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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양궁계 '키다리 아저씨'는 또 선수들 곁 지켰다...정의선 "내가 묻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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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양궁계 '키다리 아저씨'는 또 선수들 곁 지켰다...정의선 "내가 묻어가는 것 같다"

입력
2024.07.30 04:30
수정
2024.07.30 09:3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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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1985년부터 40년 한국 양궁 지원
선수들의 컨디션 가장 먼저 챙겨
양궁협회장 다섯 번 연임...올림픽 5회 현장행

2021년 7월 30일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 결승에서 우승한 안산 선수가 시상식 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대한양궁협회장)에게 다가가 목에 금메달을 걸어주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정 회장은 안 선수의 어깨를 다독여주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21년 7월 30일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 결승에서 우승한 안산 선수가 시상식 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대한양궁협회장)에게 다가가 목에 금메달을 걸어주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정 회장은 안 선수의 어깨를 다독여주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오늘은 다리 뻗고 자. 너무 고생 많았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2021년 7월 30일.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3관왕을 달성한 안산 선수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이런 말을 건네자 왈칵 눈물을 쏟았다. 올림픽 경기 내내 의연한 태도를 유지해 온 안 선수는 시상식 직후 정 회장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줬다. 당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올림픽 현장에 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지만 정 회장은 직접 경기장에서 안 선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이날 안 선수는 "회장님께서 아침에 전화를 해서 '믿고 있다. 잘해라' 등 격려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며 "많은 도움이 됐고 가벼운 마음으로 경기장에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29일 한국 여자 양궁이 2024 파리 올림픽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며 10연패를 달성하자 20년 동안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으며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한 정 회장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정 회장은 이날도 여자 양궁 단체전을 현지에서 지켜본 데 이어 시상자로 나서 대기록을 달성한 선수들에게 부상을 건네며 축하 인사를 건냈다.

현대차그룹은 1985년부터 국내 단일 스포츠 종목 후원으론 최장기간인 40년 동안 한국 양궁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왔고 정 회장은 정몽구 명예회장에 이어 2005년 대한양궁협회장과 아시아양궁연맹회장을 동시에 맡은 뒤 다섯 차례 연임하며 양궁 발전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비인기 종목임에도 전폭적인 지원 앞장

정의선 회장이 2008 베이징 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우승한 주현정 선수에게 꽃다발을 수여하고 있다. 대한양궁협회 제공

정의선 회장이 2008 베이징 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우승한 주현정 선수에게 꽃다발을 수여하고 있다. 대한양궁협회 제공

정 회장은 그 어떤 스포츠 종목에서도 보기 힘든 다양한 방식의 지원을 펼쳤다. 그는 취임 전후로 사상 처음 선수 정보를 디지털로 관리하고 과학적 훈련과 관리를 통해 경기력을 높일 수 있는 양궁 훈련 종합관리 시스템 구축을 이끌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곤 서울시 송파구 잠실 올림픽공원에 수억 원을 들여 베이징 양궁 경기장을 본뜬 가상 경기장을 짓도록 하고 선수들의 현지 적응력 강화를 도왔다. 이제는 한국 양궁 대표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현지 양궁 경기장을 모의로 만들어 훈련하는 루틴은 이때가 시작이다.

정 회장은 또 당시 중국에 파견할 대규모 응원단이 묵을 호텔방을 잡기 위해 대회 2년 전인 2006년부터 뛰어다녔다. 이 이야기는 스포츠 업계에 유명한 일화로 남아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당시 한 양궁인은 "대기업 총수가 뭐가 아쉬워 비인기 종목인 양궁에 이토록 애정을 쏟아주시겠냐"며 "정말 눈물겹도록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그런 정 회장에게 사람들은 '성덕(성공한 덕후)' '키다리 아저씨'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선수들이 가장 먼저 뛰어가 감사 인사

정의선 회장이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양궁 개인전에서 우승한 오진혁 선수에게 꽃다발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대한양궁협회 제공

정의선 회장이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양궁 개인전에서 우승한 오진혁 선수에게 꽃다발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대한양궁협회 제공

정 회장은 특히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에도 많이 신경 썼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양궁 경기장이 숙소에서 한 시간 이상 떨어져 있는 것을 안 뒤 경기장 인근 호텔 객실 상황을 서둘러 알아봤다.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서는 치안 불안을 감안해 사설 경호원과 방탄차를 제공했고 이동 거리 최소화를 위해 경기장 인근에 휴게실과 물리 치료실, 샤워실까지 갖춘 트레일러도 마련했다.

정의선 회장이 2016 리우 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을 마친 뒤 한국 양궁대표팀 선수들과 코치진의 헹가래를 받고 있다. 대한양궁협회 제공

정의선 회장이 2016 리우 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을 마친 뒤 한국 양궁대표팀 선수들과 코치진의 헹가래를 받고 있다. 대한양궁협회 제공

이런 노력에 힘을 얻어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 선수단은 사상 첫 올림픽 양궁 전 종목 석권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당시 남자개인전 결승에서 금메달을 따낸 구본찬 선수는 시상식 후 한달음에 정 회장에게 다가가 목에 금메달을 걸어줬다. 구 선수는 "회장님 이게 네 번째 금메달입니다"라고 말하며 울먹였고 정 회장은 "고맙다"고 말하며 구 선수를 힘껏 안았다. 정 회장은 감사 인사로 선수들에게 헹가래도 받았다.

2024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는 현대차그룹 연구진이 개인 훈련용 슈팅 로봇까지 만들었다. 선수들은 슈팅 로봇과 일대일 대결을 펼치며 경기력 향상에 많은 도움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양궁인들의 정 회장을 향한 지지는 전폭적이다. 2021년 대한양궁협회장 선거에서 만장일치로 선출돼 다섯 번째 연임을 이어가고 있다. 같은 해 열린 아시아양궁연맹 총회에서도 총 38개 회원국 중 28개국이 참석해 26개국이 지지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정 회장은 29일 파리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이후 기자들과 만나 "선수들이 워낙 잘해서 제가 거기에 묻어가고 있고 (저는) 운이 좋은 거 같다"며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은 뒤에서 다 (지원) 하겠다"며 뒷바라지를 계속할 것을 약속했다.


강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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