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 지옥이 된 바다 1부]
① 뱃사람도 포기하는 바다
8일간 '166시간' 제주 먼바다 조업 어선 탑승기
통신도 끊긴 망망대해, '불편한 진실' 목격하다
편집자주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피 흘리는 바다거북, 배 속에 찬 쓰레기 탓에 죽은 향유고래. 먼바다 해양 생물들의 비극은 뉴스를 통해 잘 알려졌죠. 우리 바다와 우리 몸은 안전할까요? 한국일보는 3개월간 쓰레기로 가득 찬 바다를 찾아다녔습니다. 동해와 서해, 남해와 제주에서 어부와 해녀 63명을 만나 엉망이 된 현장 얘기를 들었고, 우리 바다와 통하는 중국, 일본, 필리핀, 미국 하와이를 현지 취재했습니다. 지옥이 된 바다. 그 가해자와 피해자를 추적했습니다.
“아냐, 아냐! (엄지를 펴며) 큰 거 저기. (새끼를 펴며) 작은 거 여기."
7월 6일, 우리말이 서툰 인도네시아 선원 수완디(41)가 오른 손가락을 들어가며 마뜩잖은 표정으로 말했다. 마흔셋의 초짜 선원인 기자는 어선에 탄 지 나흘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위축돼 있었다. 고기는 잡히지 않는데 작은 새우는 왼쪽 플라스틱 상자에, 큰 새우는 오른쪽 상자에 담으라는 간단한 지시조차 알아듣지 못하니 고참 선원 입장에선 답답할 만했다. 순간 남서풍이 뺨을 스치자 뱃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바람이 덥고 습한 탓에 뙤약볕 아래 중노동을 더 고되게 하는 탓이다.
제주 서귀포시에서 남서쪽으로 68㎞ 떨어진 곳. 안 잡히는 게 없다는 남해의 황금어장에 ‘607 영진호’가 떠 있었다. 이번 항해는 경험 많은 제주 어부의 권유로 시작됐다. 서귀포의 신산리 어촌계장 한철남(62)은 쓰레기로 오염된 바다 상황을 취재하러 온 기자에게 심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자님, 아무 어촌이나 가서 어선을 하루만 태워달라고 해보세요. 어떤 배라도 상관없어요. 해양 쓰레기 문제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후세들은 완전히 망한 거예요.
우리 바다는 정말 쓰레기 때문에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장판이 된 걸까. 수입이 줄어든 어민들의 엄살은 아닐까. 생각해보니 어패류를 즐겨 먹으면서도 정작 그 고기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다가 식탁에 오르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참에 배를 타보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이왕이면 다양한 어종이 잡히는 제주 먼바다에 오랫동안 나가 조업을 도우며 진득이 지켜보기로 했다. 여러 선주들에게 수차례 퇴짜 맞고 한 달 만에 어렵게 얻어 탄 배가 138톤급 저층 트롤(저인망) 어선인 영진호(①)였다. 한여름 7박 8일, 166시간의 조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겁 없는 베테랑 선장…그가 두려운 단 한 가지
영진호 선장 곽운영(63)은 좀처럼 무서울 게 없는 뱃사람이다. 땅끝 섬마을인 전남 고흥 나로도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 되던 1981년 부산에서 처음 고깃배를 탔다. 40년 넘게 그물을 끌며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겼다. 조업 중 배가 휘청해 떨어졌다가 건져진 것만도 대여섯 번은 된다. 그가 두려워하는 건 하나뿐이다.
“고기 안 잡히는 게 제일로 겁나 불지.”
영진호에는 곽 선장과 8명의 선원이 탄다. 어획량이 신통치 않으면 이들과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는다. 위험한 직업인 까닭에 ‘뱃놈한테는 시집도 안 보낸다’고 수군대던 시절 아내를 만나 두 자녀를 키운 곽 선장에게 뱃일은 유일하게 재능 있는 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항해는 유독 중요하다. 7월은 한 해 ‘바다 농사’를 매듭짓는 달이다. 전년 10월부터 제주 먼바다에서 조업을 시작한 어선은 열 달간 쉼 없이 출항한 뒤 어기(漁期)를 끝내고 정산한다. 곽 선장은 지난 1년이 참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나도 배깨나 탄 베테랑인디… 어황이 이만큼 불안한 적이 없었어. 작년과 비교하면 올해 잡히는 고기가 30%는 줄었다니까. 항구 들어가 보면 이구동성이야. 고기가 안 나온다고.
설상가상 배를 끄는 비용은 몇 년 새 무섭게 뛰었다. 영진호 선주 김익수(66) 사장은 “어업인들이 사중고에 짓눌려 있다”고 했다. 고유가와 어획량 감소(②), 이자 비용 증가, 정체된 어가(수산물 가격)가 어민들을 괴롭힌다는 뜻이다. 실제로 면세 경유가는 2년여 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크게 치솟았다. 선주들이 배를 살 때 빌린 은행 빚의 금리도 많이 올랐다. 반면, 민어는 10년 전 25㎏ 한 상자에 30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15만 원으로 반토막 났다는 게 김 사장의 설명이다. 버티다 못해 도산하는 수산업체들도 부쩍 늘었다.
온갖 악재 속에서 뱃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고기를 한 마리라도 더 잡는 것뿐이다. 영진호는 7월 3일 아침, 제주 서귀포시 화순항에서 실낱 같은 만선의 희망을 품고 닻을 올렸다. 고기를 잡아본 경험이라곤 한겨울 빙어 축제에 가본 게 전부인 기자도 건강 진단서를 해양경찰서에 제출하고 정식 선원으로 배에 올랐다.
첫날부터 쏟아진 ‘그놈’들…선원들은 침착했다
“3노트(약 5.5㎞)라···.”
곽 선장이 조타실의 어군 탐지기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출항한 지 9시간이 지났다. 원래 4노트로 달리던 배의 속도가 떨어졌다는 건 5시간 전쯤 바다에 던져놓은 그물이 가득 찼다는 의미다. 선장은 뭔가 직감한 듯 굳은 표정으로 조타기 옆 빨강 버저를 눌렀다. 1층 선원실에 조업 신호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관(棺)처럼 생긴 0.6평(1.9㎡)짜리 각자의 방에서 쉬던 한국인 선원 3명과 인도네시아 선원 5명이 작업복 멜빵을 어깨에 급히 걸친 채 흰 장화를 신고 밖으로 나섰다. 생전 겪어보지 못한 멀미 탓에 빈속의 위액을 두 번 토해낸 기자도 멍하니 그들 뒤를 따랐다.
갑판에선 윈치(무거운 물건을 끌어올리는 기계)가 먼저 일하고 있었다. 둔탁한 굉음을 내며 그물을 건져냈다. 10분쯤 지났을까. 풍선처럼 부푼 그물 자루가 선미로 모습을 드러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은빛 고기 떼와 제철인 붉은 새우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란 기대는 곧 사라졌다. 온갖 쓰레기 더미가 쏟아졌다. 물고기와 갑각류는 그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쓰레기는 다양했다. 어부들이 버린 낡고 해진 폐그물, 20L짜리 윤활유 깡통, 라면과 믹스커피 봉지들, 음료캔, 1.5L 생수병, 비닐봉지… 대부분 플라스틱 계열 제품들로 해저 깊이 가라앉았던 것들이다. 그물에 걸리지 않았다면 수백 년간 썩지 않고 깊은 바다를 떠돌다 잘게 부서졌을 테고, 멋모르는 고기들이 이를 먹었을 것이다. ‘물 반, 고기 반’을 상상했던 초보 선원이 직접 본 현실은 더 잔혹했다. 외국인 선원들은 쓰레기 틈에서 고기를 골라냈다.
엉망이 돼버린 바다. 정작 배에서 놀란 사람은 기자뿐이었다. 선원들에겐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그들은 말없이 할 일을 시작했다. 잘 벼린 칼로 폐그물부터 쓱싹 잘라낸 뒤 200L 포대에 담았다. 깡통 등 대형 폐기물을 손으로 치운 뒤 세 발 달린 갈퀴로 작은 쓰레기들을 박박 긁어내 갑판 가장자리로 밀었다. 쓰레기나 다름없는 ‘바다의 불청객’ 괭생이모자반(중국에서 떠내려온 해초류)과 개흙(펄), 먹지 못하는 해파리와 잡어 찌꺼기까지 모조리 치우고 나면 남는 건 별로 없다.
딱새우 세 박스와 붕장어 일곱 박스, 그리고 민어와 낙지, 잡어 몇 마리가 전부였다. 파도와 바람 탓에 가만히 서있기도 힘든 배 위에서 2시간 넘게 땀 흘린 10명의 노동량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확이었다. 실제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남는 게 없다. 5시간을 달리는 데 기름값만 100만 원이 들었는데, 잡은 고기는 200만 원어치뿐이었다. 인건비와 선체·선원 보험료 등까지 따지면 적자다.
여기에 쓰레기는 200L짜리 포대 네 자루(약 100~120㎏)에 가득 찼다. 사실 이곳은 불과 몇 달 전 300톤급 쓰레기 수거선이 청소를 했다. 그나마 깨끗한 바다라는 뜻이다. 작업을 마치고 허탈한 듯 연초 한 대를 꼬나문 항해사 홍순기(42)가 말했다.
뭘 그리 놀라요? 이건 장난이지. 나중에 북서쪽으로 갔을 때 올라오는 쓰레기 보면 기겁할 텐데. 특히, 겨울에 이어도 근처 먼바다까지 나가봐야 ‘아, 우리 바다가 이렇게 썩었구나’ 싶을 걸요?
연신 담배 연기를 뿜던 그는 답답한 듯 처음 어선을 탄 기자에게 물었다.
“이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망가진 황금어장, 어부가 버린 '덫'에 갇히다
이곳도 한때는 맑은 바다였다. 인간이 망쳐 놓기 전까지는. 제주 최남단 마라도와 이어도 사이 해역은 영양분이 풍부해 플랑크톤부터 상어까지 촘촘한 생태계를 이뤘던 곳이다. 덕분에 조기, 민어 등이 알을 낳으러 북쪽으로 떠났다가도 천혜의 환경을 잊지 못하고 돌아온다. 중국 어선들도 침을 꼴깍 삼키며 틈만 나면 넘어오려 하는 어장이다. 곽 선장은 “여름 지나고 날이 선선해지면 한국 유자망 배에 중국의 통발∙유자망∙안강망∙쌍끌이 어선까지 몰려들어 조업 공간이 없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황금어장이 5, 6년 전부터 급속히 망가졌다고 기억한다. 당시 제주 바다에 조기가 풍어를 이루자 이를 잡으러 온 유자망 어선(③)이 엄청나게 늘었다. 유자망은 한 번 투망할 때 그물을 10마일(16㎞) 넘게 바다에 깔아 놓고 조기 떼를 기다린다고 한다. 사실 2~3㎞ 이상 그물을 펼치면 불법이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어선들이 쓸모없어진 그물 중 상당량을 바다에 그냥 버리고 간다는 점이다. 이 탓에 제주 남쪽 해역에서 발견되는 해저 쓰레기의 90%가 유자망 등 폐어구들이다. 값싼 중국∙베트남산이 대량 수입된 이후 어민들은 그물을 일회용품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해양수산부의 비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연근해 자망 어선이 버리는 해양 쓰레기는 연간 1만4,424톤에 달한다. 지난해 우리 영해에서 잡힌 전체 참조기의 무게와 엇비슷하다.
"비행기·덤프트럭 바퀴도 낚아" 쓰레기를 도로 던지다
어선에서 하루하루는 '타임루프 영화(같은 시간대가 계속 반복되는 상황을 담은 극)' 같았다. 밤낮없이 매일 4번씩 조업 신호벨이 울리면 새우잠을 자다 깬 선원들이 그물에 걸린 쓰레기부터 20분간 치웠다. 바다에 있을 이유가 없는 생활 가전제품도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벽걸이형 에어컨과 대형 플라스틱 파이프, 낡은 작업복 여러 벌이 담긴 자루까지 보였다. 곽 선장은 어선 외에 다른 배들도 ‘공범’이라고 지목했다.
“비행기랑 덤프트럭 바퀴가 그물에 걸린 적이 있어. 여기는 화물선 등 상선도 많이 다니는 해상이라 그 배들이 버린 거지.”
선원들은 쓰레기 틈에서 얼마 건지지 못한 새우와 붕장어 등을 정성껏 씻었다. 이 수산물들은 부두로 들어가 전국의 고급 호텔과 서울의 일식 전문점, 시장 등에서 팔린다.
조업 사흘째에 접어들자 뱃머리는 첫날부터 쌓아 올린 쓰레기 포대로 가득 찼다. 선원들은 애써 끌어올린 쓰레기 중 작은 폐그물을 뺀 나머지는 다시 바다로 던졌다. 이왕 건진 걸 왜 다시 버릴까. 곽 선장이 솔직히 털어놨다.
"마음 같아서는 다 가져오고 싶지. 하지만, 펄이나 이물질이 잔뜩 묻어 싣기 어려운 게 많아. 선원들 일하는 것 봤재? 한두 시간 쪽잠 자고 다시 일하는데 돈 안 되는 봉사활동을 시킬 수 있겠어?"
쓰레기를 주워 오는 게 돈이 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폐그물을 주워 오면 노력을 보상하는 ‘조업 중 인양쓰레기 수매사업’을 한다. 200L를 건져 오면 2만5,000원을 준다. 하지만 바닷속 쓰레기 양과 비교하면 푼돈이다. 올해 재정(9억 원)은 이미 지난 4월 동났다. 쓰레기를 주워 와도 돈을 줄 예산이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영진호 선장과 선원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쓰레기를 싣고 있었다.
새우깡, 신라면, 맥심 커피믹스…바다 망치는 '국민 제품'들
기자는 승선 첫날부터 새우 선별 등 뱃일을 도우며 그물 속 쓰레기를 관찰했다. 쓰레기를 늘어놓고 보니 세계 유명 소비재의 전시장 같았다. 특히, 엄청난 판매고를 올려 ‘국민 제품’으로 사랑받는 상품들이 바다를 오염시키는 주범이었다. ‘국민 과자’ 새우깡은 거의 매일 그물에 딸려 왔다. 가장 잘 팔리는 국산 탄산음료인 ‘칠성사이다’의 알루미늄 캔도 단골 쓰레기다. 신라면, 박카스, 맥심 커피믹스, 레쓰비 캔커피 등 스테디셀러(꾸준히 잘 팔리는 제품)의 포장재들은 잊을 만하면 모습을 드러냈다.
해양 쓰레기는 미세먼지처럼 국경을 무시한 채 표류한다. 특히 중국산 쓰레기가 우리 바다에서 흔히 발견된다. 중국 배가 자국 영해에서 고기를 잡거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불법 조업하다가 내다버린 쓰레기는 해류를 타고 우리 해역으로 넘어온다.
첫 양망(던져놓은 그물을 끌어올리는 것) 때 딸려온 '설화맥주'는 중국 점유율 1위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다. 1903년부터 생산된 칭따오 맥주와 함께 단일품목으로 중국에서 매출 100억 위안(약 2조 원)을 돌파해 코카콜라를 누른 인스턴트 냉차 ‘왕라오지’의 알루미늄 캔, 중국 대표 라면 브랜드인 캉스푸의 ‘향라우육면’ 비닐봉지 등도 자주 목격됐다.
조업 이튿날에는 ‘플라스틱 재앙’의 거대 진앙이 그물에 걸렸다.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음료’ 코카콜라였다. 매일 200여 개 국가에서 초당 2만 잔이 팔린다. 그만큼 그림자도 짙다. 코카콜라(④)가 한 해 배출하는 플라스틱 양은 300만 톤으로 전체의 11%에 달한다. 2위(네슬레, 170만 톤)와 3위(유니레버, 약 61만 톤), 4위(콜게이트, 29만 톤)를 다 합해도 넘지 못한다. 글로벌 환경단체인 ‘플라스틱 추방연대’는 코카콜라를 6년 연속(2018~2023년) 세계 최악의 플라스틱 브랜드로 꼽았다.
선장과 선원들은 목숨을 걸고 배를 탄다. 몸이 아파도 죽을 병이 아닌 이상 조업을 포기하고 항구로 돌아오는 일은 드물다. 외롭고 고된 생활이지만 고기만 넉넉히 잡히면 그 맛으로 버틴다. 하지만 영진호 선원들은 휴대폰 신호조차 끊긴 망망대해에서 쓰레기를 밤낮으로 낚았다.
어선을 처음 탄 기자도 처음엔 고립감 탓에 겁이 났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렇게 고기가 잡히지 않아도 괜찮나’ 싶은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불편한 마음은 시간이 가도 사라지지 않았다. 선상에서 밥을 먹거나 몸을 씻는 일조차 미안할 정도로 조업량은 형편없었다.
지뢰가 된 그물, 사람을 잡다
어민들에게 해양 쓰레기는 ‘바닷속 지뢰’다. 단순히 고기잡이를 방해하는 수준을 넘어 사람을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에 떠다니는 폐그물 등이 종종 어선의 회전 추진 날개(스크루)에 걸려 배를 고장 내는데, 이를 풀려고 잠수했다가 해류 등에 휩쓸려 돌아오지 못한 선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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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인 영진호의 기관장은 “폐그물이 매달 두세 번은 우리 배의 스크루에 걸린다”며 “너무 심하게 엉키면 인양선까지 불러 조업을 포기하고 부두로 끌려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배를 탔던 홍 항해사도 기다렸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쓰레기 풀려고 한 번 잠수하면 길게는 5, 6시간씩 작업해요. 여름엔 그나마 낫지만 날 추워지면 중국 배까지 넘어와 쓰레기를 버리는 통에 더 심각해지죠. 겨울에는 고기가 많은 제주 남서쪽 먼바다까지 나가야 하는데 쓰레기 때문에 겁이 날 정도라니까요.”
쓰레기는 어민들만 위협하지 않는다. 여객선 스크루에 걸리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1993년, 전북 부안 앞바다에서 침몰해 292명이 숨진 ‘서해 페리호 참사’가 그랬다. 정원보다 많은 승객과 짐을 싣고 가던 중 나일론 로프가 스크루에 걸려 배가 급격히 기울었다.
어부도 포기하는 바다가 늘어간다
출항 나흘째,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잠기던 무렵에 곽 선장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조타실의 열린 창밖으로 갑판을 내려다봤다. 선원 8명이 복주머니 모양의 불룩한 진녹색 자루를 둘러싸고 있었다. 수심 100m 바다 밑바닥에서 이제 막 끌어올린 그물이다. 뭔가 가득 들어 있는 게 분명했다.
곽 선장은 '억지로라도' 희망을 품으려 했다. 배 기름값이라도 벌려면 이날만큼은 그물이 고기로 꽉 차야 한다.
‘파란 알이 밴 제철 딱새우일까, 효자 어종인 붕장어일까. 여름에 귀한 민어일지도 몰라.’
하지만 희망은 금세 절망으로 바뀌었다. 그물은 해산물 대신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큰 폐그물과 폐통발로 가득했다. 핸드 마이크를 집어든 곽 선장이 풀 죽은 목소리로 갑판 선원들에게 물었다.
"고기가 좀 있기는 한가?"
선원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돈 되는 고기는 거의 없고, 폐통발에 걸려 죽은 생선 몇 마리와 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유령 어업’(폐어구에 물고기가 갇혀 죽어 썩으면서 어장까지 망가뜨리는 현상)으로 살해당한 생명들이었다. 사체에선 썩은 내가 진동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진호의 조업 그물도 크게 상했다. 바다에 버려진 폐그물 탓이었다. 선원들은 배 위에서 보망 작업(그물을 꿰매는 것)을 했다. 4시간쯤 걸리는 일이다. 곽 선장은 “어부도 포기하는 바다가 늘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서쪽 바다는 폐그물 천지라 어선들도 피해가는 곳이란 말이지. 예전에는 깨끗했는데. 특히, 소흑산도 서편은 물이 맑아서 고기가 많이 살았어. 그런데 이제는 그쪽으로는 안 가. 바다 저층이 완전히 썩어서 고기가 없어. 쓰레기 때문에 고기가 없다고.”
쓰레기 낚다 보낸 8일…빈손으로 돌아오다
시간이 가도 바다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닷새째, 엿새째, 이레째도 선원들은 매일 쓰레기를 낚았고 감당할 수 있는 일부만 자루에 담은 뒤 나머지는 다시 버렸다. “2050년에는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영국 비영리기구인 엘런맥아더재단의 예측이 허튼소리가 아닐 것 같았다.
출항 8일째, 배는 166시간의 항해를 마치고 제주 한림항으로 돌아왔다. 영진호의 냉동 어창은 여전히 텅텅 비다시피 했다. 뭍에 도착한 선원들은 얼마 되지 않은 수산물 박스를 꺼내 대기하던 냉동탑차에 옮겨 실었다. 스물일곱 번 그물을 던지고 거두는 동안 잡은 고기는 딱새우 100박스, 붕장어 200박스, 민어와 그 외 잡어가 전부였다. 수산시장에 내다 팔면 6,000만 원 정도 쳐줄 양이지만, 제주 바다를 돌며 쓴 기름값 정도다. 돈만 따지자면 헛수고를 한 셈이다. 대신 영진호는 '쓰레기 만선’으로 불릴 만했다. 서른다섯 포대에 담긴 쓰레기 무게는 1톤이 넘었다.
선원들과 함께 바다에서 건져온 쓰레기들을 집하장에 옮겨 놓은 뒤 비로소 작업복과 장갑을 벗었다. 이번 어기에도 적자를 면치 못하게 된 김 사장의 신음이 귓전에 들리는 듯했다. 바다에서 불어온 짜증스러운 남서풍이 뺨을 스쳤다. 온몸에 스며든 쓰레기 냄새와 함께.
■한국일보 특별취재팀
팀장 : 유대근 기자(엑설런스랩)
취재 : 진달래·원다라·이서현 기자(엑설런스랩), 조영빈(베이징)·허경주(하노이) 특파원, 한채연 인턴기자
사진 : 이한호·최주연·정다빈 기자
영상 : 박고은·김용식·박채원 PD, 제선영 작가, 이란희 인턴PD
※<제보받습니다> 한국일보는 해양 쓰레기 문제를 집중 취재해 보도해 나갈 예정입니다. 해양 쓰레기 예산의 잘못된 사용(예산 유용, 용역 기관 선정 과정의 문제 등)이나 심각한 쓰레기 투기 관행, 정책 결정 과정의 난맥상과 실효성 없는 정책, 멸종위기종 등 동물들이 쓰레기 탓에 겪는 피해, 그 외에 각종 부조리 등을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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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사람도 포기한 바다
늙은 어부의 고백
해양 쓰레기의 역습
세금 포식자가 된 쓰레기
국경 없는 표류
불편한 미래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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