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조용한 발인식
옛 학전 앞마당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떠나
지인·시민들, '아침이슬' 함께 부르며 배웅
'지하철 1호선' 밴드 멤버, 색소폰 연주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아르코꿈밭극장. 지난 21일 별세한 가수 김민기의 영정이 학전블루 소극장이 있던 이곳에 잠시 머물다 떠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침이슬'을 부르기 시작했다. 잔뜩 흐려 있던 하늘에선 때마침 가랑비가 내렸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는 "사랑합니다, 선생님!"이라고 외쳤다. 고인이 연출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출신의 배우 장현성과 설경구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김민기가 유족과 지인, 시민들의 배웅 속에 영면에 들었다. 고인의 발인식은 이날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별도의 영결식은 없었다.
옛 학전 소극장 앞마당에서 마지막 인사
고인은 발인식이 끝나고 장지인 충남 천안공원묘원으로 떠나기 전 자신이 1991년 세워 33년간 일궜던 학전 앞마당을 들렀다. 그가 2021년 학전 설립 30주년을 기념해 심은 나무와 화초가 자라고 있는 곳이다. 담벼락엔 가수 김광석 추모비와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원작자인 극작가 폴커 루드비히, 작곡가 비르거 하이만의 흉상도 있다.
가수 박학기, 배우 이황의 최덕문 배성우, 방은진 감독,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등이 극장 주변에 모여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고인으로부터 학전 건물을 이어받아 아르코꿈밭극장 운영을 맡은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과 고인의 팬들도 일찍부터 함께했다. 배우 황정민도 뒤늦게 노제에 참석해 고인을 떠나 보냈다.
극장에 도착한 유족들은 마당 옆 조그만 화단에 영정을 놓고 묵념했다. 화단에는 고인을 기리며 시민들이 놓고 간 꽃과 막걸리, 맥주, 소주 등이 놓여 있었다.
운구차가 극장 앞 좁은 길을 빠져 나간 뒤 '지하철 1호선' 공연 밴드의 일원이었던 이인권씨가 색소폰으로 고인의 '아름다운 사람'을 연주하자 흐느낌은 오열이 됐다.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그이는 아름다운 사람이어라" 하는 가사의 노래다. 이씨는 "선생님은 제게 아버지 같은 분인데 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마지막으로 가시는 길에 준비했다"고 말했다.
발길 떼지 못한 추모객들..."그이는 아름다운 사람"
장현성은 "가족장으로 하시기로 했으니 우리는 여기서 선생님을 보내드리자"고 했으나 추모객들은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지난해 위암 4기 진단을 받은 김민기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1951년생인 고인은 1971년 '아침이슬'이 담긴 자신의 첫 앨범을 발표하며 데뷔했으나 이 곡이 창작 의도와는 다르게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불리며 유신 정권의 표적이 됐다. 자신의 이름으로 노래를 발표할 수 없게 되자 노동 현장에서 묵묵히 곡을 쓰고 노래극을 만들며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1991년 학전을 연 뒤 '지하철 1호선' 등 뮤지컬과 어린이극, 콘서트 등을 연출하며 수많은 가수, 배우들이 성장하는 것을 도왔다. 그는 늘 이들을 '앞것'이라 부르고 자신은 '뒷것'을 자처했다.
학전은 재정 악화와 고인의 건강 악화로 지난 3월 개관 33년 만에 문을 닫았다가 지난 17일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장 아르코꿈밭극장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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