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문학 기자가 지금 가장 ‘읽기 좋은 문학’을 뽑았습니다. 이 문학을 직접 만든 작가와 평론가, 번역가, 편집자 등의 인터뷰로 싱싱한 제철의 문학을 눈앞으로 배송해드립니다.
자신을 때리고 굶기는 부모가 아닌 ‘진짜 부모’를 찾아 떠도는 소녀(‘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와 죽은 연인의 시체를 먹는 여성(‘구의 증명’),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이제야 언니에게’) 등 외면하고만 싶은 폭력과 고통의 세계를 치열하게 그려온 소설가 최진영(43).
그의 작품은 분명 어두움에도 고요하고 서늘하기보다는 한여름처럼 뜨겁다. 최근 세상에 나온 최 작가의 소설집 ‘쓰게 될 것’도 마찬가지다. 매 순간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거야”라고 말하는 소설 속 인물에게서 열기가 느껴진다. 이들의 남다른 온도는 한국일보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는 작가 본인에게서 비롯됐음이 분명하다. “저는 제가 상상해서 만든 이야기와 인물 뒤에 숨어서 저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그때 내가 좀 아팠어. 외로웠어. 서운했어. 사실은 내가 널 사랑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소설 쓰기의 즐거움, 뒤늦게 깨달아”
최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렇기에 자신을 던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전쟁과 기후위기, 인공지능(AI), 질병 등 그를 둘러싼 환경이 가혹해질수록 더욱 그렇다. ‘쓰게 될 것’의 표제작 주인공 ‘유나’가 대표적이다. 가족을 잃고도 계속되는 전쟁과 함께 자라난 유나는 “누군가를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는 상황을. 내가 죽어야만 누군가가 살 수 있는 상황을” 자주 상상하면서도 “매일 밤 삶을 선택한다.”
최 작가는 “‘쓰게 될 것’의 소설들은 소설 쓰기의 즐거움을 뒤늦게 깨달아가던 시기에 쓴 소설들”이라고 밝혔다.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해 “18년 가까이 글을 쓰고 있지만 ‘글쓰기의 즐거움과 자유로움’에 대해서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는 그에게 ‘글을 왜 쓰나’라고 물어보면 '할 수 있는 말'과 '하고 싶은 말'이 이번 소설집에 담겼다. 특히 작가의 시선이 “근미래가 아닌 현재고, 지금 일어나는 일”에 닿은 건 “소설가, 또는 작가의 일이란 다만 쓰는 일이 아니라 그보다 더 오래, 깊이 생각하는 일”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최 작가는 덧붙였다. “이런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소설을) 시작하는 것 같아요.”
모든 소설의 영원한 주제는 ‘사랑’
최 작가의 영원한 주제는 ‘사랑’이다. 최근 역주행 베스트셀러에 오른 장편소설 ‘구의 증명’(2015)의 인기 역시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최 작가는 반문했다. 실현은커녕 상상조차 어려운 처절한 사랑 이야기에 ‘진실한 사랑’을 믿지 않는 것 같은 현대인이 감응했다. 그는 “대부분의 소설은 사랑 이야기”라며 “사랑은 때로 나를 너무 힘들게 하지만,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고 말했다.
2010년 첫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낸 이후 거의 매년 작품을 발표하는 최 작가다. 그는 “글쓰기는 너무나도 필요한 일”이라면서 “이야기로 쓰면서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것의 진짜 감정을 마주하지 않는다면 우울, 자기혐오, 비관, 증오, 외로움, 체념, 분노 등이 나를 잠식해 버릴 것”이라고 털어놨다. 글을 쓰면서 자신을 위협하는 감정과 상황, 부정하거나 버리고 싶은 부분 또한 ‘나’라는 것을 받아들인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최 작가는 앞으로도 계속 쓰게 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계속 쓰겠다’는 말은 곧 ‘계속 나로 살아가겠다’ ‘나를 버리지 않고 함께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최진영 작가가 직접 뽑은 ‘제철 문학’은?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저의 첫 책인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추천합니다. 만약 제 최근작을 먼저 보고 초기작을 본다면, 초기작의 센 기운에 깜짝 놀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을 먼저 읽어보고 마음에 든다면 이후 출간한 소설을 순서대로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한 사람이 소설을 쓰면서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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