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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가 노벨상을 사후 수상한 사연

입력
2024.07.3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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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다그 함마르셸드- 2

캐나다 매니토바와 미국 노스다코타주 국경의 국제 평화 정원 돌담에 새겨진 다그 함마르셸드의 말. commons.wikimedia.org

캐나다 매니토바와 미국 노스다코타주 국경의 국제 평화 정원 돌담에 새겨진 다그 함마르셸드의 말. commons.wikimedia.org

(이어서) 노벨위원회가 1961년 10월 다그 함마르셸드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자 '사후수상은 원칙 위반'이라며 반발한 이들이 있었다. 당시 노벨재단 정관에 따르면 노벨상은 생존자에 한해 후보를 추천받아 심사하지만, 같은 해 2월 1일 이전에 이미 후보로 선정된 경우 사후 수상이 가능했다.
사후에 노벨상을 받은 이로는 스웨덴 시인 에리크 악셀 칼펠트(1864.7~1931.4)가 사후인 그해 말 노벨문학상을 받은 선례가 있었다. 1907년부터 노벨위원회 위원으로 재직하던 그는 1918년 자신이 노벨문학상 최종후보에 포함되자 “위원이 어떻게 상을 받을 수 있느냐”며 사양했고, 스웨덴 한림원은 그해 문학상 수상자를 내지 않았다. 재단 측은 그의 수상은 엄밀히 말하면 사후 수상이 아니라 유예된 수상이라고 해명했다.

노벨재단은 1974년 정관을 개정, 수상자가 발표 후 사망한 경우에 한해서만 사후 수상을 허용하기로 결정했고, 캐나다 면역학자 랠프 스타인먼(1943.1.14~ 2011.9.30)이 2011년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스타인먼은 수상자 발표 사흘 전에 숨졌지만 재단 이사회는 법령 등을 검토, 그의 수상 자격을 인정하기로 했다.

1961년 노벨위원회는 “유엔 헌장에 명시된 원칙과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효과적이고 건설적인 국제기구로 유엔을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 함마르셸드에게 평화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콩고에 대한 유엔 정책, 즉 함마르셸드의 평화주의를 친소비에트적이라며 비난하며 유엔에서 미국대표부를 철수시킬 것이라고 압박했던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이듬해 3월 스웨덴 대사(Sture Linnér)와의 면담에서 콩고 정책에 관한 한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 인정하며 “함마르셸드에 비하면 나는 작은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는 우리 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치인이었다”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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