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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없어 골절치료 불가... 대한민국 응급체계는 이미 '응급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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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없어 골절치료 불가... 대한민국 응급체계는 이미 '응급 상황'

입력
2024.08.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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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전문의 잇단 사직에 필수의료 '비상'
중앙의료원 사직 철회했지만 우려 여전
충남대병원·속초의료원 등도 축소 운영

전공의 파업으로 2월 비상진료를 시작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고영권 기자

전공의 파업으로 2월 비상진료를 시작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고영권 기자


"수술이 어려우면 진통제라도 맞아야 하는데... 눈앞이 캄캄해요."

31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 대기실에선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고령의 어머니를 모시고 온 딸 A(68)씨는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휴대폰만 붙잡고 있었다. 어머니가 간밤에 침대에서 떨어져 골절상을 입고 이곳 응급실을 찾았지만, 정형외과 의사가 없으니 다른 곳을 알아보라는 얘기를 듣고 어머니를 모실 다른 병원을 찾는 중이었다.

가족·지인을 총동원해 병원을 수배했지만 거절만 이어졌다고 한다. 요양병원이라도 찾으려했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빨라도 내일은 돼야 입원할 수 있다" 정도가 그나마 긍정적인 답이었다. 중앙의료원에 "하루만 머물면 안 되냐"고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어머니를 받아주겠다는 다른 종합병원 응급실도 찾지 못했다.

서울 한복판 종합병원 응급실. 홈페이지에서 스스로를 '공공의료의 중추'라고 밝힌 의료기관이 의사가 없어 골절환자를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공의료 허브' 응급실엔 전문의 2명

의정 갈등이 길어지면서 필수의료 현장의 인력 공백이 심화되고 있다. 이탈 전공의들의 복귀가 요원해지자, 겨우겨우 버티던 응급실 쪽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탈진 상태를 버티지 못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사직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어, 현재 일부 병원에만 국한된 응급실 진료 중단·휴진 사태가 전반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1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전유진 기자

31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전유진 기자

31일 중앙의료원에 따르면, 이달 말 사직을 하려던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최근 계약 연장을 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중앙의료원 소속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단 2명이어서, 만약 이 전문의가 나갔다면 응급실 운영 파행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의료원 관계자는 "사직 의사를 밝혔던 전문의와 수 차례 면담을 거쳐 최종적으로 사직하지 않기로 했다"며 "현재 응급실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 내과에서 발령 온 응급실 전담의 1명 등 총 3명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가까스로 위기를 막았다지만 안심하긴 이르다는 게 전문가들 이야기다. 응급실은 초진부터 응급조치, 다른 진료과 인계, 전원·이송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져야 해서 전문의와 전공의 등 최소 서너 명이 손발을 맞춰야 한다고 한다. 인력이 부족하면 의료 서비스 질이 나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환자 생명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사회장은 "국내 병원 중 권역응급의료센터 응급실에는 평균 10명 정도의 전문의가 있고, 지역응급의료센터에 6명이 있다"며 "(중앙의료원의) 2명은 턱없이 적은 숫자"라고 설명했다. 과거 중앙의료원에 근무했던 한 전문의도 "24시간 내내 교대근무를 해야 하는 응급실을 2명으로 운영하는 것이 말이 되냐"며 "국가가 책임지고 운영해야 하는 병원조차 응급실 운영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31일 세종충남대병원 홈페이지에 게재된 응급의료센터 제한 진료 시행 안내 게시물. 홈페이지 캡처

31일 세종충남대병원 홈페이지에 게재된 응급의료센터 제한 진료 시행 안내 게시물. 홈페이지 캡처


전국 응급실 파행 운영 속출

응급실 파행은 비단 중앙의료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30일 세종시의 유일한 지역응급의료센터인 세종충남대병원은 8월부터 응급실 진료를 부분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사직으로 매주 목요일마다 응급실 운영을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게 병원 측 설명이다. 강원 속초의료원도 응급의학과 전문의 5명 중 2명이 이달 초 사직해 일주일 동안 응급실 문을 닫았다. 단국대병원과 순천향대 천안병원도 인력난을 이유로 응급실을 축소 운영하는 등 파행 사태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방의 한 거점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대형 사립병원과 일부 국립대병원을 제외하고는 의사 1명이 응급실 당직을 서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불가피하게 제한 운영을 결정한 병원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병원들의 파행 운영도 시간 문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일단 정부는 다른 과 전문의를 투입해 응급실 파행을 막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보건복지부는 "응급의료센터 상황을 살피고 있고, 응급의학과 외 다른 전문과목 인력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한응급의학회는 "다른 전문의가 응급환자를 진료하면 해당 과목 환자는 누가 진료하냐"며 "타 전문의는 응급실에 몰려오는 온갖 다양한 환자들에 대처하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전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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