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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 투약기도, 디지털 광고 배달통도... "부가 조건이 혁신 발목"

입력
2024.08.21 11:00
수정
2024.08.22 15:5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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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샌드박스 5년 점검]
<상> 퇴보 부르는 규제 장벽
또 다른 규제, 조건부 승인
부처 엇박자, 무늬만 완화


6월 26일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쓰리알코리아 사무실에서 한 직원이 일반의약품 스마트 화상판매기를 통한 약 구매를 시연하고 있다. 변태섭 기자

6월 26일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쓰리알코리아 사무실에서 한 직원이 일반의약품 스마트 화상판매기를 통한 약 구매를 시연하고 있다. 변태섭 기자

“뒤에서 대못 박는 거죠. 편의점에서도 파는 소화제를 판매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약사인 박인술 쓰리알코리아 대표는 “앞에선 완화하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규제를 풀 생각이 없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약국이 문 닫은 밤, 약사와 원격 상담을 거쳐 약을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 스마트 화상판매기(화상 투약기)’의 품목 확대가 물거품 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2022년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에서 조건부 승인을 받은 화상 투약기는 부가 조건으로 해열·진통소염제 등 11개 효능군, 53개 품목 일반의약품만 취급할 수 있다. 쓰리알코리아는 지난해 8월 외피용 살균소독제 등 13개 약효군을 판매 목록에 추가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고, 같은 해 11월 검토회의에서 전문가들은 6개 약효군은 '판매 적절', 나머지는 '추가 논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11개월 만에 정부가 내놓은 답변은 기대와 정반대였다. 13개 약효군 중 허용된 게 하나도 없었다. 박 대표는 “약국 외에서도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을 약국 내 설치된 화상 투약기에서, 약사와 상담 후에도 판매할 수 없다고 하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약국이 일찍 문 닫는 농어촌 지역에 화상 투약기가 보급되면 지역의료에도 도움 될 텐데 개발한 지 10년 넘도록 상용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규제 샌드박스 도입 5년이 지났지만 ‘규제 장벽’은 여전히 굳건하다. 또 다른 규제로 볼 수 있는 부가 조건을 달아 조건부 승인하거나, 부처‧기관 간 협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탓이다. 오토바이 전용 디지털 광고 배달통 ‘디디박스’를 개발한 뉴코애드윈드도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뉴코애드윈드는 2019년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 1호 기업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실증을 위한 오토바이를 광주에서만 최대 100대 운영할 수 있다는 부가 조건이 달린 터라 수익을 내기 힘들었다. 2022년에야 오토바이 운영 가능 대수가 1만 대로 늘었으나 ‘빛 좋은 개살구’에 그쳤다. 장민우 대표는 “디디박스를 설치한 오토바이는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교통안전공단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공단에선 자동차 검사가 주 업무라며 제대로 해 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운영 가능 대수 확대 이후 추가로 공단 승인을 받은 오토바이는 40여 대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최근엔 사실상 불가하게 됐다는 게 장 대표의 하소연이다. “실증특례 기간이 올해 2월 18일에 끝난 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특례 유효기간 연장 확인서를 보내왔지만, 공단에선 소관 부처 공문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예 승인을 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책임 떠넘기기에 바빠요. 사업하지 말란 소리죠.”

한국행정연구원의 2022년 ‘규제 샌드박스 수요자 체감도 조사’를 보면, 승인받은 기업 중 70.4%는 사업 지속성에 우려를 표했다. 특히 소관 부처의 규제법령 개선이 더디다는 의견이 주를 이뤄 무늬만 규제 완화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규제 샌드박스란

규제 샌드박스는 기존 규제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술‧서비스의 시장 진출 기회를 주거나, 시간‧장소에 제한을 두고 실증 테스트를 허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안전한 환경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래놀이터(sandbox‧샌드박스)처럼, 국민의 생명‧안전에 저해가 되지 않는 한 기업들이 마음껏 도전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핀테크 산업 육성을 위해 영국이 2016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도입했고, 한국은 2019년부터 해당 제도를 시행해 오고 있다.



세종=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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