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수도권 한 초등학교 5학년 담임교사 A씨는 맡은 반의 정서행동위기학생 B군의 선 넘은 신체 접촉을 반복적으로 당했다. 친구와 다툰 B군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B군은 A씨 볼에 입을 댔다. 교사의 제지에도 B군은 계속 가슴골 등에 부적절한 성적 행동을 했다. 정신적 충격을 받은 A씨는 관할 교육지원청 지역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에 교권 침해 판정을 신청했다. 그는 치유와 회복을 위해 B군과의 학급 분리를 원했다. 하지만 교보위가 B군에게 내린 처분은 '심리치료 6시간'에 그쳤다. 피해 사실이 B군 진술서로 인정됐지만, 피해자 요청과는 크게 동떨어진 결론이었다.
지난해 7월 서이초 교사의 죽음 이후 나온 교권 회복 대책으로 지역교보위가 올해 3월부터 가동됐다. 학교 관리자가 학부모 눈치를 보며 교내 교보위 개최를 무마해온 관행을 깨고 교사가 신청하면 교육지원청 차원의 교보위가 열리도록 바뀌었다. 하지만 피해자 치유와 관계회복 등을 위한 실질적 조치가 내려지는 데 제구실을 못한다는 교육계 지적이 나온다.
우선 교육활동 침해 행위를 점수로 매겨 교원지위법에 규정된 처분을 내리는 데만 방점이 찍힌 교보위의 결정 방식이 제대로 된 처방에 이르지 못한다는 문제가 거론된다. 교보위는 교육활동 침해 행위의 △심각성 △지속성 △고의성 △반성 정도 △관계회복 정도 등 5개 항목 점수(최저 0점~최고 3~5점)의 합산으로 처분을 정한다. 합계 5~7점은 1호(교내 봉사), 11~13점은 4호(출석정지), 14~16점은 5호(학급 교체), 17점 이상은 6호(전학)·7호(퇴학) 처분이다.
A씨 사안으로 돌아가면, '행위 심각성'이 5점이었으나 지속성·고의성 각 1점, 반성 0점, 관계회복 2점 등 9점에 그쳐 B군에게 3호(심리치료) 처분이 났다. B군 측이 사실관계를 인정했다는 이유로 반성은 0점이 됐고, '관계회복'(최고 3점)은 '교원이 심리적 고통에서 회복되지 않았으나 보호자의 의지가 있다'는 이유로 교사 의사와 무관하게 1점 낮은 2점이 나왔다고 한다.
결국 피해 교원은 교실 복귀를 포기하고, 비정기 전보 신청을 내 다른 학교 발령을 기다리는 처지다. 반 학생들은 담임교사의 병가 기간 학습권 피해를 입고 있다. 정량화의 외피를 쓴 판정과 이에 종속된 학교의 후속 조치, 상식적인가. 무얼 보호한다는 것인가.
아울러 사실관계 조사 방식도 개선할 지점으로 언급된다. 교보위는 전담조사관이 있는 학교폭력 건과 달리 학교에서 대략 정리한 사실관계로 심의한다. 교보위 참여 경험이 있는 인사들은 "조사 방법 등 교육당국의 가이드라인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된다"고 꼬집는다. 교원이 학생들 진술 확보 등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학생 보호자의 정서학대 주장 같은 민원에 직면할 공산도 크다. 엉성한 사실관계 조사로 낮은 처분 수위가 나와도 교원은 이의신청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교육 현장에서 중재와 화해의 공간이 사라져가는 실상은 씁쓸하다. 참다못한 교사가 교보위로 가기 전에 교육적 차원을 고려한 학교 내부의 치열한 갈등 중재 노력도 필요하다. 그래야 교사와 학생, 보호자 간 관계회복이 되고 신뢰를 다시 형성할 여지가 있다. 교보위에선 교육활동 침해를 인정했으나 점수가 낮아 '조치 없음'으로 면죄부를 줄 때도 있다. 교보위 운영만이 능사가 아니란 얘기다. 학교 현장 중재 기구의 내실화를 적극 고민해볼 때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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