 제도 개선에 바친 ‘제주 맑스’의 삶

그는 ‘제주 맑스’로 유명했다. 대학 전공은 선박항해였지만, 독학으로 자본론 등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경영학을 부전공했다. 전국 주요 대학 총학생회나 동아리연합회, 노동조합 등에서 특강을 하는 인기 강사였으며, 여러 저서를 내는 등 이론적 성과도 상당했다.

“맑스주의를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 중에 한 명이 저였어요. 학문이고 사회과학의 영역이지, 이념이 아니에요. ‘주의’라고 하면 ‘맑스 말이니까 믿고 따라라’가 되잖아요. 맑스도 틀린 게 많아요. 특히 초기 저작은 바글바글하게 많아요. 이론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고 성과를 내왔는데 공식적으로 평가를 받아본 적은 없죠.”

서울 영등포구 민생연대 사무실에 사채 피해자 감사 메시지와 업무 메모가 빼곡하게 붙어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서울 영등포구 민생연대 사무실에 사채 피해자 감사 메시지와 업무 메모가 빼곡하게 붙어있다. 신용주 인턴기자

그는 ‘사채 해결 천사’로 유명해졌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경제학자’로 여긴다. “경제학을 공부했고 여전히 공부하는 사람”이다. 1997~2008년 민주노동당 경제담당 정책위원, 정책국장, 정책실장을 지내며 관여한 제도 개선 성과들은 큰 자부심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 법안 초안 작성과 법제정 운동, 고용보험법의 구직 급여 기한 연장, 종업원 소유제도(노동자 기업인수 등) 법제화, 이자제한법 복구, 개인회생제도의 법 초안 작성자이기도 했다. 정부나 국회가 개정안을 만들 때 수없이 실무 전문가로 참여했다.

물론 현재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부분은 사채 영역이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영역인데도 아무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사회 운동화시키지 않았던 영역”이란다. “다른 영역은 같이 행동할 수 있었고 목소리를 낼 수 있었는데, 이 영역은 (저처럼) 누군가 적극적으로 희생하고 헌신하지 않으면 최후의 보루가 돼 줄 수 없는 거죠.”

다시 시작하는 민생연대, 대부업법 개정을 위해

후원이 끊기면서 올 초 문을 닫을 예정이었던 민생연대는 JTBC의 보도 이후 후원금이 몰리며 재단장했다. 송 처장은 홀로 상근으로 일하다, 이제 3명의 활동가와 일하고 있다. 법제전문위원 김치라 변호사, 정책전문위원(미국 종업원 기업 소유제도 전문가) 이동한 박사가 동참했고, 재정상태 때문에 민생연대를 퇴직했던 조인숙 사무국장(사회적경제 전문가이자 회계담당자)도 복직했다. 비상근이었던 이선근 대표까지 상근자로 바뀌어 작은 사무실에 5명이 근무한다.

송 처장은 대부업의 진입장벽을 세우는 것을 가장 큰 과제로 보고 있다. “가장 급한 게, 신뢰할 수 없는 자들이 지금 대부금융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합법적으로 등록을 해서 합법의 탈을 쓰고 불법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거죠. 현행 제도에서는 불가피하고,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합리적인 진입장벽이 필요한데, 그 진입장벽에 해당하는 제도가 순자산 제도죠. 최근에 김치라 변호사가 정책보고서를 만들었고 한정애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 발의를 해주셨어요.”

대부업법 개정안엔 대부업 등록 요건으로 순자산액 3억 원 이상을 보유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새로 단장한 민생연대 홈페이지. 사채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은행권 과잉 발행 문제를 짚은 보고서까지 올라와 있다. 홈페이지 캡처

새로 단장한 민생연대 홈페이지. 사채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은행권 과잉 발행 문제를 짚은 보고서까지 올라와 있다. 홈페이지 캡처

법제화를 장담할 수 있을까. 그에게 “정치권을 믿느냐”고 물었더니 “아니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양당이 야합해 가지고 김대중 정부 시절에 (대부업법을) 만들었죠. 당시 정치인 발언을 보면 가관이에요. 연 이자를 90%까지 허용해 주자고 주장했고요. 이렇게 했던 사람들을 믿을 수 없죠. 역사적 죄업이 있는데 어떻게 믿어요.”

하지만 법개정은 국회의 몫이고 희망을 가지려 한다. “민주당 내에서도 일부는 제도 개선을 해야 된다고 해요. 어쨌든 해야죠.” 송 처장은 다시 강조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영역이잖아요.”

그의 열정에, 사채 피해자들의 소망에 정부와 정치권이 어떻게 답할지 지켜볼 일이다.

이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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