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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계곡 암석에 새긴 '백운동천' 힘찬 글씨...애국지사 김가진의 명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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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계곡 암석에 새긴 '백운동천' 힘찬 글씨...애국지사 김가진의 명필이었다

입력
2024.07.30 11: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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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명필가 김가진 '백운서경'전
창덕궁 현판 등 작품 200여 편 공개
유홍준 "근대 서예가를 널리 알리는 계기"

지금의 서울 자하문 터널 인근에 있는 '백운동천' 암각글씨. 도농문화재단 제공

지금의 서울 자하문 터널 인근에 있는 '백운동천' 암각글씨. 도농문화재단 제공

'백운동천(白雲洞天)'

서울 종로구 부암동 계곡의 암벽에 예사롭지 않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일제강점기 비밀결사인 조선민족대동단 총재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고문을 지낸 동농(東農) 김가진(1846∼1922)이 1903년에 썼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인왕산 계곡 터에 '백운장'이라는 집을 짓고 스스로를 '백운동 주인'이라고 칭했던 그는 '신선이 사는 계곡(洞天)'이라는 의미를 담아 글자를 새겼다. 골격이 강하면서도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대자서(大字書)다.

김가진의 호를 딴 '동농체' 정수로 꼽히는 네 글자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 '백운서경'에 탁본으로 나왔다. 관료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인 그의 발자취를 좇는 첫 전시다. 그가 중국 상해에서 76세의 일기로 눈을 감은 지 102년 만이다. 전시를 기획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김가진은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지만 당대 명필가로 최고 경지에 올랐다"며 "유묵과 여러 기관에서 보관한 소장품을 한자리에 모아 서예 세계를 재조명했다"고 소개했다.

도농 김가진의 생전 모습. 대한제국 대신으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임시정부 일원으로 항일투쟁을 했다. 도농문화재단 제공

도농 김가진의 생전 모습. 대한제국 대신으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임시정부 일원으로 항일투쟁을 했다. 도농문화재단 제공


혼미한 세상에서 갈고닦은 서예의 정수

23일 개막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린 동농 김가진 서예전 '백운서경' 전시장 전경. 기자간담회에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이 전시는 9월 19일까지 열린다. 연합뉴스

23일 개막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린 동농 김가진 서예전 '백운서경' 전시장 전경. 기자간담회에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이 전시는 9월 19일까지 열린다. 연합뉴스

고종때 상공부 대신을 지낸 동농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항일비밀결사조직인 조선민족대동단을 조직했고, 74세에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임시정부 고문이 됐다. 조선왕조 고위 관료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임시정부에 참여했으며, 그를 따라 아들(김의한), 며느리(정정화), 손자(김자동)까지 3대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독립운동가의 명성에 가려 서예가의 면모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이번 전시에는 동농이 쓴 시축(시를 적은 두루마리)과 병풍, 궁궐·사찰의 현판, 암각글씨 탁본, 인장 등 200여 점이 소개돼 서예가로서 이룬 경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그가 창덕궁을 관리하는 비원 감독을 지내면서 제작한 현판 글씨 15건을 한데 모아 선보인다.

동농은 당시 유행하던 서풍을 따르기보다 유명 서예가들의 서체를 고루 익히며 고전미를 추구했다. 유 교수는 "세상이 혼미하니 고전에 깊이 들어가 흔들림 없는 서예 본연의 가치에 주목했다"며 "글씨에 붓을 수직으로 세워 쓴 중봉의 힘이 살아있고 무게감이 느껴지면서도 율동감이 살아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동농이 독립운동가 동지들과 주고받은 편지, 상해에서 대한민국 개국 2주년을 기념해 쓴 시와 아들에게 써준 글씨 등 희귀 자료도 볼 수 있다. 9월 19일까지인 전시 기간에는 매주 화요일 오후 3시부터 유 교수(전 문화재청장),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이 도슨트 형식으로 현장 강연을 한다.

서대문에 있는 독립문의 한자·한글 편액. 이 글씨를 쓴 사람이 이완용이라는 설도 있지만 필법 등으로 볼 때 김가진이 쓴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학계의 추정이다. 도농문화재단 제공

서대문에 있는 독립문의 한자·한글 편액. 이 글씨를 쓴 사람이 이완용이라는 설도 있지만 필법 등으로 볼 때 김가진이 쓴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학계의 추정이다. 도농문화재단 제공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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