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의 독서법]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편집자주
인류의 활동이 지구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들어섰다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입니다. 이제라도 자연과 공존할 방법을 찾으려면 기후, 환경, 동물에 대해 알아야겠죠.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가 4주마다 연재하는 ‘인류세의 독서법’이 길잡이가 돼 드립니다.
기후위기의 최대 희생양은 닭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6년 동안(2017~2022년) 한여름 폭염으로 죽은 가축 2,010만 마리 가운데 닭이 90%가 넘는 1,800만 마리다. 기온이 섭씨 40도에 육박하던 2018년에는 810만 마리, 비가 많이 왔던 2020년에는 10만 마리로, 그해 폭염일수에 좌우되긴 하지만, 기후변화로 죽어 나갈 닭이 늘어나리란 것은 확실하다.
한국 사람들은 치킨을 좋아한다. 인생 별거 있나. 밤늦게 넷플릭스 틀어놓고 치맥(치킨과 맥주) 먹고, 특별한 날엔 야구장 가서 치킨 먹는 거지. 닭 소비량은 줄지 않는다. 2018년 이후 매년 10억 마리 이상이 죽는다. 육계는 한 달 동안 비육 된 뒤 죽고, 산란계는 거의 매일 알을 낳다 일 년 반 만에 죽는다. 각각 발 디딜 틈 없는 실내 농장과 A4 용지 한 장 남짓한 크기의 케이지가 세계의 전부다.
닭에 비하면 강아지는 행복한 편이다. 부잣집의 강아지는 한 달에 8,800원짜리 반려견 전용 영상 채널도 시청할 수 있다. 개를 식용 목적으로 기르거나 도살, 유통,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한 개식용금지법이 2027년부터 시행되면 상황은 더 나아질 것이다.
엉뚱하게도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인간의 동물에 대한 분할 통치에 대해 생각했다. 동물은 반려동물, 농장동물, 야생동물, 실험동물로 나뉘어 지배된다. 똑같이 영혼을 가진 생명인데도 어떤 동물은 유사 인격적 가치를 부여받고, 어떤 동물은 살만 찌다 죽고, 어떤 동물은 암세포를 주입받는다. 동물을 대하는 윤리만큼 모순적인 것도 없다. 치킨을 먹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보신탕을 먹는 것은 비난받는다.
근대의 분류학은 삼라만상의 혼돈을 바로잡고 질서를 부여하는 걸 목표로 했다. 응당 질서에는 이념이 끼어든다. 신을 정점으로 천사와 인간, 고등동물에서 하등동물로 이어지는 위계의 사다리다. 저자가 이 책에서 뒤쫓은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스탠퍼드대 초대 학장을 지낸 그는 당시 미국 어류 25%를 동료와 함께 발견한 뛰어난 어류학자였다. 동물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분류도 진심이었던 그는 영국에서 시작된 우생학을 미국에 확산시키는 데 앞장섰다. 20세기 초반에 우생학은 인간을 분류해 유전자의 위계를 만들고, 뒤처지는 유전자를 솎아내는 정치 운동으로 발전했다. 당시 미국의 상당수 주(州)는 장애인을 격리하는 법을 제정했다. 우생학 운동의 작동 방식은 우리가 가축을 다루는 방식과 닮아 있었다.
이 책은 저자의 성장기이다. 성소수자인 작가가 타인에 의해 분류되지 않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거기서 피어난다. 동시에 이 책은 훌륭한 과학책이다. 무엇이건 분류하고 정체성에 가두는 정치가 아직도 횡행하기 때문이다. 그 분류에 지식의 근거를 제공하는 게 다름 아닌 과학이다. 저자는 그 지점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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