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 서거 대통령 9명 조각상 검토
엇갈린 평가 박정희·전두환 등도 포함
"정치적 공간 변질 우려" "구시대적 발상"
구 "주민설문·전문가 의견 수렴해 결정"
서울시 마포구가 관내에 전직 대통령 조각상을 세운 '화합의 거리' 조성 계획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역대 대통령 기념시설이 밀집한 지역적 특성을 살려 전직 대통령 업적을 기념하는 문화관광자원을 만들겠다는 취지지만,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전두환 박정희 전 대통령 등도 포함돼 의도와 달리 정치적 논란과 갈등만 부추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마포구, 전직 대통령 조각상 세워 '화합' 도모
마포구는 전직 대통령들의 조각상과 안내판 등을 조성하는 내용의 '화합의 거리' 조성사업에 대한 타당성 검토 용역(예산 4,000만 원)을 추진한다고 22일 밝혔다. 설치 대상은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서거한 전직 대통령 9명이다. 사업 부지로는 당초 가좌역 부근부터 홍대입구역 등을 지나는 '경의선 숲길' 공원이 거론됐지만 구내 유휴부지 등을 포함해 재검토할 방침이다.
마포구에는 최규하 대통령 가옥과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김대중 대통령 도서관 등 전직 대통령과 연관된 다양한 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다. 2009년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2021년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생애 대부분을 각각 관내 동교동과 연희동 자택에서 머물렀을 만큼 전직 대통령들과 인연이 깊다. 이에 '마포구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를 근거로 전직 대통령 조각상을 한곳에 설치에 '정치적 화합'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역대 대통령의 공과를 논하는 정치적 공간이 아니라 경제적·역사적으로 재해석되는 상징적 공간조성사업"이라고 설명했다. 마포구는 주민설문조사와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진보·보수 시위대 몰리면 어쩌나" 주민 우려 커져
하지만 구민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주민 생활공간이 정치적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역사적 공과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인물들이 포함되면서 오히려 불필요한 갈등과 논쟁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용강동에 사는 주민 A씨는 "대통령 흉상만 줄지어 전시한다고 화합이 되겠냐"며 "극렬보수·진보단체의 시위장소가 될 게 뻔하다"고 떨떠름해했다.
경제적 효과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주민 B씨는 "마포구는 합정, 홍대, 연남 등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상권이 몰려 있는 곳"이라며 "정치적 색채가 부각되면서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길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실제 다수의 마포구민이 모인 단톡방에서는 "주민 세금으로 흉물이나 만든다", "분란의 거리가 될 것", "최악의 발상" 등 부정적 의견이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시대에 맞지 않는 국가주의적 발상이라고 진단했다. 최준영 문화사회연구소 소장은 "시민들이 휴식하고, 활동하는 공간에 전직 대통령 조각상을 갖다 놓는다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중시하는 현 시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전직 대통령 상징물 조성 논란 '현재진행형'
전직 대통령 상징물 건립을 둘러싼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대구에서는 지난 5월 동대구역 광장 등에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는 기념사업 조례안이 논란 끝에 대구시의회를 통과했다. 당시 시의회 본회의장 입구에서는 조례안에 반대하는 박정희우상화사업반대 범시민운동본부 관계자와 시의회 청원경찰 등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시는 14억5,000만 원을 투입해 동대구역 광장과 현재 건립 중인 대구도서관 공원에 박 전 대통령 동상을 설치할 예정이다.
제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쿠데타를 기념해 붙여진 한라산 '5·16도로(1969년 개통)'의 명칭 변경을 놓고 수십 년째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에서는 2020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동상 철거와 2022년 박근혜 전 대통령 동상 설치를 두고 논란이 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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