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원 단편소설 '염소'
편집자주
시집 한 권을 읽고 단 한 문장이라도 가슴에 닿으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흔하지 않지만 드물지도 않은 그 기분 좋은 성공을 나누려 씁니다. '생각을 여는 글귀'에서는 문학 기자의 마음을 울린 글귀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추석 연휴에 낯선 나라로 여행을 간 젊은 부부는 신성한 의식에 휘말립니다. 2018년 등단한 소설가 안준원의 첫 소설집 ‘제인에게’의 문을 여는 작품, ‘염소’의 시작입니다.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는 부부는 명절 내내 쏟아질 “아이는 언제 낳을 거니”라는 질문을 피해 여행을 갔지만, 이국에서도 여기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부부가 머무는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청년 ‘창’의 아버지는 이들이 임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자 속죄 의식으로 “염소를 잡아야겠다”고 나섭니다.
여태껏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지독한 누린내가 나는 피 묻은 염소 고기와 부부, 특히 부인 ‘재희’를 노려보는 주술사의 등장으로 팽팽한 긴장이 감돕니다. 잔뜩 예민해진 재희는 “당장 여기서 나가자”면서 남편에게 고백합니다. 몇 년 전 아이를 지웠다고. 알리지 않은 건 남편이 아이를 낳자고 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재희가 말하는 순간 창과 주술사가 찾아옵니다. 속죄 의식이 잘못됐고, 바로잡으려면 오늘 중으로 부부가 직접 염소를 잡아야 한다면서요.
“우리가 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를 묻는 남편에게 주술사는 “우리가 아니라 ‘너’”라고 말합니다. 부인 재희가 아닌, 남편이 염소를 잡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너는 아무것도 몰랐잖아. 지금도 무엇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잖아.”
소설 바깥의 현실에서는 의료기관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기의 정보가 바로 국가에 등록되는 출생통보제와 익명으로도 출산을 할 수 있는 보호출산제가 도입됐습니다. 미신고 아동을 없애려는 취지라지만, 친모의 정보만 필수일 뿐 친부에 대해서는 기재하지 않아도 그만입니다. 심지어 친부의 정보를 적더라도 당사자에게는 연락이 가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고, 무엇도 책임지지 않는” 셈이죠. 임신과 출산은 언제까지 여성만의 책임인 걸까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