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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아버지가...” 충격적인 부음, 스님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입력
2024.08.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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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의 ‘삶도’ 시즌3 : 애도] <6>용수스님

편집자주

‘자살 사별자(Suicide Bereaved)’. 심리적으로 가까운 이를 자살로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자살 사별의 아픔이 비단 가족에게 국한되는 일이 아님을 내포한 말이기도 합니다. 자살은 원인을 단정할 수 없는 죽음이라 남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고인을 쉬이 떠나보내지 못하고 ‘왜’라는 질문에 맴돕니다. 죄책감이나 원망이 들어차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애도’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난한 여정입니다. 한국일보는 올해 자살 사별자들의 그 마음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자살 사별자들이 마음으로 쓰는 부고, 애도’입니다.


9년 전 아버지, 올해엔 가장 친한 친구마저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자살하는 건가’
“그래도 슬픔은 다른 인생을 살게 한다”

티베트 불교 승려인 용수스님을 지난달 2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용수스님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거의 매일 올리는 명상 단상으로도 유명하다. 스님에게 명상을 부탁했다. 정다빈 기자

티베트 불교 승려인 용수스님을 지난달 2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용수스님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거의 매일 올리는 명상 단상으로도 유명하다. 스님에게 명상을 부탁했다. 정다빈 기자

이런 소식이 이메일에 실려 올 줄은 몰랐다. 점심을 먹다 무심코 스마트폰을 보던 참이었다.

“형, 아버지가 자살하셨어. 아버지를 위해 기도해 줘.”

미국에 사는 동생이었다. 용수스님(55)은 이메일을 읽고도 믿기 힘들었다. 몇 달 전 한국에 다녀가셨는데. 밥술을 뜰 수 없었다. 그날은 스님이 종일 ‘렛고(Let Go)명상’을 이끄는 날이었다.

‘렛고명상’은 감정이나 생각을 내려놓는 수행법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스님 마음에 회오리를 몰고 왔다. 스님도 사람.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오후 일정을 취소했다. 통곡이 쏟아져 운전을 할 수 없었다. 동료의 도움을 받아 미국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그로부터 아버지 댁에 머물며 장례식을 치르고, 유품을 정리했다. 승려로서 할 수 있는 기도와 불교식 제례도 드렸다. 아버지의 영가(靈駕)와 작별하는 시간이었다. 불교에선 이생을 떠난 영혼이 다음 생의 생명을 받기 이전까지의 상태를 영가라고 이른다.

“불교에선 사람이 죽고 나면 영가가 21일 동안 그가 살았던 곳에 머문다고 믿어요. 우리의 마음도 영가에게 전해지고요. 그런데 부정적인 마음이나 욕심, 분란이 일면 영가에게 엄청난 고통이 된다고 여기죠.”

스님이 마음속에 일었던 의문, 분노, 후회, 죄의식, 안타까움, 억울함 같은 “감정의 뷔페”를 물리고 아버지와의 인연에 감사함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려 노력했던 이유다.

이것이 벌써 9년 전의 일이다. 스님은 지난달 낸 책 ‘이대로 살아도 좋아’(선스토리)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공개했다. 올해 잇단 사건들로 당시의 감정이 다시 일어났기 때문이다. 고교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함께 살던 한 살짜리 강아지 아띠는 들개한테 물려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친구의 부고를 들었을 땐 “‘나하고 인연이 있는 사람은 다 자살을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스님은 고백했다.

그래도 우리가 상실에서 얻어야 할 건 절망이 아닌 깨달음이다. “삶은 본디 슬퍼요. 들여다보면 슬프지 않은 인생이 없거든요. 그것을 인정해야 해요. 슬픔을 받아들이면 다르게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다르게 살자는 게 불교고, 그래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게 불교예요.”

용수스님은 티베트 불교 승려다. 아홉 살에 이혼한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약사였던 아버지는 미국에선 선물 가게를 했다. 돌아가신 뒤에 아버지가 그간 이혼을 여섯 번이나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아버지가 살면서 유일하게 보인 눈물은 그가 출가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였다. 그래도 아버지는 그의 삶에 개입하지 않았다. 한 번도 ‘노(No)’를 하신 적 없는 분. 그에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였다.

어린 시절엔 미네소타주를 거쳐 유타주에 정착한 탓에 아버지를 따라 모르몬교를 믿었다. 유타주는 모르몬교의 본산이다. 티베트 불교로 개종한 건 그가 다닌 유타주립대에 방문한 달라이 라마의 강연을 듣고서였다. 스님은 “그때까지 내가 품었던 질문의 답이 티베트 불교에 있었다”고 말했다.

스님은 인스타그램에 거의 매일 올리는 명상 단상과 유튜브 강의로 대중에도 인지도가 높다. 2007년 한국으로 와 티베트 불교 닝마파 한국지부인 세첸코리아를 만들었다. 닝마파는 티베트 불교 4대 종파 중 하나. 세첸은 닝마파 법맥에 속한다. 티베트어로 ‘큰마음’이란 뜻이다. 2주간 티베트에서 수행을 마치고 돌아온 용수스님을 지난달 2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수행자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죽음

용수스님은 아홉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동생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서툴렀던 한국어를 다시 배운 건 성인이 되고 나서다. 정다빈 기자

용수스님은 아홉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동생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서툴렀던 한국어를 다시 배운 건 성인이 되고 나서다. 정다빈 기자

-어릴 때 미국으로 이주했는데도 한국어가 유창해요.

“아홉 살에 갔으니까 언어는 빨리 배웠고 적응도 빨랐어요. 하지만 늘 소수자, 이방인이었죠. 그로부터 기인한 열등감이나 불안이 아직도 좀 남아있고요. 한국어는 커서 다시 배웠어요. 제 동생은 저와 두 살 차이인데 한국말을 거의 못 해요.”

-티베트 불교로 출가한 이유가 궁금해요.

“제가 다녔던 유타대에 달라이 라마 존자(尊者ㆍ수행이 뛰어나고 덕이 높은 수행자)가 와서 강연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 강연에 참석하고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됐죠. 아마 전생에 인연이 있었겠죠. 그 인연이 강연으로 자극이 돼 새로운 길이 열린 것 같아요. 제가 찾을 수 없던 답이 불교에 있었어요.”

스님이 달라이 라마의 강연을 들은 건 2001년, 그로부터 2년 뒤 출가했다.

-어떤 질문을 품고 계셨나요.

“어릴 때부터 삶이란 무엇인가 굉장히 궁금했어요. 그런데 그걸 깨달은 사람들이 있다는 게 굉장히 놀라웠어요. 그 사람들을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스님의 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나요.

“2015년 12월에요. 그해에 아버지가 한국에 와서 두 달쯤 지내다 가셨어요. 한국으로 와서 사실 생각도 하고 계셨죠. 그런데 미국으로 돌아가셔서 자살하신 거예요.”

-그 소식을 언제, 어떻게 들으셨나요.

“어땠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누구와 있었는지 다 기억이 나요. 충격적인 순간은 잊히지 않더라고요. 렛고명상 8주 프로그램을 하는 기간이었어요. 오전 일정을 마치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어요. 일상적으로 스마트폰으로 이메일함을 열었다가 동생이 보낸 이메일을 읽었죠. 아버지가 미국에서 혼자 사셨는데 동생이 댁에 가서 발견한 거예요. 그러곤 저에게 연락을 해온 거죠.”

-이메일을 보곤 너무 놀랐을 것 같아요.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어요. 너무나 여러 감정이 일었죠. 오후 일정을 취소하고 집으로 가는데 운전을 못 할 정도로 눈물이 났어요. 주체할 수 없이 통곡했죠.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좀 멍했죠.”

-그때 스님을 가장 괴롭혔던 감정은 뭐였나요.

“후회가 아주 컸어요. 죄의식도 있었죠. ‘내가 효도를 못했나’, ‘내가 아버지를 밀어냈다고 느끼셨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가 한국에 오셨을 때 제가 좀 바빴거든요. 처음엔 제주도 여행 계획도 세웠는데 그러지 못했죠. 생각보다 자주 뵙지도 못했고요. 그런데 그렇게 돌아가시니 죄의식이 컸고 그래서 그 때문에 가장 힘들었죠.”

-미국에선 어떤 시간을 보냈나요.

“불교에선 21일 동안 영가가 주변에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소통도 할 수 있다고 여기죠. 그때 아버지와 많이 대화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 댁에서 유품 정리를 하면서 때로는 굉장히 생생하게 느꼈죠. 아버지에게 사랑을 많이 전하고 싶었어요.”

-아버지에게 어떤 말씀을 전했나요.

“두려워하지 마시라고, 편안하실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했어요.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도 전하고 싶었고요. 그냥 나의 현존으로, 함께하는 마음과 사랑을 전하면서 많은 치유적인 경험을 했어요. 불교에선 영가가 우리의 마음을 굉장히 생생하게 느낀다고 믿어요. 그런데 욕심 같은 부정적인 마음이 들거나 다툼이 생기면 그것 역시 전달돼서 영가에게 엄청난 고통이 된대요. 그래서 아버지가 잘 계시기를, 다음 생도 평화로우시길 바라는 기도를 하면서 애도를 했어요.”

◇‘나와 가까운 사람은 모두 자살하나’

용수스님은 올해 4월 반려견 아띠가 갑작스레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 슬프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SNS에 올렸다. 당시 글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거듭 거론했다. 아띠의 죽음으로 겪은 후회, 분노, 안타까움, 죄의식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느낀 감정의 폭풍우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정다빈 기자

용수스님은 올해 4월 반려견 아띠가 갑작스레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 슬프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SNS에 올렸다. 당시 글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거듭 거론했다. 아띠의 죽음으로 겪은 후회, 분노, 안타까움, 죄의식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느낀 감정의 폭풍우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정다빈 기자

-자살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들 대부분이 죄책감을 느껴요. 수행자이신 스님께선 그 마음을 어떻게 살피고 다스리셨는지도 궁금해요.

“처음에는 저도 감정을 주체하기가 어려웠어요. 다만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죠. 그 감정에 빠지거나 집착하면 몇 년씩 가기도 하거든요. 저는 결국엔 ‘아버지를 위해 잘 살아야겠다’ ‘좋은 스님이 돼야겠다’는 마음으로 바꿨어요. 또 이런 일을 겪었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돼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불교에선 자살을 어떻게 여기나요.

“원래 불교에서도 자살은 안 좋게 보거든요. 살생이니까요. 살생 중에서도 가장 업이 무거운 살생은 인간을 죽이는 거고요. 그런데 자살도 그 의도를 봐야 하지 않나 생각하게 됐어요. 아버지의 동생, 그러니까 제 작은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투병 중에 작은어머니가 엄청 고생을 했어요. 경제적으로도 크게 부담을 졌고요. 아버지가 그 과정을 다 보셨어요. 그런데 아버지도 연세가 드셨고 아버지 몸에서 병도 발견이 됐거든요. 그래서 그러신 것 아닌가, 자식들을 위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자살이란 죽음을 깊이 생각해 보셨군요.

“불교에선 업을 결정하는 여러 요소가 있다고 봐요. 그에 비춰 생각하면, 남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한 행동을 나쁘게 볼 수는 없거든요. 자살이라는 행위 그 자체는 좋지 않지만 동기를 봐야 하지 않나 생각하게 됐어요. 자살을 할 때 대개 깊이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어떤 아픔을 남길지 생각하면 그러지 못할 테니까. 그 순간 견딜 수 없이 힘들고, 어떻게 보면 그게 살길이라고 믿고 하는 걸 거예요. 그런 힘든 감정은 영원하지 않거든요. 그런 감정의 무상함을 알아야 해요.”

“결국 행복하기 위해선 죽음을 알아야 한다.” 용수스님은 박산호 작가와 나눈 문답을 정리한 책 ‘이대로 살아도 좋아’(선스토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다빈 기자

“결국 행복하기 위해선 죽음을 알아야 한다.” 용수스님은 박산호 작가와 나눈 문답을 정리한 책 ‘이대로 살아도 좋아’(선스토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다빈 기자

-스님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한국에선 약사였어요. 경북 김천시에 있는 모광이라는 마을에서 나고 자라셨죠. 그곳에서 서울로 대학을 가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대요. 서울에서 약사를 하면서 돈도 잘 버셨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아버지 형제가 7명이었고 아버지에게 많이 의지를 했죠. 그래서 미국으로 떠난 것 아닌가 한다고 작은아버지는 짐작하더라고요. 미국에선 선물 가게를 하셨어요. 저를 엄청 사랑하셨죠. 제게 ‘노’라고 하신 적이 없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기록을 보고 알았는데, 여섯 번 이혼을 하셨더라고요.”

-출가한다고 말씀드렸을 때 아버지는 뭐라고 하셨나요.

“많이 우셨어요. ‘아들을 잃은 것 같다’고 하셨죠. 제가 진지했거든요. 마음이 확고한 게 느껴졌나 봐요. 그래도 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셨죠. 2010년쯤, 한국에 한번 다니러 오셨을 때 제가 사찰 투어를 함께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저를 보시곤 무척 좋아하셨죠. 아들이 잘하고 있고 주위에서 인정도 받는 걸 보니까 그러셨나 봐요. 미국으로 돌아가실 때 ‘좋은 스님이 돼라’고 해주셨죠.”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자살률이 가장 높아요. 그러니 자살 사별자들도 많지요. 남겨진 사람들이 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요.

“일단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리면 좋을 것 같아요. 수치심은 숨길 때 일어나는 감정이니까. 자기 잘못도, 흠도 아니에요. 자살의 원인은 알 수도 없고 누구의 탓도 아니에요. 그걸 스스로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게 우선일 것 같아요.”

-가까운 이의 자살은 아버지의 죽음이 처음이었나요.

“네, 그런데 올해는 친구의 죽음도 있었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친구가 별로 없었거든요. 그중 가장 친한 친구가 자살했다는 걸 올해 알게 됐어요. 친구의 동생과도 가깝게 지냈는데, 동생이 한국에 다니러 와서 전해줬죠. 알고 보니 한국에 온 이유가 두 가지더라고요. 나를 보러, 그리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을 알리러. 그 소식을 듣고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은 ‘나하고 인연이 있는 사람은 다 자살을 하나’라는 죄의식이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느낀 감정이 그대로 올라오더라고요.”

-그때도 충격이 크셨겠어요.

“미안하고, 허전하고, 돌이킬 수 없다는 무력감, 죄의식 같은 것들이 느껴졌죠. 받아들임에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 감정을 충분히 느끼도록 공간을 주면서도 너무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해요. 흘러갈 시간 또한 필요하죠. 그게 명상이에요. 그런 연습을 하다 보니 좀 떨어져서 상황을 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불교에선 모든 감정은 덧없고 지나간다고 말하거든요. 그런 마음의 원리를 알아서인지 힘든 감정이 오래가지는 않았죠.”

◇슬픔에 시간과 공간을 주세요

용수스님은 ‘죽음명상’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죽음은 우리 삶의 일부”라며 “죽음을 받아들여야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다빈기자

용수스님은 ‘죽음명상’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죽음은 우리 삶의 일부”라며 “죽음을 받아들여야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다빈기자

-반려견 아띠의 죽음도 큰 상실감을 안겼을 것 같아요.

“아띠와 1년도 채 함께 살지 못했지만 관계가 각별했어요. 깊은 인연이었죠. 태어난 지 1년 된 강아지였으니 앞으로 오래 함께 살 거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그런데 올해 4월 항상 가던 뒷산에 산책을 갔다가 들개에 물린 거예요. 바로 가까운 동물병원에 갔는데 좀 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고요.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안타깝다는 말의 뜻이 뭔지 알겠더라고요. 정말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3, 4일 동안은 참 많이 울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그렇게 많이 운 건 처음이었죠.”

-아띠의 죽음은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처음에는 명상을 하기도 어려웠어요. 아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니까요. 기운이 빠지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죠. 아띠가 금요일에 죽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주말 일정을 취소했어요. 그다음 주 월요일에도 일정이 있었는데 정말 안 나가고 싶더라고요. 무기력했죠. 그런데 저 무의식에서 나가라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어요. 억지로 나갔죠. 덕분에 교육을 하며 사람들에게 제 감정을 표현할 수가 있었어요. 명상과 연결 지어 말도 했고, 눈물도 흘렸죠. 제가 사람들에게 평소에 그러거든요. 어려움을 넘기는 비결은 평소처럼 움직이는 것이라고. 그런데 막상 제게 어려움이 닥치니 평소처럼 하기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그렇게 하니 정말 많이 도움이 됐어요.”

-스님의 인생에서 아버지의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과 후의 삶이 다르더라고요. 불교에서는 인연 중에서도 부모ㆍ자식 간의 인연이 제일 깊다고 해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땐 항상 주파수가 느껴졌어요. 그런데 돌아가신 뒤엔 그게 끊어졌죠. 불교는 윤회를 믿으니까 어딘가에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내 아버지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거니까···.”

-인스타그램에 ‘슬픔으로 다르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말씀을 쓰신 적이 있어요. 슬픔이 깨달음을 줬다는 뜻일까요.

“어떻게 보면 슬픔은 가장 인간적이고도 유용한 감정이에요. 삶은 원래 슬프거든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슬픈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 없어요. 고달프고 슬프고 서글픈 게 삶이에요. 그것을 인정하면 다르게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어요. 다르게 사는 게 불교고, 그래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게 불교거든요. 슬픔이 주는 선물이죠.”

-죽음 명상도 알리고 계시는데, 죽음 명상이란 게 뭔가요.

“죽을 운명을 살피는 거예요. 우리는 다 죽을 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인식하지 못한 채 살죠. 죽음, 삶의 무상함을 알아차리면 시간의 한계,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돼요. 삶을 다르게 보게 되죠. 뭐가 중요한지도 알게 되고요. 삶의 유한성을 깨닫는 게 죽음 명상이에요.”

-가족이나 친구 같은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잃은 사람이 스님을 찾아온다면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삶의 일부라고 하고 싶어요.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고요. 표현했으면 좋겠어요. 애도는 표현이거든요. 또 그분의 삶을 축하하고 감사하라고 하고 싶어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너무 많이 무너지지는 말아야 해요. 물론 (수행으로) 마음의 원리, 명상을 공부한 저 역시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냥 너무나 힘들었지만요. 슬픔을 허용하는 시간과 공간을 줘야 해요.”

스님이 자살한 이들이 생각날 때 권하는 기도가 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미안합니다.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

고인을 어두움이 아닌 밝음, 죽음이 아닌 삶, 고통이 아닌 감사, 절망이 아닌 축복, 끝이 아닌 영원으로 기억하는 애도의 기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수스님(오른쪽)은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자살 사별자들에게 말한다. “슬픔을 표현할 공간과 슬픔이 흘러갈 시간을 허용하세요.” 용수스님이 본보 김지은 기자와 인터뷰하는 모습. 정다빈 기자

용수스님(오른쪽)은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자살 사별자들에게 말한다. “슬픔을 표현할 공간과 슬픔이 흘러갈 시간을 허용하세요.” 용수스님이 본보 김지은 기자와 인터뷰하는 모습. 정다빈 기자

※오디오로 듣기 : ‘자살 사별자들이 마음으로 쓰는 부고-애도’ 시리즈는 오디오 콘텐츠로도 제작됐습니다. 이곳을 클릭하면 오디오 콘텐츠로 이동합니다. 링크가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주소창에 다음 주소(https://grief.hankookilbo.com/)를 복사해 붙이면 됩니다.

김지은 버티컬콘텐츠팀장
사진= 정다빈 기자
오디오= 박고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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