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목숨 끊은 관악서 31세 경위
초임 수사관에게 끝없는 사건 배당
평소에도 "숨 못 쉬겠다" 고통 호소
"불쌍한 우리 아들. 동료들이 말하길, 아들은 일만 하다가 갔다고 해요."
29일 오후 서울 관악경찰서 앞. 청사 밖으로 나오는 송모(54)씨의 품엔 생전 아들이 쓰던 유품들이 안겨 있었다. 그의 아들은 관악서에서 일하던 31세 송모 경위. 이달 18일 업무가 너무 많다고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찰 간부다. 송씨는 아들의 생전 얘기를 듣고 순직 처리를 논의하기 위해 관악서를 찾아, 아들의 동료들과 얘기를 나눴다. 그는 "경찰서 측에서 아들의 업무 과로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순직을 돕겠다고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일이 얼마나 힘들었기에. 2016년 순경으로 임용돼 단 8년 만에 세 계급을 승진한 전도유망한 경찰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해야 했을까.
본보가 입수한 관련 보고서와 주변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송 경위가 생전 지나친 부담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정황은 여러 군데에서 포착된다. 송 경위는 수사관의 꿈을 품고 2022년 수사 경과를 취득해 수사과에 지원했다. 그는 올해 경위 승진 후 관악서 통합수사팀으로 발령됐는데, 이때 전임자가 맡던 사건 53개를 한꺼번에 배당받았다. 발령 직후 서울경찰청에서 3주간의 신임수사관 교육을 받았는데, 교육받던 중에도 새 사건이 차곡차곡 쌓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송 경위는 발령과 동시에 사건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했다고 한다. 특히 지방청에서 하달되는 '장기사건 미처리'와 관련한 경고 메시지가 매주 통합수사팀 채팅방에 올라오는 것에 부담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 송 경위는 동료에게 "나가야겠다"거나 "매일 출근하면 심장이 아프다, 숨이 안 쉬어진다"며 고충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송 경위는 이달 초 승진 임용식에서도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고 한다. 그의 심리 상태가 불안해 보이자, 부모는 승진 임용식 당일 송 경위를 병원에 데리고 가 신경안정제를 처방받기도 했다. 경찰직장협의회(직협) 관계자는 "고인은 인사고충이 처리돼 기동대로 발령을 대기받은 상태였지만, '전출 전 자기사건 책임수사' 제도로 22일 서울경찰청의 점검을 받았다"며 "자기 사건이 팀원들에게 영향이 미칠 것을 걱정하며 '월요일이 두렵다'고 반복적으로 말했다"고 전했다.
직협은 동료 진술이나 유서 내용으로 보아 지휘부 갑질 등 부당 처우는 없었던 것으로 결론 내렸다. 다만 신임 수사관에 대한 압박 등 수사부서의 구조적 문제는 분명하다고 봤다. 직협은 "신임 수사관이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신임이 해결할 수 없는 막대한 사건을 배당했다"며 "인력 부족, 교육 부족 등 수사부서의 고질적 문제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경으로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근 경찰관들이 업무 과중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잇따르자 경찰 내부에서도 근무 여건 개선 등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직협은 이날 오전 경찰청 앞에서 '연이은 경찰관 사망사건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청을 규탄했다. 민관기 직협 위원장은 "실적 위주 성과평가 중단을 비롯한 관련 제도와 조직 문화의 근본적 개선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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