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전세' 공급하려 경매로 124호 매입
수도요금 살펴보니 70여 호가 물 사용 중
"비어 있어야 정상인데... 무단 점유 추정"
정부가 전세사기 걱정을 덜겠다며 내놓은 공공임대주택사업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든든전세주택’이 시작부터 암초를 만났다. 전셋집으로 공급하려고 경매로 매입한 주택 10곳 중 6곳에 무단 점유자가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HUG는 강제 퇴거를 진행할 계획이지만 신속하게 전셋집을 공급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31일 HUG에 따르면 HUG 든든전세주택은 무주택 세대 구성원이면 누구나 지원 가능한 공공 전셋집이다. 임대인 대신 임차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준 주택을 직접 경매에서 낙찰받아 다시 전셋집으로 공급하고 추첨으로 입주자를 선정한다. 소득과 자산 기준을 따지지 않고 주변 시세의 90% 전셋값에 최장 8년간 거주할 수 있어 일찍부터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지난달 24일부터 1차 입주자 모집을 시작한 든든전세주택은 고작 24호에 그쳤다. HUG가 2년간 공급하기로 한 물량(1만 호)의 0.24% 수준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직접 사업을 소개했고 국토교통부도 6차례나 홍보했지만 공급량은 목표치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속사정을 살펴보면 이번에도 정부가 전세사기에 발목이 잡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HUG는 6월 말까지 주택 124호의 소유권을 확보했는데 수도요금 내역을 확인하고 70호가량이 물을 쓴다는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다. 이 집들은 비었어야 정상이다. 계약 기간이 만료된 기존 임차인은 HUG로부터 전셋값을 받고 떠났기 때문이다.
HUG는 수도요금이 부과된 집 대부분에 무단 점유자가 산다고 본다. 주택이 경매에 넘어간 후에도 임대인이 임대료를 낮게 책정해 새 임차인을 들였다는 설명이다. 주택 소유권을 잃기 전까지 몇 달씩 ‘단기 임대’를 놓는 수법이다. HUG 관계자는 “든든전세주택 자체가 전세사기로 의심되는 다주택자 물건이 많다”며 “법적으로 임대를 제지할 방법이 없다”고 털어놨다.
HUG는 점유자로부터 집을 넘겨받기까지 최대 9개월이 걸릴 것으로 본다. 소유권 이전 뒤에도 퇴거 고지, 명도 소송, 강제집행 등의 과정을 거친다. HUG는 수도요금이 없는 나머지 50여 호에 직원을 급파해 일일이 문을 열고 비밀번호가 바뀌지 않은 24호를 찾아내 간신히 입주자 모집을 개시했다.
HUG 내부에서는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 업무만 떠넘길 뿐, 지원에는 눈을 감는다는 불만이 나온다. 지난달 24일까지 든든전세주택으로 확보한 주택만 982호. 점유 여부를 하나씩 확인해야 하지만 명도 소송 등 관련 업무를 담당할 인력은 7명뿐이다. HUG는 곧 채용 공고를 낼 계획인데 순증한 채용 인원은 10여 명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관계자는 “전세사기 업무가 폭증하자 퇴사를 고민하는 젊은 사원이 늘었다”고 했다.
금융기관인 HUG가 처음으로 임대업을 수행하는 것도 불안 요소다. 주택관리업체를 두더라도 HUG 역시 책임질 몫이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기관이 강제집행에 나서는 것도 부담이다. 임차권 등기가 설정된 주택의 무단 점유자는 우선변제권도 보장받지 못한다.
관련 이슈태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